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은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와 협력하여 현대 한ㆍ일관계의 핵심자료로 평가되는『한ㆍ일 회담 외교문서 해제집』5권을 국내외 최초로'동북아역사 자료총서'8~12권으로 묶어 발간했다.
모두 다섯권 크라운판 4,2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 해제집은 국내외 학계, 교육계는 물론 한ㆍ일 외교 당국과 실무자, 국민 일반의 폭넓은 관심과 호응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본 해제집은 크게 보면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는 주요문서의 해제를 담고 있다.
제1권은 예비회담과 제1~4차 한ㆍ일회담 및 제5차 한ㆍ일회담의 예비회담 관련 문서의 해제를 수록하였다. 제2권은 평화선ㆍ북송문제ㆍ6차 한ㆍ일회담 예비교섭 및 청구권 관련 문서의 해제를, 제3권은 6차 한ㆍ일회담 관련 문서의 해체를 수록하였다. 제4권은 고위 정치회담 및 7차 한ㆍ일회담의 법적 지위문제와 어업관계, 문화재 관련 문서의 해제를 수록하였다. 끝으로 제5권은 7차 한ㆍ일회담의 기본관계 및 청구권, 협정체결 관련 문서의 해제를 수록하였으며,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끝에'한ㆍ일회담 참석자 명단'과'한ㆍ일회담 연대표'를 첨부하였다.
한ㆍ일 양국은 1950년부터 1965년까지 1차 예비회담과 일곱 차례의 본회담을 진행한 끝에 마침내"한ㆍ일협정"으로 불리는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약칭 한ㆍ일기본조약)』과『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약칭 한ㆍ일청구권협정)』등 4개의 부속협정을 체결하였다.
난해한 외교사료 일반인 접근 쉽게 풀어 제공
잘 알려져 있듯이"한ㆍ일협정"은 한국현대사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던 일대 외교적 사건으로 평가되지만, 협정 관련 문서는 40여 년 동안 공개되지 않고 있다가 2005년 1월과 8월에 한국측에서 전면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 문서의 체계적 연구와 활용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러나'한ㆍ일회담 외교문서'는 매우 방대한 분량이기 때문에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주요 내용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알기 쉽게 해설하는 해제집을 간행하여 관심 있는 연구자들과 일반인들의 이해를 도울 필요가 있다. 이에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와 협력하여 이번에『한ㆍ일회담 외교문서 해제집』을 간행하게 된 것이다.
'한ㆍ일회담 외교문서'의 해제와 정리 작업은 국민대 일본학 연구소에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2005년부터 3년여에 걸쳐 수행한 연구작업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동북아역사 미래지향적 한ㆍ일관계 기초 자료로 활용 재단은 일본학연구소의 전폭적 협력 하에 작년부터 이 문서 관련 해제집의 간행을 추진하였다. 일본학연구소에서 문서의 분류와 해제작업, 입력과 교정 등 소프트웨어를 담당하고 재단에서 출판과 배포를 맡기로 역할을 분담키로 한 것이다.
재단은 이 해제집을 유관 당국과 공공기관, 학계, 교육계, 국민일반 등에 널리 제공하여 폭넓게 활용토록 함으로써 국민 일반은 물론 일제 강점기 피해자들과 그 유족 등 관심 있는 이들의 수요에 부응코자 한다. 이 해제집의 간행을 계기로 한ㆍ일협정의 성과와 한계 등에 대한 연구와 활용이 본격화 할 것으로 전망된다. 본 해제집은 근현대 한ㆍ일관계사 분야의 연구를 촉진하고 현재 한ㆍ일 간에 놓여있는 여러 가지 현안문제의 해결 및 합리적인 대일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당초 동북아역사재단과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측은 5권의 해제집과 15권의 자료집, 총 20권 분량으로 구성된『한ㆍ일회담 주요 자료집』(가제)을 출간할 예정으로 편찬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번에 먼저 해제집 5권을 간행한 후 나머지 자료집은 온라인 자료로 활용하거나 별도의 자료집으로 출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외교사료 출간 작업은 국가의 권위와 품위를 높이고 정통성을 밝히는 귀중한 과정이 될 것이다.
실증적 객관적 분석과 연구 활성화 기대
이 해제집이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연구책임자로서 국민대 일본학연구소를 이끌어온 한상일교수와 후임이원덕 교수,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문서를 검토하고 귀중한 해제원고를 작성한 일본학연구소의 김영미ㆍ김영수ㆍ안소영ㆍ이이범ㆍ이현진 박사 등 다섯 필자들의 노고가 컸다.
본 해제집은 그 중요성과 가치가 인정되어 벌써 일본 연구자와 출판사측에서 번역 출판하자는 제안을 해오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추후 여건이 허락된다면 소정의 절차를 거쳐 외국어로 번역 출판하는 방안을 강구하고자 한다. 본 재단은 이 해제집이 널리 활용되어 발전적이며 미래지향적인 한ㆍ일 관계를 열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ㆍ일 국교정상화 교섭(이하 한ㆍ일회담)'은 세 가지 측면에서 매우 복잡한 교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이 회담은 세계외교사에서도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교섭이 장기화 되어 타결되기까지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14년이라는 세월이걸렸다. 14년간의 마라톤 교섭 기간 중 1,500 여회를 넘는 각종회담이 개최되었다.
둘째, 한ㆍ일회담은 교섭개시 이래 타결을 이루기까지 미국이 지속적으로 깊숙이 관여한'한ㆍ미ㆍ일 3자회담'의 성격을 띤 교섭이었다. 미국은 1950~60년대 냉전기 공산권 봉쇄전략의 일환으로 한ㆍ일관계를 복원시키기 위해 때로는 배후에서 간접적으로 회담촉진을 위한 압력을 행사하였고, 때로는 표면에 나서서 직접적으로 회담타결을 이끌었다.
셋째, 한ㆍ일회담에서는 여러 가지의 의제가 동시에 다루어졌다. 즉, 한ㆍ일회담에서는 기본관계, 청구권 문제, 어업 - 평화선 문제,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 문제 등 굵직한 중대 현안이 동시에다루어졌다.
이처럼 복잡하고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한ㆍ일회담에 대한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분석과 이해를 위해서는 공개된 모든 문서에 대한 치밀한 정리와 검토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 또한 추후일본측의 회담 관련 외교문서 공개와 해제, 정리, 분석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향후 지속적으로 한ㆍ일회담 관련 자료의 발굴과 정리, 검토ㆍ분석, 활용을 위한 다각적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