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한일역사의 쟁점 1, 2》가 출간되었다. "2010, 하나의 역사 두 가지 생각"라는 책의 부제에서 보이듯, 이 책은 한·일 오랜 역사 현안을 바르게 이해하고 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해,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연구 성과를 모아 편찬한 것이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2년 동안 진행된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한국 측 대표로 한·일 연구자들의 역사대화를 이끌어 간 조광 교수를 만났다. _ 편집자 주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2기 활동을 마무리했다. 2기 역사공동위의 과제와 성과는 무엇이었나? 1기에 비해 2기에서 발전한 것이 있다면?
2002년 처음 출범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1기, 2007년부터 2009년까지 2기 활동을 진행하였다. 한·일 양국은 오랜 관계만큼이나 역사 문제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는 점이 많다. 1기와 2기 때 합의해서 진행한 주제가 모두 역사 분쟁과 관련한 것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상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각기 독자성과 의미가 있다. 2기에 '교과서위원회'(일본에서는 '교과서 소그룹')라는 교과서 분과를 설정하고, 교과서의 역사와 제도뿐만 아니라 현행 교과서의 문제점을 다룬 것은 1기와 비교하여 발전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일의 역사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다룬 주제를 분과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기에서는 총 24가지 주제에 대해 합의하였다. 1분과 고대사분과에서는 △고대 한·일관계의 성립, △고대 왕권의 성장과 한·일관계, △고대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재편과 한·일관계 등이고 2분과 중근세사분과에서는 △14~15세기 동아시아 해역 세계와 한·일관계, △동아시아 세계와 임진왜란, △17~18세기 동아시아 세계와 한·일관계 등 세 가지 주제였다. 3분과 근현대사분과는 △한·일 근대 민족국가의 수립 과정과 상호관계, △일제 식민지 시기 조선과 일본의 사회 변동,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일관계의 형성과 변화, △사람의 이동과 여성 등 이다.
'교과서위원회'는 이념과 제도 편찬, 구체적인 교과서 기술 등으로 주제를 나누어 진행하였다. '이념'에서는 교과서와 근대 근대성 문제를, '제도 편찬'부분에서는 역사 교과서 편찬 제도의 변천 문제, 교과서 문제의 역사적 전개 문제를, '구체적인 교과서 기술'과 관련해서는 교과서에 나타난 전쟁 문제, 교과서에 나타난 근대 법질서와 국가, 교과서에 나타난 현대, 현대사, 교과서에 나타난 민족, 민족운동 문제 등 총 24가지 공동 연구 주제를 선정하고, 공동 보고서를 만들었다. 각 분과별로 세부 연구를 진행해 80여 편의 논문을 생산하였다. 이런 것들이 2기만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역사공동위원회에서 한·일 간 주요 쟁점은 무엇이었나?
가장 큰 쟁점은 근대 식민지화 과정이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한 것은 동일 문명권 국가를 식민지화한 점에서 세계적으로 유일한 사례이다. 식민지화에 관한 문제점이 많고 그것들은 나름대로 특수성이 있기 마련인데, 한·일 간의 식민지 체험과 관련한 역사가 있기 때문에 바로 현대사 문제가 중심이 되어 진행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현대사의 뿌리는 전근대사이기 때문에 전근대사의 쟁점도 비중이 큰 편이다. 전근대사 부분에서는 상호 합치점을 찾아 갈 수 있었는데, 근현대사 부분에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근대사에서 한·일 학자들이 특히 첨예하게 대립한 내용은 무엇인가?
식민지화 과정에서 맺은 제국주의 조약의 정당성, 합법성 문제다. 이것은 일본 식민지 지배의 합법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과거 일본인 중 상당수는 일본이 조선을 식민 지배한 것이 당연히 합법적이라고 파악했다. 그러나 이제 역사대화가 진행되고 한국 쪽에서 계속 문제를 제기해 적어도 한국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압에 의해 조약이 체결되었다는 것은 일본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조약의 합법성 문제, 강제동원 문제, 정신대 문제, 군대 성노예 문제에 대한 시각은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고대에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양국 학자들이 학문적으로 공식 폐기한 것이 위원회 2기 활동의 성과이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까지 일본의 한국 침략 합리화와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을 고집하고 있다. 이런 생각이 일본 학계에서 다수의 의견인가?
