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워싱톤대학교 방문연구원으로 워싱톤디시에 온지 1년. 작년 9월 역사엔지오세계대회를 끝마치고 부랴부랴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내심 작정을 했었다. 귀중한 기회이니만큼 이 시간을 온전히 자기충전의 기회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귀국을 준비하면서 뒤돌아보니 여전히 바쁜 생활의 연속이었다. 한국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산다는 것은 마치 부모로부터 자식이 독립해서 사는 느낌이랄까?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나와 전혀 다른 생각과 사고를 가진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나와 내가 속한 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면 장점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1년은 국제정치 한복판인 미국에서 한국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때로는 혼자라는 생각에 외롭기도 하고, 내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을 보면서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이야말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인 동시에,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기꺼이'낯선 이들'과의 만남을 이어갔다.
낯선 이들과의 만남은 인터뷰를 통해 시작되었다. 한 그룹은 작년 미 하원 위안부 결의안을 주도했던 재미동포 시민단체 활동가들로 주로 워싱톤디시와 뉴욕, 그리고 로스엔젤레스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또 다른 그룹은 아시아연구, 갈등문제연구를 비롯하여 각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인 전문가들이다. 때로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공감도 하고, 때로는 제3자의 입장에서 의견차이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 고민스러웠지만, 이들과의 대화는 한국과 미국, 더 나아가 한국과 국제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기회였다. 그들이 바라본 한국, 동북아 역사문제, 그리고 그들이 처한 미국 내 현실을 조금 더 가까이 바라보게 된 것이다.
국제정치 중심에서 마주친 낡은 이미지의 한국
최근 독도영유권 문제가 한국을 강타하면서 국제사회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였다. 오래 전부터 독도문제를 국제분쟁 화하려는 일본의 시도가 점점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미국 지명위원회가 이전까지의 태도를 바꿔 독도를 미주권 지역으로 표시한 사건은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지금까지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겠다는 미국이 입장을 바꾼 것은 일본의 의도대로 가는것이 분명했다. 미국에서 독도표기 문제는 해프닝처럼 끝나 원상복귀 되었지만, 한국이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한 노력을 게을리 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정보는 힘이다. 특히 국제사회에서 정보는 국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미국에서 인터뷰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전문가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알고 있는 한국은 매우 제한적이고 낡은 이미지다. 현재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하고 역동적인 정보가 그들에게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낡은 이미지와 단일한 잣대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독도문제로 한국이 떠들썩했을 때,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는 국제기구 관계자와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할 이 사람 역시 일본에 치우친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한국을 이해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워싱톤디시 안에 있는 300여개의 싱크탱크들이 쏟아내는 엄청난 양의 세미나와 강연 주제에 한국이나 동북아의 역사 갈등 주제는 손으로 꼽아볼 정도다. 그에 비해 일본은 엄청난 자금을 투자하면서 계속 그들만의 아젠다를 만들어내고 있다. 중국 역시 국제정치의 1번지인 워싱톤디시에서 아시아연구에서 요지부동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은 한국이 국제사회와 경쟁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게 한다.
동북아 역사문제에 대한 국가경쟁력은 다양한 층을 섭렵할 수 있는 다양한 논리를 만드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논리는 국제사회를 합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세련된 논리이어야 한다. 국내적 공감대가 곧 국제적 공감대가 되긴 어렵다. 이미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의 온도차는 벌어져 있기 때문에, 온도 차이를 줄이면서 국제적 공감대를 이끌어낼 세련된 모양의 논리가 필요하다. 자기주장만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 보편적인 관점에 기반을 두어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는 비교사적인 관점에서 동북아 역사문제를 다양하게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요청된다.
미 NGO, 싱크탱크, 갈등연구소들에 주목하는 이유
그런 점에서 작년 7월 미 하원에서 통과된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은 재미 한인사회 역사상 보기 드문 성공적 사례였다. '위안부'라는 민족적 색채가 강한 이슈를 보편적인 인권 주제로 부각하면서 미 하원의원들을 설득하였던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한ㆍ일문제로 고정할 경우, 어느 누구 편도 들기 어려운 현실 정치 한복판에서 미국 정치인들이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게 된다. 그렇다고 위안부 문제의 본질에 일본의 전쟁범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제사회에 어필할 수 있는 다양한 논리이다.
다양한 논리를 개발하기 위해선, 역사대화의 미개척분야로 관심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 3개월 동안 미국 내 갈등연구소, 싱크탱크, 미국 엔지오 등을 탐방하거나 인터뷰하면서 이 부분이 바로 역사대화의 블루오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갈등연구의 경우, 대부분 미국 대학들이 갈등연구소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동북아 역사 갈등은 국가 간 갈등형태의 한 영역으로 비교사적인 관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싱크탱크 역시 아시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경우 연구만이 아닌 정책제안을 통해 미국의 역할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미국의 엔지오들은 국제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이들 역시 역사교육과 평화교육적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동북아 역사문제를 다룰 수 있는 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 미개척분야를 개척한다는 것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눈에 보이는 사업에 투자할 것인가? 아니면 장기적인 비전을 가진 사람에 투자할 것인가? 역사문제는 마음만 급하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에, 미래를 준비할 사람을 키우는 일이 급선무이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역사대화의 블루오션을 확장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