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잊혀지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함께 하고 미래에 영향을 주는 살아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청소년들은 잘못된 과거 역사를 바로 알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이와 같은 취지로 지난 8월에 열린 제3회 역사NGO세계대회에서는 BC급 전범문제 등 한·일 역사 관련 주제를 가지고 전문 학자와 청소년들이 함께 하는 '역사 대화' 시간이 마련됐다. 여기서 30여 년간 전범 문제, 전후보상 문제를 연구해온 우츠미 아이코 교수를 만났다.
한국까지 와서 손자뻘인 고등학생들과 만나 강연하고 얘기를 나누었는데 소감은?
오늘 강연에 스스로 참가한 학생들은 특별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우수한 학생들이다. 역사에 거리를 두고, 별다른 의식없이 생활하고 있는 학생들이 많은데, 이렇게 역사의 영향을 느끼고, 관심을 가지고 공부 하려는 젊은이들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 반갑고 기쁘다. 역사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예쁘고 순수한 학생들을 보니 한국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문제 특히 전쟁 책임 문제, 전후보상 문제에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우연히 재일조선인 차별에 대해 쓴 한편의 다큐멘터리 책을 읽었게 되었고 그 전까지 몰랐던 사실에 깜짝 놀랐다. 스물 세살짜리 교사였던 당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일본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교사 일을 그만두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재일조선인 관련 주제로 논문을 쓰기도 했는데 당시 그런 주제로 논문을 쓰면 취직도 어렵다며 지도교수를 비롯해 주위에서 만류 했다. 취직 못해도 상관없다며 논문 주제를 고집했고 꾸준히 그 테마로 조사, 연구를 했다. 덕분에 취직은 아주 늦게, 46살에야 다시 할 수 있었다.(웃음)
연구를 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일단 자료를 조사할 때 원하는 자료를 구할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일본에서는 자료 공개에 제한이 많아서 볼 수 없는 자료들이 있다. 일본 식민지배 시기에 징용 당했던 조선인들에게 지급되어야 할 공탁금 리스트를 요구하면 금액만 있고 받을 사람 이름은 지운 채 나오는 경우가 한 예이다. 정부에서 의도적으로 숨기려고 하는 것들이 있고 무시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자료조사를 위해 미국, 호주, 인도네시아 등 관련 국가를 직접 찾아다녔다. 덕분에 일본군으로 징집되어 인도네시아에서 일하다가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에 공을 세운 조선 출신 양칠성과 같은 인물을 찾아 빛을 보개 할 수 있었다. 여유가 있어서 해외를 다니며 조사를 한 것이 아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으고 배낭을 메고 다니며 가난한 여행을 했지만 뜻이 있어서 힘들지 않았다. 의식이 있고 의욕이 있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일본 교과서 문제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의 역사교육은 평화공존을 위한 교육보다는 자국의 우월주의를 강조하는 교육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한 의견은?
교육이 정부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중립성을 가져야하는데 현재 일본에서는 그렇게 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교과서 채택 문제에 앞서 교과서를 채택하는 시스템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일본 교사들은 1950년대부터 계속 싸워왔다. 그나마 교사들의 이런 운동 덕분에 후소샤 교과서가 널리 채택되지는 못하고 있다. 교과서 문제는 정치와도 연관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
현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힘을 길러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님들이 역량을 키울 시간, 공부 할 수 있는 자신의 시간을 확보해야하는데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다.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다. 그러다 보니 정부에서 제공하는 지도요령대로 가르치게 되는 것이다. 선생님들의 권리를 보장해, 연구를 하며 스스로 느끼고 깨달아 함께 변화를 만드는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앞으로의 역사를 위해 젊은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조언한다면?
직접 해외로 다니며 자료조사를 할 때,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더 나쁘다. 악질이다"와 같은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포로수용소에서 포로 생활을 했던 전쟁 피해자와 가족들이 그런 말을 했다. 이들은 포로수용소에서 감시자 역할을 했던 조선인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는데, 이건 잘못된 상황이다. 일본에 의해 끌려와 감시인 자리에 앉아 그 일을 해야 했던 그 조선인도 피해자다. 그런데도 오히려 BC급 전범으로 재판을 받고 형무소에서 형을 살기도 했는데 일본 정부로부터 외면당해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제대로 살수 없었던 조선인들도 있다. 그런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세대들은 그 사실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전달해야 한다. 그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 한다. 먼저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으로 부모, 조부모, 친척들이 겪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인터뷰를 해보자. 그들의 인생이 역사고, 그들의 증언이 자료다. 그 자료가 토대가 되어 또 다른 궁금증을 만들고 다시 조사하고 연구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한 역사NGO세계대회가 일본의 평화운동가나 시민사회에서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역사NGO세계대회는 충분한 지원과 큰 에너지가 필요한 행사다. 일본에서는 쉽게 열릴 수 없는 행사이기에 참가하면서 많이 놀라워했고, 부러워했다. "이게 바로 한국의 힘이구나" 싶었다. 역사를 테마로 하는 세계의 NGO들이 모여 서로 교류하는 것은 좋은 기회다. 이런 교류의 횟수와 시간이 앞으로 점점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NGO세계대회에 바람이 있다면 학생들과 전쟁체험자들이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더 많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책과 자료에서 보는 것보다는 체험자들에게 듣는 한마디가 더욱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직접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우츠미 아이코
케이센죠가쿠인대 교수, 일본조선 연구소 연구원, 인도네시아 파쟈쟈란대 강사 등을 역임했다.와세다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일본 와세다대 대학원 객원교수로 일본과 아시아 관계, 전후보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아시아의 역사 및 평화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