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에서 독도만큼 국민적인 관심사도 많지 않을 것이다. 독도문제는 제2차대전 이후 한·일의 지속적인 갈등요인이었다. 그래도 1990년대 전반부까지는 독도문제가 양국 간 갈등으로 크게 부각된 경우는 드물었다. 독도문제는 한·일 양국 사이에 일종의 잠재적 현안에 가까웠다.
독도에 관한 국내 언론의 보도건수는 1996년을 계기로 갑자기 수십 배로 증가하였다. 이유는 무엇일까? 1996년 한·일 양국은 모두 UN해양법협약의 당사국이 되었고,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선포하였다. 자연 동해에서의 EEZ 경계획정이 현안으로 등장하였으나, 독도 영유권 문제의 해결 없이 EEZ 경계 합의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일본정부는 전례 없는 수준으로 독도 영유권의 주장을 강화하였고, 한국 내에서의 반발도 날로 고조되었다. 덩달아 일본인들의 독도 인식 또한 상승하였다. 변화된 국제해양법 환경으로, 독도문제가 수면 위로 급부상한 것이다. 결국 동해에서의 EEZ 경계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독도문제에 관한 갈등은 지속적으로 현재화할 것이다.
그런데 동해 EEZ 경계와 관련하여 국내에서는 독도에 관한 몇가지 허상이 신화처럼 언론보도와 여론사이를 떠돌고 있다. 첫째, 독도가 독자적 EEZ를 갖기 위해서는 "암석(rock)"이 아닌 "섬(island)"이 되어야 한다. 둘째, 독도가 섬이 되기 위해서는 "2가구 이상의 주민과 푸른 숲 그리고 식수"가 확보되어야 한다. 셋째, 독도가 섬으로 인정받기만 하면 한·일간 동해 EEZ 경계는 독도와 가장 가까운 일본령 오끼도 사이의 중간선이 된다는 것 등이다. 국내 일간지를 유심히 본 사람들은 위와 같은 보도를 여러 차례 읽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국제법상 근거 없는 출처불명의 주장에 불과하다.
"주민, 숲, 식수"는 필요 충분한 법적 요건이 아니다
위와 같은 주장이 나온 배경은 UN해양법협약 제121조에서 비롯된다. 여기에서 섬이란 만조때에도 수면 위로 나오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육지지역이라고 정의하고, 다만 "인간이 거주할 수 없거나 독자적인 경제활동을 유지할 수 없는 암석(rocks)"은 자신의 EEZ나 대륙붕을 갖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3항)
이를 보고 국내 유력 일간지에는 독도가 서양에서 전부터 불리던 리앙꾸르암(Liancourt rocks)으로 부르면 EEZ를 가질 수 없으니 이 호칭을 어떻게든 피하여야 한다는 우려가 등장한다. 그러면서 "2가구 이상의 주민과 나무(또는 숲), 그리고 식수"의 요건만 확보되면 독도는 해양법협약 제121조에서 말하는 암석(rock)이 아닌 섬이 되니 이를 위한 노력을 경주하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지금은 한 가구에 불과한 독도 주민을 한 가구 더 늘리자, 독도에 나무를 심어 푸른 숲을 가꾸자, 현재 자연수가 부족하니 정수기를 설치하여 충분한 식수를 확보하도록 하자는 주장이나 운동이 종종 벌어진다. 그러나 한 조사에 따르면 1973년 이후 1996년까지 독도에 모두 2만2천 구루가 넘는 나무가 심어졌으나, 생존은 50여 구루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사실 해양법협약 제121조 3항이 말하는 "암석"(rock)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국제법 학계에서도 논란이 많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암석"이 반드시 암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며, 그 구성성분과 관계없이 매우 작은 섬을 가리키는 의미이다. 따라서 독도를 남들이 암(rock)이라고 부르든 섬(island)이라고 부르든 그 명칭에 관하여 크게 흥분할 필요는 없다.
다음 독도가 "2가구 이상의 주민, 숲, 식수"를 갖추면 해양법협약 제121조 3항의 암석(rock)이 아니라, 섬이 되어 독자의 EEZ와 대륙붕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 역시 특별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 해양법협약에는 "인간이 거주할 수 없거나 독자적인 경제활동을 유지할 수 없는 암석"이라고만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인간의 거주가 반드시 상주인구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유력하며, 정부의 인위적인 주거환경의 조성으로 위의 요건을 달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반대론도 유력하다. "주민, 숲, 식수"는 섬이 독자의 EEZ를 가질 수 있느냐에 대한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겠지만, 필요 충분한 법적 요건은 아니다. 즉 국가나 사회의 지원을 받아 독도에 1가구를 더 이주시키고, 숲을 조성하기만 하면 독도가 곧 바로 독자의 EEZ를 갖는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EEZ 경계획정의 원칙은 "공평한 해결"
다음 독도가 자신의 EEZ를 갖는 섬이 되면 독도-오끼도 중간선이 자동적으로 동해의 EEZ 경계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이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해양법협약은 인접국간의 EEZ 경계획정에 관하여 "공평한 해결"의 원칙만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통상적인 지형에서는 중간선·등거리선이 공평한 경계 획정방안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협약은 경계획정의 기본원칙으로 중간선 원칙의 명기를 의도적으로 회피하였다. 우연한 위치의 작은 섬의 존재가 해양관할권의 커다란 왜곡을 초래하는 결과를 피하겠다는 취지이다.
사실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독도보다 훨씬 크고 인구도 많은 섬이 해양경계 획정시 중간선 설정의 근거로 인정받지 못한 예가 적지 않았다. 해당수역의 상황으로 볼 때 중간선은 오히려 공평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일본의 오끼도는 인구와 면적이 울릉도와 비교하여도 몇 배의 수준이며, 독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다면 동해의 EEZ 경계획정이 객관적 판단에 맡겨진다면 독도가 일본의 오끼도에 대항하여 100%의 효과를 인정받아 그 중간선이 경계로 결정될 가능성은 사실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국내 언론에서는 출처불명의 이론이 자주 등장하여 여론을 좌우하였다. 일견 애국적 오해에 입각한 이러한 주장과 보도는 독도문제의 올바른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