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뉴스레터

인터뷰
암각화, 한국 선사미술의 본령
  • 이윤정 사진_ 송호철

지난 10월, 동북아역사재단은 한국 암각화 발견 40주년 기념 국제 학술회의를 열었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한국 암각화의 최초 발견자인 동국대 문명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11개국 16명의 전문가들의 주제발표를 통해 한국 암각화가 아시아 및 세계의 바위그림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문화사적, 미술사적 위치와 한민족 고대사 및 문화적 원류를 심도 있게 검토할 수 있었다. 이번 호에서는 문명대 명예교수를 만나 40주년을 맞이한 한국의 암각화 이야기를 청해들었다. _ 편집자 주

문명대 명예교수문명대 명예교수

한국 암각화 최초 발견자로서 40주년을 맞는 소회는?

문득 "이렇게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감회가 깊다. 10년 뒤, 50주년을 맞이하는 날도 이렇게 활발하게 연구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장담을 못하니 올해가 더욱 각별하다(웃음). 그래서 나름대로 기념이 될 만한 일들을 준비하고 있다.

40년 전, 발굴 당시로 잠시 돌아가 보고 싶다. 그 당시 어려움은 없었나?

다 알려져 있지만 암각화는 3개년 계획으로 울산지역 불적조사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반구대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반고사라는 절터를 조사하던 중이어서 처음 발견했을 때는 마애불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기하학적인 문양이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또 '술년 6월 2일 영랑성업' 과 같은 화랑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그때 동행한 기자를 통해 1971년 1월 1일자 한국일보에 대대적으로 '화랑유적 발견' 기사가 나왔다. 그래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어 외국서적들을 구해서 보고, 시베리아 암각화에 있는 문양과 비슷한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선사시대 암각화라는 것을 알아냈다. 계속 조사하고 연구해서 같은 해 11월에 역사학회에서 발표를 했다. 국내에서는 처음이고 아무도 이것이 무언지 모르니 자료가 없었고 지원도 없었고 그만큼 조사하는데 시간이 걸렸는데 그 점이 어려웠다.

발견 이후 우리 학계의 암각화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었나?

반구대 천전리 암각화를 발견한 이듬해, 관심을 보이는 동료들을 모아 조금 더 자세히 살피려고 다시 그 부근을 찾았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증언을 듣고 반구대 근방에서 대곡리 암각화를 발견했다. 그때는 첫 발견과 달리 반구대 암각화에 대해 조사한 뒤라 문양의 성격을 알고 이해했기에 정말 가슴이 벅찼다. 이후 3~4년에 걸쳐서 연구 보고서를 썼는데 지원이 없어 출판을 할 수 없었다. 10여년이 지나서야 기회가 왔다. 암각화 발견당시 박물관장이었던 황수영 교수가 총장이 되었을 때 출판을 제안했고 가난한 시절, 파격적으로 컬러를 많이 쓴 호화판 보고서를 냈다. 그 책이 나온 후에 학계에서 본격적으로 암각화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기 시작했다. 암각화를 주제로 박사 논문들도 나오고 젊은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암각화 학회도 생겼다. 반구대와 대곡리 이외에도 많은 암각화들을 발견하고 연구하였다.

우리나라 암각화 연구의 한계는?

일단 개인적인 한계로는, 보고서를 쓰고 난 후 83년부터 파키스탄부터 중국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조사하는데 몰두해서 한동안 암각화 연구에 주력하지 못했다. 10년 전 암각화 발견 30주년을 기념하며 울산시에서 주최한 국제학술대회 때 강연을 준비하면서 되돌아보니 그동안 많은 동료 후배들을 통해 상당히 연구가 진척되어 뿌듯했다. 아쉬운 점은 민속학이나 고고학 쪽에서 하는 연구는 많이 진척된 반면 미술사 쪽에서의 연구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암각화는 선사미술이다. 말 그대로 바위에 있는 조각과 회화인 것이다. 그래서 이 선시미술이라는 본령에 대한 연구가 필수다. 선사미술 연구 인력이 거의 없어서 진척이 안 된 것 같은데, 이번 40주년을 맞아 그쪽 분야를 새롭게 조명하려고 한다.

