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한국과 일본 간의 해상 교류에서 동해는 그 시원을 상고할 수 없을 때로부터 이용되던 루트였다. 고대 한국인들은 연해주와 함경도 해안 그리고 동해안에서 출발하여 일본의 혼슈의 서해안 일대 항만에 닻을 내렸다. 일부는 기착지 부근에 머물면서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고 가져온 물건을 넘기기도 했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서해안에서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가야 하는 노정이 기다리기도 하였다. 동해가 교류의 루트로 개발된 것은 아마도 전자와 같은 교역활동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 여겨지는데, 고구려는 이 루트를 통한 대왜 교섭에 나섬으로써 대외정책에서의 변화를 모색하였다. 훗날 발해와 일본 간의 외교관계도 동해 루트를 오고간 양국 사절에 의해 유지될 수 있었다. 이러한 관계사상에서 나타난 다양한 흔적들과 그 의미를 살펴보려는데에『고대 환동해교류사』발간 사업의 기획 의도가 있다.
관련 작업의 내용상, 어느 한 분야의 전공지식으로는 해결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다. 조사과정에서 대면하게 될 유적과 유물의 분야별 전공자로 이루어진 조사팀의 구성이 필요한 것이다. 이번 조사팀은 고구려와 발해사 전공과 고고학ㆍ불교미술사 전공의 연구자 4명으로 편성되어 관련 유적의 연원, 고구려 발해와의 관련성 혹은 일본 미술사 속에서의 위치 등을 가급적 현장에서 판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동해 루트 상에서 요나고와 이즈모 지역은 가장 남단에 해당한다. 관련 시설물이 남아 있는 것은 없지만, 적석총이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다고 소개된 바 있다. 즉 고구려와의 관련성, 그것도 묘제에서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 현장에 가보니, 고구려와의 관계를 직접 연결 짓기는 어렵다고 판단되었다.
한편 그리 큰 기대 없이 들어섰다가 의외의 소득을 얻게 된 유적이 있었다. 카미요도(上淀) 廢寺址라는 옛 사찰의 발굴현장과 자료관이었다. 고구려 미술의 흔적이 여실한 벽화 조각들이 남아 있는 유적이었던 것이다. 이 절의 유래나 고구려 미술과의 상관성은 좀 더 고구해 보아야 할 문제이긴 하지만, 얻어온 조사보고서의 내용에 기대가 크다.
연일 섭씨 35도와 무리한 일정으로 다들 지쳐가고 있을 때, 후쿠이현립박물관 소장자료와 맞닥뜨렸다. 발해 팔련성에서 나온유물이 있다는 고지마 선생의 전언에 따른 조사였는데, 기대 이상의 유물을 실견하고 더듬어 볼 수 있었다. 완형의 발해기와를 비롯하여 여러 편의 소조불상 조각, 혼춘 근방의 산성에서 나온 유물 등을 일일이 자로 재고 특징을 적어 두었다. 이들 유물은 일제시대 군인으로 만주에 파견되었다가 현지에서 유적들을 직접 조사했던 사이토라는 이가 남긴 것으로, 우리 학계에 널리 알려진 세키노 다다시 등의 학자군에 비해 지명도는 떨어지지만, 특정지역에 대한 초기 조사라는 점에서 관심이 간다.
고구려와 발해는 隋唐의 등장과 그로 인해 고조된 서방으로 부터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동해 루트를 이용하여 대일외교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남아 있는 유물과 유적은 적고 그 마저도 관련 연구자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의 연구수준을 정리하여 봄으로써 쟁점을 부각시키고 새로운 사실이 제대로 소개된다면, 기왕의 이해를 뛰어넘는 새로운 논의는 분명히 나올 수 있을 것이라 믿어진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큰 소득이라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조사팀의 여러 선생님께 다시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올린다. "여러분은 드림팀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