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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해양영토'의 함의와 미래의 바다
  • 이석용 한남대 교수
이석용 한남대 교수이석용 한남대 교수

요즘 우리가 자주 접하지만 쉽게 이해되지 아니하는 말 중에 '해양영토'라는 말이 있다. 영토란 본래 한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육지로 된 공간을 말하는 것이니 '해양영토'란 말은 스스로 모순을 안고 있다. 하지만 '해양영토'를 해양관할권적 입장에서 이해하여 해양의 현재와 미래의 위상을 표현하는 말로 받아들인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는 있다. 해양이 영토가 될 수는 없지만, 연안국의 해양관할권이 영토에 대한 권한과 비슷한 방향으로 강화되어 가고 있다는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해양영토'라는 모순된 말 가운데에서 바다의 미래를 보게 되는 것이다.

멀리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파란 구슬처럼 보인다고 한다. 지구가 그렇게 파랗게 보이는 것은 지구표면의 70퍼센트 이상을 바다가 덮고 있기 때문인데, 그 구슬의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는 육지위에서 사람들은 주인행세를 하며 살아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생각은 육지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고, 국가 간의 영역획득을 위한 경쟁도 육지영토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국가들의 국가영역에 대한 관심이 오직 육지에 머물고 있었을 때 바다는 굳이 소유를 구분할 필요조차 없는 평온한 상태에 있었다. 근대 국제법의 시조 그로티우스(Hugo Grotius)가 《해양자유론(Mare Liberum)》에서 바다는 속성상 그 소유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바다는 본래 유동적인 것이고 당시 유일한 해양자원이었던 물고기들은 국경선을 알지 못하니 굳이 바다에 경계선을 그어 그 소유를 정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육지에서 국가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자국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국가들은 선점에 의하여 무주지를 영토로 취득하거나 무력으로 다른 국가의 영토를 정복함으로써 영토에 대한 욕망을 채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지구상에 무주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아니하고 국제법에 의해 무력행사는 금지되었으므로 국가들이 육상에서 새로운 영토를 취득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자 국가들은 그 영토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대안으로 바다를 바라보게 되었다.

바다로 뻗어간'영토적 유혹'

2006년 미국국제법학회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기고한 논문에서 당시 회장이었던 옥스만(Bernard Oxman) 교수는, 17세기 중엽 웨스트팔리아 강화회의 이래 국제법 역사의 많은 부분은 '영토적 유혹'(territorial temptation)에 대한 기술이었다고 말했다. 근대이후 국제법의 역사는 상당히 오랫동안 영토를 둘러싼 국가 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육지에서나 타당한 것일 뿐 바다의 경우에는 상황이 판이했다. 육지영토에 대한 국제법의 역사가 '영토적 유혹'의 점진적인 승리의 역사이었다면, 해양법의 역사는 그 반대 즉 그로티우스가 주장한 '해양의 자유'가 승리한 역사이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20세기 중반이후 국제해양질서는 커다란 전환점을 맞았다. 옥스만교수에 의하면 무주지의 소멸과 정복에 의한 영토취득이 금지되면서 육지에서는 한계에 직면한 '영토적 유혹'은 이제 빠른 속도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바다로 확산되어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48년 미국이 트루먼선언을 통해 그 연안에 인접한 대륙붕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한 것은 그러한 추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82년 채택된 '해양법협약'은 전통적인 해양의 자유와 연안국의 해양수역 확대요구, 해양개발의 필요성과 환경보호의 당위성 등 충돌하는 다양한 요구들을 수렴하여 만들어진 '해양의 헌법'이다. 그렇지만 '해양법협약'도 트루먼선언 이후의 '해양의 영토화' 추세를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오늘날 '해양의 영토화' 즉 해양에 대한 연안국 관할권의 확대와 강화는 '해양법협약' 규정에 따라 주로 대륙붕과 경제수역에 대한 연안국 관할권의 강화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섬은 해양수역의 확대를 위한 디딤돌로 활용되고 있다.

독도영유권 수호는 미래 해양영토를 지키는 일

'해양법협약' 체제에서 연안국들의 대륙붕이 과거보다 확대되는 것은 불가피해졌으며, 북극해에서 보듯이 해양과학기술을 동원한 국가 간의 대륙붕 쟁탈전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경제수역은 연안국들의 해양수역 확대요구와 전통적인 공해의 자유 원칙간의 타협으로 등장한 제도이다. 그러나 일단 경제수역이 설치된 후에는 연안국들은 그 관할권 강화를 위한 조치들을 취해가고 있어서, 이 수역은 영해에 이어 새로운 '해양영토'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해양법협약은 제121조에서 인간의 거주나 독자적 경제생활이 불가능한 '암석'(rock) 주변에는 경제수역이나 대륙붕을 설치할 수 없다는 규정을 두었으나, 일본 등 일부 국가들은 아주 보잘 것 없는 암초 주변에도 경제수역과 대륙붕을 설치하고자 시도하고 있어 국제사회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국토는 좁지만 주변의 바다는 넓은 편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렇지만 오늘날 한 국가의 해양수역은 대륙붕과 경제수역을 통해 먼 바다까지 확대되어가고 있는바, 좁은 폐쇄해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는 바다에 있어서도 결코 부자는 아니다. 더구나 '해양의 영토화'가 계속 진행되어서 연안국의 경제수역이나 대륙붕에 대한 권한이 영토나 영해에 대한 권한과 비슷해져서 '해양영토'라는 말이 생경하게 느껴지지 아니하는 시대가 오면 우리나라의 영역은 더욱 좁게 느껴질 것이다.

'해양영토'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경제수역이나 대륙붕에 대한 연안국의 권한이 지금보다 한층 강화될 시대에 대비하여 우리나라의 '해양영토'에 관한 정책도 수립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바다가 지금보다는 훨씬 중요하게 대접받는 시대가 올 것을 예상한다면 우리는 한치의 바다도 소홀히 대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에 어느 국제법학자는 거의 아무런 역사적 증거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해양은 법적으로 '변경'(frontier)에 해당한다고 하였으나, 바다를 역사적·과학적·법적으로 연구하여 우리의 미래의 '해양영토'를 지켜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독도는 해양영토의 수호라는 점에 서도 참으로 중요하다. 독도에 대한 영유권에는 독도 자체에 대한 영유권은 물론이고 주변의 해양수역에 대한 권리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