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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미국 아시아학회연례 학술대회 고구려사에 대한 다양한 시선의 만남과 새로운 모색
  • 여호규 한국외대 교수
미국 아시아학회연례 학술대회

지난 3월 25일부터 나흘간, 미국의 첫 번째 수도인 필라델피아에서 미국 아시아학회(AAS) 2010년 연례 학술대회가 열렸다. 나흘간 총 282개 세션이 열렸는데, 미국학계의 중국에 대한 관심과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중국 관련 세션이 87개나 되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국 관련 세션이 20여개에 이르렀고, 국내학자가 조직한 세션도 다수 눈에 띄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것은 근대의 민족정체성이나 국경을 뛰어넘는 새로운 연구방향을 모색한 세션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참여한 고구려사 논쟁 세션도 'Border-Crossing' 주제로 분류되었는데, 'Who Owns the Past? Views on the Koguryo History Dispute in East Asia'라는 다소 선정적인 명칭에서 보듯이 동아시아 각국의 관점을 골고루 다루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번 세션은 작년 여름에 조직되었는데, 한국학자만 참여할 경우 한국학계의 정당한 견해조차, 역사왜곡을 일삼는 중국학계의 주장과 동일시될 우려가 있었다. 이에 세션 구성을 한·중·일 3국학자가 모두 참여해 각국의 관점을 논의하는 장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러한 점에서 중국학자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한국, 일본, 대만과 함께 미국 학자까지 참여했다는 점에서 비교적 균형을 이루었다고 생각된다.

본 세션은 학술대회 사흘째인 토요일 오후에 열렸다. 학술대회가 막바지로 접어들어 다소 어수선한 상황이었지만, 30여명의 청중이 2시간 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경청했다. AAS 학술대회의 경우 중국사든 한국사든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낮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매우 뜨거운 반응이라 할 수 있다.

민족정체성과 국경 뛰어넘는 새로운 연구방향 모색

먼저 필자가 중국의 동북공정 추진과 고구려사 인식체계의 변화를 발표했다. 필자는 1949년 중국정부 수립 직후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확립하고도 이를 고구려사에 적용하지 않은 배경과 1990년대 중반부터 동북공정을 추진한 배경을 집중 검토했다. 특히 동북공정 추진 이후 현재의 영토에 입각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으로는 고구려사 전체를 중국사로 편입하기 힘들자, 과거의 영토를 근거로 고구려사 나아가 고조선사까지 중국사로 편입하며 북한지역에 대한 연고권을 강화하고 있음을 파악했다.

다음으로 김정현 박사가 중국 역사교과서에 나타난 한국고대사 서술 변화를 발표했다. 그는 2000년까지만 하더라도 거의 모든 역사교과서가 고구려사를 한국사로 기술했는데, 1990년대 중반부터 일부 대학교재가 고구려를 중국 지방정부로 기술했고, 2001년 새로운 '역사과정표준'(歷史科程標準) 발표 이후 중등학교 역사교과서가 대부분 한국고대사를 대폭 줄이거나 한반도 북부까지 중국영토로 기술했다고 파악했다. 중국 역사교과서의 고구려사 서술이 동북공정의 추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만 중앙연구원의 왕밍꺼(王明珂) 교수는 역사인류학적 방법론을 활용하여 한국 고대의 기원 전승을 분석했다. 그는 기자동도설(箕子東來說)은 전한대(前漢代)의 다른 '영웅변경이주설(英雄邊境移住說)'처럼 고조선을 화하(華夏)로 간주하려는 한족 엘리트의 인식을 반영한다고 파악했다. 마찬가지로 주몽전승은 고구려의 독자성을 강조하려는 고구려 엘리트의 인식, 단군신화는 삼국 전체를 재통합한 고려 지배층의 인식을 반영할 뿐이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역사전승에 나타난 고구려를 현재의 한국이나 중국과 동일시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마지막으로 일본 교토부립대의 이노우에 나오끼(井上直樹) 교수가 고구려사에 대한 일본학계의 연구동향을 발표했다. 그는 일본학자들이 처음에는 고구려사를 한국고대사로 간주하다가, 20세기 초반 일제의 만주 진출이 본격화되자 만주사의 일환으로 연구했다고 파악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고구려사를 다시 한국사로 다루었지만, 대부분 일본고대사의 전개 곧 '국사'와 관련시켜 연구했다고 파악했다. 그러면서 '국사'의 관점으로는 다민족국가인 고구려의 복합적 성격을 제대로 규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일·대만의 발표자들한·일·대만의 발표자들

미지의 영역 한국고대사, 구체적 주제로 소개해야

필자와 김정현 박사가 주로 중국학계의 고구려 인식체계를 집중 검토한 반면, 이노우에 교수는 일본학계의 연구동향, 왕밍꺼 교수는 각종 기원전승 등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한국학자들이 주로 상대의 관점을 비판한 반면, 일본이나 대만 학자는 자국의 관점이나 역사전승 자체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것이다. 제3자가 본다면 한국학자가 편중된 시각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는 대목이었다. 고구려사 논쟁의 한 축인 중국학자가 참여하지 못한 상황이 이러한 인상을 더욱 부채질할 수도 있었다.

토론자인 한림대 김병준 교수도 중국학자가 참여하지 못해 논쟁의 한쪽 당사자인 한국학자의 이야기만 듣게 된 것을 본 세션의 가장 큰 한계로 지적했다. 그렇지만 김 교수는 역사정체성을 다룬 본 세션이 '역사란 무엇인가' 나아가 '역사와 현실정치의 관계'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평가했다.

발표자들도 비판의 대상과 각도는 달랐지만 토론과정에서 근대 국민국가적 관점을 벗어나 보다 거시적인 연구시각의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세션은 동아시아 각국의 다양한 시선이 만나 새로운 연구시각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청중석에서 아주 기본적인 문제를 질의한 데서 보듯이, 서구인에게 고구려사나 한국고대사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런 점에서 향후에는 더욱 구체적인 주제를 갖고 세션을 조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