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역사화해 국제포럼
전근대 시기에는 한국과 베트남 사신이 간간이 중국 북경에서 만나 시문을 주고 받았다. 현대에는 교통의 발달로 양국 간에 직접 엄청난 물적·인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는 서로 시문을 주고받으며 상대의 인품을 존중했었는데 비해 요즘은 상호 대화가 없어 이해부족으로 오해를 낳은 경우가 적지 않다. 비근한 예로,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회사의 노사문제라든가 한국 시어머니와 베트남 며느리 간에 갈등 같은 경우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교육과 미디어는 중요한 대화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한국과 베트남은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두 나라 간의 이해는 많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때문에 두 나라 모두 서로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제3회 동아시아 역사화해 국제포럼은 이러한 의도에서 "역사교육을 통한 한국과 베트남의 상호 이해 증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8월 27~28일 이틀에 걸쳐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발표자는 한국 측에서 3명, 베트남 측에서 3명,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서의 사례를 듣기 위해 중국·일본·호주에서 각각 1명씩 초청되어 모두 9명이었다.
베트남 측 발표자들은 1992년 12월 두 나라 국교정상화 이후 해가 갈수록 양국관계가 점점 더 긴밀해 지면서 베트남에서는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대학에는 한국학과들이 설치되고 한국어는 베트남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외국어의 하나가 되었는가하면 적지 않은 책과 논문들이 발표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어 강의 시간이 부족하며 강사의 질도 많이 향상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강의 과목들도 전반적으로 초보적인 정도에 그치고 있으며, 전문적인 수준에 달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출판물 또한 영문으로 된 것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으며 수준도 지극히 평범하다고 한다. 한국 측의 지적으로는 출판물에 오류가 적지 않은데 이 점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 베트남인들의 올바른 한국 이해에 중요하다고 하였다.
인재 양성을 위한 중장기 계획 수립 필요
베트남에서 한국학 발전에 또 한 가지 문제는 한국학과에 입학한 학생들이 졸업 후 주로 한국회사 취직을 목표로 하며 학문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한국학과에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여 졸업한 후에는 한국에 유학시켜 석사학위 및 박사학위를 받게끔 하는 중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한국 정부나 각급 기관에서 도와주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현재의 실정을 감안하건댄 이는 한국 측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일일 것 같다는 한국 측 참가자들의 의견이 있었다.
한편 한국 측 발표자들은 한국에서 베트남 역사 인식은 베트남에서의 한국역사 인식만큼 지극히 초보적 단계라는 주장이었다. 이유는 우선 베트남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각국을 저개발국으로 생각하여, 우리가 배울 것이 있다면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에서라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주원인이다. 이 점에 대하여는 일본과 호주에서 온 학자들도 거의 같은 의견이었다. 일본에서는 인문대학소속 교수들이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지에 대하여는 '이류 지역'(minor region)으로 생각하면서 이들 지역 역사연구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간혹 있는 동남아시아 전공교수가 퇴임하면 그 자리가 채워진다는 보장이 거의 없다고까지 하였다. 호주에서 온 학자는 동남아시아 각국이 서구열강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신생국가의 건설을 위해 서구 지향이 되는 동시에 민족주의가 강화되면서 자국의 역사만을 강조할 뿐 이웃 나라의 역사를 이해하려고조차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한·베, 닮았지만 다른 점에 유의를
우리의 베트남 역사와 문화에 대한 무지는 중등학교 교과서에 그대로 들어나 오류가 적지 않으며 또한 언론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견해들이었다. 이런 점에서 베트남역사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중등학교 역사교과서의 정확한 서술이 매우 중요하다. 이와 아울러 베트남 역사를 가르칠 때 그 자체만을 가르치지 않고 교사들이 우리의 역사와 비교하면서 수업을 진행한다면 학생들의 관심을 유발시키는데 매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의 일부 대학에서는 중등학교 동남아시아 역사교육의 향상을 위해 고등학교 교사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 역사와 문화의 보급에는 언론도 많이 협조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을 통해 본 우리나라 언론의 베트남 기사를 분석한 발표자에 의하면 경제문제가 41%, 베트남전쟁이 23%로 전체의 64%를 차지하고, 문화에 대한 정보는 3%에 불과하다. 결국 이러한 정보의 치우침 또는 부족함이 우리의 베트남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정보수용자는 이러한 정보제공의 한계를 이해하고 정보수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나 일반 정보수용자가 이러한 자세로 임하기는 그리 쉬운 일인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언론이 보다 정확하고 균형적인 보도를 하도록 노력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여러 발표자들이나 토론자들은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 개설이나 서적 출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많이 개진하였다.
끝으로 중요한 점은 흔히들 한국과 베트남은 역사와 문화가 유사하다고 하는데 차이가 있다는 사실에도 유의하여 이를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두 사회가 이점에서 적지 않게 다르다는 것, 즉 효라든가 남존여비 같은 개념의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의 많은 회의들을 보면 논의 자체로 끝나고 아무런 결실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회의는 그와 달리 실질적 효과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것은 무엇보다 양국의 교과서나 미디어에 나타난 오류들을 시정하는 일일 것이다.
이상에서 논의한 내용으로 보아, 두나라 유네스코위원회와 동북아역사재단이 이번에 역사교육을 통한 두 나라 간의 상호이해 증진을 위한 회의를 주최한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임을 밝혀두고 싶다. 이러한 사업이 가능하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