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뉴스레터

현장보고
[답사기-중국의 고구려 유적 현황] 중국의 고구려 유적 답사 유감
  • 제2연구실 연구위원 고광의

중국 연변대학측이 한중 학술교류 협력을 위해 동북아역사재단 김용덕 이사장을 초청해 왔다. 그 동안 바쁜 일정으로 기회를 갖지 못하던 이사장이 이를 수락하면서 방문단이 구성되고, 필자 또한 그 일원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2007년 10월 1일, 연변대학에 도착한 방문단은 김병민 총장과 박문일 전총장을 비롯한 각급 학술기구 관계자들과 향후 교류 활성화와 협력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하였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설립과 활동에 기대를 갖고 있던 연변대측은 이사장의 방문을 계기로 양기관의 활발한 교류와 한중 학술교류에 있어 적극적인 역할을 약속하였다.

동북공정의 역사 유적 현장을 찾아가는 일정의 첫 번째 목적지는 요녕성 환인(桓仁)이다. 먼저 하고성자와 상고성자 유적을 들렀다. 하고성자는 오녀산성과 연관 지어 평지성으로 보는 지역이기도 하다. 마침 마을 어귀에서 뛰놀던 멍멍이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면서 찾아간 성벽은 거의 무너지고 흔적조차 찾기 힘들었다. 상고성자 무덤떼는 고구려시기의 공동묘지로 초기 적석무덤의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그러나 졸속 복원으로 무덤들이 무너지고 잡풀이 우거져 관리가 제대로 되는지 의심스럽다.

어느새 혼강에 피어오른 아침 안개가 옅어지고 멀리 오녀산 위로 고구려의 첫 수도인 흘승골성이 나타난다. 해발 800여 미터의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져 있고, 산 정상에 천지라고 불리는 조그만 연못까지 갖추어져 있으니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라 할 수 있다. 발굴된 건물지를 지나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 이르면 중국 정부의 어느 고위 관료가 남긴 휘호처럼 천하제일의 경치가 펼쳐진다. 호수 아래 수몰되어 잠긴 고구려 영혼들을 떠올려 보면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대는 행락객들 속에서 그저 씁쓸한 생각이 든다.
흘승골성을 뒤로하고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으로 향했다. 집안(集安)에 도착한 일행은 해질녘 임에도 불구하고 환도산성 답사까지 마치기로 했다. 성문을 지나 점장대에서 집안 시내를 바라보니 평지성과 산성이라는 고구려의 전형적인 도성체계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미 어둠이 내린 산성 아래에는 여기 저기 솟아있는 무덤들이 어슴푸레 시야에 들어온다. 으스스한 공동묘지를 내려와 '꿈속의 고구려'라는 공연장으로 향했다. 집안시가 야심차게 기획한 고대의 고구려와 현재의 집안을 음악과 무용, 시와 그림으로 묘사한 대형 공연이다. 변경의 작은 도시에서 대단한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답사의 마지막 날, 일행은 광개토왕비와 태왕릉 및 장군총 그리고 고구려벽화무덤들이 즐비한 우산무덤떼를 찾았다. 15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위용을 간직한 고구려 무덤 건축의 걸작인 장군총은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무덤돌이 붕괴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관광객이 직접 봉분에 오르는 것을 심각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광개토왕비와 태왕릉은 이전의 빽빽한 민가에 둘러싸여 난잡했던 모습을 이제는 찾을 수 없고, 제법 말끔하게 단장된 릉원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무덤이 천추만세 산악처럼 영원하기를 바라던 태왕(太王)의 염원이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새로운 수묘(守墓) 제도로 공포된 것일까? 유리벽에 둘러싸여 얼굴을 잃어버린 광개토왕비가 왠지 애처롭게만 보인다.
마지막 코스는 고구려벽화로 유명한 오회분이다. 고구려 복장을 한 여인의 안내를 받아 들어선 벽화의 훼손 상태는 가히 충격 그 자체였다. 영롱함을 발하던 색체는 군데군데 하얗게 변색되고, 고구려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던 벽화의 소재들은 형체를 제대로 알아 볼 수 없게 되었다. 벽화의 보존을 위한 노력이 시급한 실정이다. 며칠간의 여정을 마치고 심양으로 향하는 차창 밖으로 고구려를 만나 황홀해 하던 그 첫날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