양국 학자들은 임나일본부설이 유효한 학설이 아니라는 것에는 동의했다. 그동안 후소샤(扶桑社) 교과서를 비롯한 극우적 교과서에 임나일본부설이 실려서 문제가 되었다. 2기에는 고대 한·일관계의 성립에 관한 학설인 임나일본부설을 비롯해 각 시대별로 어떤 연구가 한·일 양국에서 진행되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나 공동위원회의 결정에 강제력은 없다. 일본이나 우리나라 교과서 제도가 국정이 아닌 검인정 제도이기 때문에 저자들이 알아서 바꿔야 한다. 그래서 교과서 집필자, 출판사, 행정기구, 문부과학성, 관심있는 각종 연구기관들에게 보고서를 널리 보급해 바로잡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국 침략과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이 일본 학계의 다수 의견은 아니고, 식민지 근대화론에 경도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식민지 수탈론에도 동의하는 학자들이 일부 있다. 이런 역사대화를 통해 일본의 정통 사학계에서는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전제로 서술하던 것을 점점 반성하고 있는 분위기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검정조사심의회를 열고, 독도를 일본 영해에 포함해 국경선을 그은 지도가 있거나 독도가 한국에 불법 점거되어 있다고 명기한 일본 초등학교 5학년용 사회 교과서 다섯 가지를 승인했다. 또한 일본 정부는 "다케시마(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시키기 위해서"라고 자신들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밝혔다. 2기에 독도 문제와 관련한 논의가 있었는가?
독도 문제는 현재 당면한 영토 문제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제국주의 침략의 일부로서 역사 문제다. 영토는 실효적 지배가 중요하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분쟁 지역인 것처럼 보인다면 일본이 바라던 대로 우리가 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독도 문제를 공동 연구 주제로 다루지 않았다.
2기의 결과가 한·일 역사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양국의 역사 인식에 관한 문제점을 서로 고치자는 뜻을 담고 있긴 하지만, 사실 일본 역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많이 지적했다. 우리 역사 교육에 비추어 볼 때 잘못된 일본의 주장들을 일본에 전달하는 형식이 될 것이다. 1기, 2기의 성과를 일본의 연구자나 교과서 집필자들에게 제공해 그들이 학문적 판단을 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이 연구 성과들을 양국 학자들이 합의한 데다, 논리적으로 흠잡을 점이 없다고 판단하는 양심적 연구자라면 분명히 수용할 것이라고 본다.
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남긴 과제와 관련해 3기의 과제는?
내용과 운영의 측면에서 말할 수 있다.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목적은 한·일의 역사를 보는 시각에서 합의한 부문과 합의하지 못한 부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자는 것이다. 현재 정신대 문제를 비롯해 한·일 간 조약의 합법성 문제, 독립운동 문제,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피해 문제 등 합의되지 않고 해결하지 못한 주제들이 많다. 그러나 합의가 안 된 주제에 대해서 끝없이 토론하며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한다면 어느 단계에는 의견 차이의 폭이 좁아질 것이라고 본다. 이것이 내용상의 과제다. 그래서 3기를 진행해야 한다.
운영면에서는, 기간이 2년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먼저 각국 위원장이나 총간사부터 임명하면 이들이 미리 접촉해 연구 주제를 선정하고 각 주제에 적합한 연구자들을 연구위원으로 위촉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일본의 한국강제병합 100년, 한국전쟁 60주년 등 올해는 역사적으로 여러모로 의미 깊은 해이므로, 역사학계뿐만 아니라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다.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역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현재 직면한 문제 중 어떤 것도 해결하기 어렵다. 역사 문제가 남아 있는 한 지뢰 지대를 걷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역사에 대한 관심과 역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국가 구성원인 국민에게 한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은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