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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한일강제병합 100년과 역사적 정의
  • 도시환 역사연구실 연구위원

일본이 한국을 강제병합한 지 꼭 100년이 되는 2010년 8월을 맞이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를 대표하는 역사가인 E. H. 카가 그의 역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설파한 바와 같이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할 때,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는 우리에게 역사는 일본의 한국 병합 100년이 갖는 본질적 의미에 대해서 묻고 있다.

지난 2005년은 을사늑약 체결 100년이 되는 해이자, 광복 60년이 되는 해였으며, 한일 양국간 수교 40주년을 기념하여 '한일우정의 원년'으로 설정된 해이기도 했다. 당시 대학 외래교수로서 국제법을 강의하던 필자는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통해 무르익은 한일 양국간 선린우호의 분위기를 전제로, 일본정부가 1995년 종전50주년기념일 즈음에 했던 무라야마 담화를 넘어서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 그리고 향후 진정한 동반자적 관계의 출발을 위한 단초를 제시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아마도 여느 역사학자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일본에서는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함으로써 우리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한일 두 나라가 서로 다른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일본의 독도침탈과 역사왜곡 문제에 종합적·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그해 4월 20일 민관합동기구인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바른역사정립기획단'이 출범하였다. 유관 정부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과 더불어 민간전문가로서 필자 역시 동참하게 되었다. 당시 필자가 제자들과의 아쉬운 작별을 뒤로 할 수 있었던 것은 부여된 소임의 중차대성과 국제법학자로서 꿈꾸던 역사적 정의에 대한 소명을 다할 기회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역사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

첫 번째 과제는 '동북아 평화의 역사를 새로 기술한다'는 기치 아래 우선 일본의 독도 및 역사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 등의 현안문제를 비롯하여 동북아 지역 내의 역사문제에 대한 싱크탱크(think tank)로서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전담기구인 '동북아역사재단'의 설립을 위한 정관을 만드는 일이었다. 다음으로 동북아 역사현안 가운데 국제법 연구자로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2010년에, 이를 국제법적으로 재조명하여 병합의 무효·불법성을 규명하는 것으로 정했다.

2006년 9월 28일 오랜 산고 끝에 동북아역사재단이 출범하였고, 한일강제병합과 관련된 일본의 침략조약, 1965년 한일협정,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전후보상, 동경재판과 샌프란시스코조약 등 2005년까지의 양심적인 일본학자의 논문을 포함, 국내 연구논문을 망라한 《한일역사관련 국제법논문선집》을 발간했다. 2010년을 대비한 교두보를 마련해둔 셈인데, 그 어간에 부족한 예산으로 인해 원고료조차 드리지 못했음에도 흔쾌히 옥고를 주시던 故백충현 교수와 이태진, 이장희 교수님 등 우리 학자들의 충정 앞에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뒤이어 2006년 12월 5일에는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전후청산의 법적 과제"란 주제로 한일강제병합과 관련한 국제법 연구자들의 학술워크숍을 개최하였고, 2007년 "한일역사현안 관련 국제법연구 지원사업"을 통해 발간한 《한일간 역사현안의 국제법적 재조명》은 2010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는 기쁨도 가졌다.

2008년 초 재단의 중장기 사업계획 논의 시에 필자는 "한일강제병합 100년 재조명 사업"을 제안하였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개년 동안 국내외 국제학술회의의 개최 및 이를 통한 기획연구서를 외국어로 발간하여 국내외에 배포하는 계획이었다. 예산 확보 등이 쉽지 않았지만 2008년 10월 일본 NHK가 정부 지원으로 일본 학계와 연계해 한국병합의 의미를 담은 기획 특집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제병합 재조명 사업도 탄력을 받게 되었다.

1910년 한국강제병합 재조명 사업을 준비하며

한일역사관련 국제법 학술워크숍한일역사관련 국제법 학술워크숍

2009년 4월에는 하와이대학교에서 재단과의 공동 주최로 "한일병합의 성격과 정책", 6월에는 "일본의 한국병합 효력에 대한 국제법적 재조명"을 주제로 재단에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앞둔 선도적인 국제학술회의였던 만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6월 22일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와다 하루키, 아라이 신이치, 사사가와 노리가츠 교수 등은 2010년 5월 10일 일본인 학자 104명과 함께 "한일병합조약의 무효·불법 양국 지식인 200인 선언"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2010년 8월이다. 지난 5년간 필자가 간직해 왔던 '1910년 한일병합조약에 대한 역사적 진실규명과 국제법적 정의 구현'을 향한 소명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왔다. 오는 8월 23일 리셉션을 시작으로 8월 24~26일간 "1910년 한국강제병합, 그 역사와 과제"라는 주제로, '한국강제병합의 과정', '동아시아 식민주의와 일본', '역사인식과 동아시아의 미래'의 3개 세션에 6개국 총33인의 전문가가 참가하는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다.

국제학술회의 기간 중에는 강제병합 관련 조약들의 파행성을 시각적으로 재조명한 조약자료집인 "조약 강제의 실태에 대한 시각적 탐방"을 배포할 계획이며, 이보다 앞서 8월 20일~27일간 국회도서관에서 '한일강제병합 100년 재조명 조약자료 국회전시회'를 개최한다. 아울러 10월에는 유럽 내 한국학의 메카인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에서 한일강제병합 100년 재조명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함으로써 한일역사 갈등의 본질에 대한 국제사회의 올바른 이해를 도모해 나갈 계획이다.

일본에 의한 한국강제병합 100년의 역사를 맞이한 현재의 시점은, 잘못된 역사에 대한 일본의 부인이 역사적 정의에 대한 부정이자 평화에 대한 거부인 바, 자국의 침략전쟁에 뒤따르는 일본의 모든 책임을 현재의 과제로 끊임없이 인식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걸친 세계에 대한 역사적 책임의 방식에 대한 물음에 답해야 할 숙제가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