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기획 의도는 독도와 울릉도를 둘러싼 중요 논점을 뽑아 지금까지의 연구와는 다른 관점으로 분석함으로써 기존의 주의 주장에 대한 판단을 명확히 하고, 아울러 새로운 논의의 전개를 열고자 하는 데에 있다. 본서는 역사·고고·지리학적인 시각에서 안용복의 피랍·도일 문제, 우산도 인식, 태정관 문서의 성격, 고대 울릉도 사회, 독도의 기능·공간가치와 소속 등의 다섯 개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폭넓은 시대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핵심적인 주제에 접근해 있다는 점에서 독도·울릉도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첫 번째, 안용복의 피랍·도일 사건을 다룬 "17세기 후반 한일 외교 교섭과 울릉도-안용복의 피랍·도일 사건을 중심으로"(홍성덕, 전주대)는 조선후기 한일관계사 특히 외교시스템 운영의 관점에서 안용복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연구와는 차별성을 갖는다. 이 연구에서 주목한 것은 1690년대 안용복에 대한 일본의 외교적 결정이 일본 내부의 구조적 모순에 기인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즉 피랍·도일한 안용복의 송환문제를 둘러싼 에도 바쿠후의 판단은 독도 인근의 어업권을 가지고 있었던 오야와 무라카와 집안과 막부에 특상품을 진상해야 했던 돗토리번, 바쿠후 등 삼자의 커넥션과 조일외교를 전담하고 있던 쓰시마 번주의 역할론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단순히 독도 영유권의 관점에서만 바라볼 수 없는 외교적 사안이었다는 것이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본 독도와 울릉도
두 번째, "고종과 이규원의 우산도 인식 분석"(호사카 유지, 세종대)은 일본 측에서 계속 문제 삼고 있는 '우산도=울릉도'라는 주장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우산도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였으며, 고종과 이규원의 우산도에 대한 인식을 면밀하게 검토함으로써 '우산도=울릉도'설이 나오게 된 배경을 규명하고, 아울러 독도의 명칭이 우산도에서 석도, 독도로 바뀐 원인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 연구에 의하면 고종과 1882년 울릉도 검찰사로 파견된 이규원과은 '우산도=울릉도'란 점에 동의하고 있으나, 이러한 과정에 이르게 된 연유에 대한 인식은 달랐음을 지적했다. 고종은 우산도가 독도의 명칭으로 자리 잡게 된 과정을 잘 알고 있었던 반면, 이규원은 그러한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또한 고종은 조선 초기 문헌에 울릉도가 우산도로 기재된 사례가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규원이 주장한 '우산도=울릉도'설을 받아들여 울릉도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는 것이다. 즉 울릉도를 '울릉도 본도, 죽도, 송도'로 보는 '울릉도 군도론'이 만들어지고, 1900년 칙령 41호에 울도군이 '울릉도 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한다고 기록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송도가 석도로 바뀌게 된 것은 일본이 말하는 '마쓰시마(송도)'가 울릉도 자체를 부르는 말로 쓰이는 등 송도(독도)에 대한 명칭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독도를 석도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음을 지적했다.
세 번째, "메이지 초년 태정관 문서의 역사적 성격"(박삼헌, 건국대)은 메이지 초년, 문서 행정의 메커니즘을 검토함여 독도가 일본 영토와 관계없다는 태정관 지령문의 내용이 지니는 역사적 무게감을 재확인하는 연구이다. 태정관제의 문서행정은 문서처리를 전문으로 하는 근대적 관료의 형성과정이라는 특성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1877년 태정관 지령문의 처리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당시 태정관 지령문이 조선과 맺은 외교 조약이 아니라 일본 국내에 내려진 것에 지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국가 영토의 확장을 둘러싼 외교 상황, 그에 따른 재정 및 법제 문제를 관장하는 성경(省卿) 겸 참의들이 총체적으로 검토한 결과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메이지 시기 태정관제가 '천황친정(天皇親政)'의 명분을 내걸었고, 성경 및 참의는 천황으로부터 '서정(庶政)을 위임받은 재신(宰臣)'이었으므로 이들이 결재한 1877년 태정관 지령문에는 메이지 천황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숲과 나무를 아우르는 열린 사고를
네 번째, "고대 울릉도 사회와 집단에 관한 몇 가지 문제"(오강원, 한국학중앙연구원)는 고고학적 연구 분야로 울릉도에서 출토된 고대 유물에 대한 미시적 분석을 통해 고대 울릉도 사회의 성격을 규명한 것이다. 울릉도 토기 중, 육지에서 제작 유입된 경질토기와는 달리 연질토기 특히 구연의 연질토기는 울릉도 사람들에 의해서 특수하게 제작된 것으로 파악되며, 그 시기는 6세기 중엽까지 올라간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울릉도식 고분' 유적과 출토 유물로 볼 때, 일반 평민 계층이 아닌 상위 계층의 무덤으로 고대 울릉도 사회는 위계화가 상당히 진행된 사회였음을 밝혔다.
다섯 번째, "독도의 기능, 공간 가치와 소속-정치지리·지정학적 시각"(임덕순, 충북대)은 정치지리·지정학적 관점에서 독도가 어떤 기능을 할 수 있었으며, 그 공간의 가치를 밝힘으로써 독도가 한국의 소속임을 밝힌 것이다.
특히 독도의 기능을 동해와 관련해서 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그 관점에서 볼 때 독도는 현실적 또는 잠재적으로 전략적, 정치적, 교통적, 상징적, 생산적, 영해 보유 근거지적 기능들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각 기능이 가지는 독도의 공간적 가치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본 연구에서는 유인도와 독도와의 거리, 역사적 수역과 역사적 도서의 관점, 한일 양국의 공식문서에 나타는 독도, 일본의 고지도 등의 규명을 통해 독도가 한국의 소속임을 주장했다.
독도·울릉도 연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분석이 필요하다. 논쟁에 집착하다 보면 나무만 보고 숲을 볼 수 없는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쟁점의 흐름을 흩트리지 않고 독도·울릉도에 대한 역사적 실체를 보다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는 연구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미시적으로 때로는 거시적으로 폭넓은 시각에서 문제에 접근해 들어가는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본 기획연구는 바로 그런 시각으로 기획 추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