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은 일본의 한국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해이고 8월은 국치일과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이 함께 있는 달이다. 얼마 전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60권을 완간한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를 만나 일본의 한국강제병합의 의미, 독립운동사연구의 중요성 등에 대해 들어봤다. _ 편집자 주
광복군 창설 70주년을 기념하여 '독립정신 답사단' 단장을 맡아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6박 7일 동안 조선의용대와 광복군의 유적지를 순례하고 왔다. 이번 답사의 의의와 순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달라.
대학생 53명을 비롯하여 총 73명이 참가해 조선의용군의 창립지인 무한에서부터 시작하여 강서성의 구강, 안휘성의 부양을 거쳐서 임천, 낙양, 그리고 마지막에 서안까지 광복군과 조선의용대의 유적을 찾았다. 이번 답사는 한국 광복군의 유적을 찾으면서 광복군의 한 맥이 되는 조선의용대가 창립(1838년 10월 10일)한 곳과 낙양에서 조선의용대가 훈련했던 곳을 찾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제일 중요한 의미는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1958년 종파사건 때 연안파를 숙청하면서 모든 역사서에서 조선의용대에 대한 기록을 삭제했는데, 이번 답사를 통해 조선의용대의 사라진 기억을 우리가 다시 찾아 역사 속에 남기려 했다는 데 있다. 조선의용대의 유적을 찾으려고 한 것은 잃어버린 역사를, 북한에서 내팽개친 역사를 찾으려고 한 것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2010년은 일본의 한국병합 100년이 되는 해이다. 100년 전 8월 29일 대한제국이 국권을 강탈당한 것은 비극적인 일이지만, 1910년은 또한 독립운동의 서막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독립운동사 연구를 시작하게 계기는?
한국사에서 1910년에서 1945년까지의 시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1910년 일제 식민지 통치가 시작될 때부터 해방된 1945년까지를 단순히 식민지 시기라고 했을 때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지배한 시기로, 타율적인 역사가 되고 만다. 그러나 주체적인 관점에서 인식을 하게 되면, 이 시기는 독립을 회복하기 위해 부단한 투쟁을 한 시기이다. 따라서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역사를 일제의 수탈이나 탄압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일제와 싸워서 어떻게 독립을 쟁취하려고 했는지를 봐야 한다. 그럴 때에만이 우리가 중심이 되는 주체적인 역사관이 형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말 의병이 독립운동의 시발이라고 할 수 있는데, 1910년 이전의 의병활동과 1910년 이후의 의병활동은 어떻게 다른가.
1910년 이전의 의병활동과 이후의 의병활동이 크게 다르지 않다. 초기 의병활동에서는 국권수호(회복)와 관련해서 지휘부에 양반들이 참여했는데, 1897~8년 이후부터 1904~5년이 되면 홍범도 같은 민중지도자들이 참여하게 된다. 1907년 8월 1일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해산이 되고, 박승환의 자결을 계기로 의병운동에 군대가 많이 참가하게 된다. 1910년을 전후로 많은 변화가 있는데 일제에 의해 국권이 침탈당하게 되면서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 매우 어렵게 되어 의병운동의 활동 근거지를 두만강과 압록강 밖으로 옮기게 된다. 이 시기부터 의병운동의 성격이 국권 수호에서 국권 회복, 독립운동으로 변하게 된다.
