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일본서기』(日本書紀)는 문제가 많다고 하는데 한반도와의 관계에서 무엇이 문제인가요?
Answer:
천황가 미화를 위해 편찬
『일본서기』는 720년 일본 조정에서 편찬한 최초의 정사이다. 도네리친왕 등이 편찬에 가담하였으며 신대(神代)에서 지토(持統)천황(재위 687~696년)까지를 기술하고 있다. 편년체 사서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전체 30권, 계도 1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현재 계도는 전해지지 않는다.
『일본서기』는 일본국의 유래와 천황가가 일본을 통치하는 정통성과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러한 목적성 때문에 『일본서기』에는 미화된 내용,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터무니없는 내용, 사실 관계를 왜곡한 내용들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엄밀한 사료 비판 없이는 이용할 수 없는 사서이다.
예를 들면 일본을 다스리는 천황가는 천상계의 아마테라스오호미카미(天照大神)의 직계 자손으로, 그 자손이 일본을 다스리는 천황이 되었다는 스토리는 물론 사실일 수 없다. B.C 660년에 진무천황이 일본을 건국하였다는 것이나 그 자손들이 대를 이어 통치해 왔다는 것도 사실로 인정받기 어렵다.
문제점은 일본 국가의 기원에서만이 아니라 한반도 국가들과의 관계 설정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서기』에는 신라, 가야, 백제, 고구려를 모두 일본의 조공국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특히 신라는 진구(神功) 황후의 소위'삼한정벌'전승의 대상국으로 나온다. 그리고 이러한 정벌과 조공의 연장선에서 소위'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에서 활약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과거 일본인들은 4~6세기 왜국 야마토 조정의 한반도 남부 지배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땅을 파면 그 아래에 지배의 흔적을 발견할 줄 알고 식민지 통치 시대에 많은 발굴을 벌였다. 그러나 지하에서는 그런 흔적을 제공해주지 않았다.
신라에 멸망당한 백제와 왜국의 관계가 주는 시사점
오늘날에는 한반도 여러 나라가 왜국(일본)에 조공하였다거나 정벌 당했다는 『일본서기』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인식이 한·일 양국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고고학적으로도 임나일본부 학설은 성립하기 어려운 단계에 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왜 이런 식으로 한반도 여러 나라들과 관계가 설정되어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연구가 필요하다. 『일본서기』가 만들어질 시점에 고구려와 백제는 이미 멸망한 상태였으며 백제 왕족의 일부는 왜국으로 건너가 천황의 신하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 신라는 일본이 상대해야 할 강국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백제와 왜국의 관계는 시사 하는 점이 많다. 『일본서기』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백제기, 백제신기, 백제본기 등 백제3서가 다수 활용되었으며 또한 많은 백제 망명객이 천황의 신하로 봉사하는 상황에서 과거 백제의 한반도 남부에서의 활동상은 이제 시점이 바뀌어 마치 일본의 활동인 것처럼 묘사되어 버렸다는 점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과거 '임나일본부'설의 출발점이었던 신공기의 가야 7국 정벌담은 백제의 활동이 왜국의 활동으로 뒤바뀐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