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는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재특회, 在特會)'이라는 민족차별과 배외주의를 선동하는 단체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들은 '행동하는 보수'를 자칭, 재일 코리언을 비롯하여 재일 외국인의 생활권이나 참정권 주장에 대하여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하며, 이들 권리를 요구하는 개인·단체·집회·민족교육 현장 등에 대한 '항의' 행동을 전개하고 있다.
재일본 한국YMCA 또한 몇 번인가 그들의 '항의 행동'의 타깃이 되었다. 지난해 11월, YMCA가 재일 외국인의 참정권에 관한 좌담회에 장소를 제공했을 때도 그들이 회관 앞에 집결해 '항의'를 했다.
수십 명의 참가자가 외치는 내용을 들어보면 '조센진은 돌아가라', '조센진은 구더기다, 바퀴벌레다' 등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논할 가치도 없는 일이기는 하나 이런 발언들이, 그것도 도쿄 한 복판에서 거침없이 울려 퍼지는 것 자체가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족주의 단체의 가두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예전에는 군복을 몸에 두른 직업적인 우익이 중심이었지만 재특회 행동 참가자는 인터넷을 통해 집회 소식을 접한, 평범한 복장의 일반 시민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 중에는 아이를 동반한 참가자도 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이들이 가두 행동의 현장에도 얼굴을 내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일본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민족차별적 배외주의자는 아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일본인의 대 한국관은 최근 10년 동안 크게 호전되었다. 2002년에 열린 한·일 월드컵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은 단연 한류 붐이다.
한국 병합 100년을 맞이하는 일본의 내면 풍경
'겨울연가'를 첫 물꼬로 '대장금', '태왕사신기'에 이어 '꽃보다 남자' 등 드라마가 NHK를 비롯한 지상파를 통해 방영되면서 인기를 끌었는데 이는 10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YMCA 한국어교실의 수강생은 10년 전에 비하면 2배, 20년 전에 비하면 거의 3배로 늘어났다. 특히 주간반에는 주부 수강생이 많고 그 중 대부분이 한류 드라마나 한국여행을 계기로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이다. 주부뿐만 아니라 젊은이들 사이에도 한국에 대한 관심은 고조되고 있다. 동방신기나 빅뱅 등의 아이돌 그룹은 일본의 가요차트를 뜨겁게 달구고 있고, 콘서트에는 제아무리 큰 공연장이라 할지라도 팬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
스타를 좋아하는데 그치지 않고, 일상적으로 일본인과 한국인이 친구가 될 기회도 늘어났다. YMCA에서는 한국에서 온 유학생을 대상으로 일본어 공부를 도와주는 자원봉사활동도 펼치고 있는데, 대학생을 비롯한 많은 시민들이 자원봉사자로 등록해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하여 유학생과 인연을 맺은 남학생, 여학생들은 방학이 되면 유학생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며 더욱 한국을 좋아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처럼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좋아지는 한편, 북한에 대한 이미지는 일본인 납치사건이 공표된 2002년 이후 극단적으로 악화되었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북한을 '절대악' 으로 여기고 있다. 경직된 북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대화나 교류를 추진할라치면 많은 비난과 야유가 쏟아진다. 북한 지도층의 자세에도 문제가 있다고는 하나 시민이나 매스컴이 북한에 대해서 적대적인 자세 이외에는 용납하지 않는 것 또한 비정상적이다.
이러한 지금의 풍조는 과거에 전체주의가 나라 전체를 풍미하던 시대를 연상케 한다. 또한 사람들이 북한을 이야기하는 어조에는 한류 붐으로 불식된 것처럼 보였던 일본인의 한민족 멸시관이 아직 뿌리 깊게 남아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민족차별적 배외주의자의 행동이 왕성해지고 있는 점, 한류 붐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많은 일본인이 한국인과 친구가 되고있는 점, 북한과의 대화나 교류를 추진코자 목소리가 묵살되고 있는 점 등등 이 모든 현상이 한국 병합 100년을 맞이하는 일본의 현주소다.
다시 100년 후 후회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세계화가 확산되는 가운데 일본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민족차별적 배외주의자가 그 세력을 넓히고 있다.(한국도 마찬가지가 아닐는지?) 그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화해와 상생의 길을 추구하기를 대놓고 거부한다.
감정적이 되어 고립과 적대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냉정하게 대화하여 화해와 상생을 추구하는 길을 택할 것인가? 지금 우리는 그 기로에 서있다.
YMCA에 몸담고 있는 필자는 화해와 상생을 추구하는 길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으로 일본과 한국의 청소년이 만나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애써 왔다. 앞으로 그러한 움직임을 더욱 발전시키는 한편, 국내외에서 같은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협력과 연대도 늘려갈 생각이다.
또다시 100년이 흐른 후 한국 병합 200년이 되었을 때, 과거를 회상하며 그 때 길을 잘못 택했다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또 2110년에는 일본 열도에 살아가는 사람들도 한반도에 살아가는 사람들도 모두 평화 속에서 번영을 구가하기를 꿈꾸며, 지금 이 시대에 주어진 과제를 착실히 풀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