얼마 전 한국 독립운동의 배경과 성과를 총정리 한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시리즈를 완간했다. 이 시리즈가 나오기까지의 과정, 기획부터 발간까지 어려웠던 점, 집필자 선정은 어떻게 하였는지, 그리고 이 책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북한만 해도 《조선민족해방운동사》를 통해서 항일 독립운동의 정통성을 명분으로 북한정권을 세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헌법에 명시하고 있음에도, 그동안 독립운동사 전체를 제대로 일관되게 정리한 연구서가 없었다. 처음 시작은 1999년부터 2년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을 맡으며,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역사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기획했다. 2005년에 광복 60주년을 맞이하여 정부의 지원(3년 동안 30억 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발간사업에 착수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문제가 나올 경우 임정에 뿌리를 둬야 그 뒤에 모든 독립운동사(사회주의, 공산주의 계통의 운동까지 포함하여)를 대한민국 속에 수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리즈는 광복 60주년과 정부수립 6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 독립운동사를 60권으로 정리하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최초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를 종합화, 체계화시켰다는 점이다. 이전 다른 서술과 달리 1930년대 만주에서 활동한 조선의용대 등 좌파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투쟁 등도 조명했고, 북한에서의 항일운동 연구성과도 반영했다. 이념과 체제를 넘어서 만든 최초의 독립운동사라는 데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아쉬운 점도 많았다. 연표기록조차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무엇보다 3년이라는 기간이 생각보다 충분하지 않았다. 시간이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연구 주제가 있나? 후학들에게 권유하고 싶은 연구 분야는?
아직까지 기독교사 역사와 관련하여 선교사들 문헌을 다 읽지 못했다. 한말 일제하 한국기독교사 자료는 선교사들의 본국에 아카이브 형태로 모두 정리되어 있다. 해외에 있는 한국 기독교사 아카이브를 제대로 읽고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분야에 대해 후학들에게 권유하고 싶다. 또 하나는 국사냐 역사냐 얘기를 하는데 역사라는 것은 세계보편적인 가치관에 입각한 한국사를 포함한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과 국제관계의 역사, 일본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동아시아적 관점, 세계사적 관점이 필요하다. 세계 학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역사학계 추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바로 이 점을 젊은 연구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는 많은 대중들이 읽을 수 있는 알기 쉬운 한국역사를 저술하고 싶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와 한국독립운동사를 종합적으로 정리해서 대중들이 볼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한일병합조약의 문제 해결 없이는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앞으로 한일 간에 남아 있는 식민지에서 비롯한 역사문제 해결에 대해 교수님의 의견을 듣고 싶다.
조약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1905년 을사조약이나 1910년 "한일합방조약"은 국제법적 정당성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1965년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 제2조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하다"와 관련하여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의 기점을 일본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때부터라고 주장한다. 이는 한국 측이 기본조약 교섭과정에서 구 조약의 무효화 기점을 1904년 한일의정서까지 소급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차이가 있다. 일본의 주장은 1948년 이전까지의 시기에 이뤄진 일본의 지배는 모두 합법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이것이 논란이 많았는데 이를 덮는 방식으로 "이미 무효로 한다"라고 해석을 각자 하기로 했다.
올해 일본의 한국병합 100년을 맞이하여 한일지식인공동성명에서 이 문제가 나와서 이미 무효로 한다는 해석상의 문제를 한국 측이 해석한 부분을 수용하여 문헌상으로 정리하였다. 일본에서는 우파를 고려하다보니 불법무효라는 말은 못 쓰고 '불의부당'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한국 측이 과거에 해석한 대로 "1904년 한일의정서부터 무효다"라고 하였다. 이렇데 조약에서의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100년을 맞이하여 획기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과거사 청산문제와 관련하여 식민주의 사관이 청산되어야 한다.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왜곡하는 것은 식민주의 사관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식민주의 사관을 근본적으로 불식하지 않고서는 교과서 왜곡을 바로잡지 못한다. 그 다음으로 원폭피해자 문제, 징병징용문제, 일본군 위안부문제, 사할린 동포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야 진정한 의미에서 속죄와 화해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역할과 과제에 대해 제언하신다면?
동북아역사재단은 세계 역사NGO 대회를 개최하고 지원하는 등 동북아시아 문제, 역사왜곡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NGO 단체뿐만 아니라 세계 학계와 좀 더 많은 교류를 통해 대안을 모색하고 논의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독도 문제, 역사교과서왜곡 문제, 동북공정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자료집이 나왔으면 한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직접 연구를 하지 않더라도 성과는 지원을 통해 낼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점을 당부하고 싶다.
이만열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이사장,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회장,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한국사학회 회장,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고, 현재 숙명여자대학 명예교수이다. 저서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묻다》(공저),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역사의 중심은 나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