문명대 명예교수

재작년 울산에 암각화 전시관이 생기면서 일반인들이 암각화에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나라 암각화가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암각화는 선사문화의 압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선사문화를 총체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하나의 "역사서"라고 할 수도 있다. 천전리 암각화에는 고신라부터 통일신라에 이르기까지 역사책에도 없는 기록들이 남아 있다. 재상, 화랑, 왕실 사람들이 방문해 자신의 이름과 방문 내용을 적어 놓았으며 그 내용 중에는 글이 새겨진 바위, 문암을 찾아와 기록을 남긴다는 기록도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바위에 새겨진 기하학 문양은 신라가 백제를 통해서 한자를 들여오기 전의 그림문자로 볼 수 있으며 이를 유추해보면 신석기 말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우리나라 역사가 담겨 있는 것이다. B.C. 3천년에서 B.C. 2천년에 걸친 유적으로 우리 선조들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지난 10월 "세계의 바위그림, 그 해석과 보존"을 주제로 몽골, 러시아 등 해외의 암각화 발굴 현황과 보존 방안, 역사 문화적 연계성 등을 살펴보는 학술회의를 열었다. 이들 나라와 반구대 암각화의 유사성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암각화는 빗살무늬토기와 같이 시베리아 아무르 강가를 거쳐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이렇게 북쪽으로 연결되는 북방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이 북방문화 루트에 있는 암각화들은 동물과 사람의 어울림, 추상적인 문양 등 내용면에서 여러모로 유사성을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암각화는 크기가 50cm를 넘지 않으며 몇 백 개의 동물들이 빡빡하게 한꺼번에 새겨져 있다. 게다가 몇 겹씩 겹쳐서 새겨져 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다. 조각기술 또한 아주 세련되고 뛰어나 세계 어느 곳의 암각화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암각화 보존 방안을 놓고 논란이 많은데?

문화재 보존과 주민들의 이해가 상충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문화재가 있는 것을 계기로 그 지역이 새롭게 관심을 받게 되고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누릴 수 있고, 이로써 굉장한 부가가치가 생길 수 있다. 그것을 안다면 유적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를 제일 먼저 생각할 것이다. 일전에 울산시의 용수해결을 위해서는 천전리 암각화가 물에 잠겨도 어쩔수 없다며 댐을 더 높이려 했지만 문화재위원회에서 제지를 했고 결국 상류에 댐을 하나 더 만들어 해결을 봤다. 이런 식으로 양측이 모두 만족하는 방안을 찾으면 된다. 서로 부딪힐 일이 아닌데 자꾸 문제가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암각화 주변의 무분별한 개발정비계획을 걱정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면서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을 듣고 싶다.

문화재도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가까이 가서 보고 느낄 수 있되 훼손은 하지 못하도록 정비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많이들 하고 있는 친환경적으로 개발하면 얼마든지 괜찮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는 의지의 문제다.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만약 어찌할 줄을 몰라서 못하고 있다면 직접 나서지 말고 전문가를 활용하면 된다. 전문위원회를 조직해서 운영한다면 문화재도 살리고 지역주민들을 위한 개발도 할 수 있는 방안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암각화 연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다각적인 연구를 하되 본령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도 새로운 방법으로 다양하게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또, 좀 더 큰 틀에서 역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 다만 본령은 잊지 말아야 한다. 암각화는 어디까지나 선사미술이고, 선사문화다. 그렇게 본령을 제대로 바라보며 한국 역사의 틀 안에서 선사문화와 선사미술로서 새롭게 각광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런 뜻에서 11월에 개최할 "천전리 암각화 발견 40주년 기념 학술대회"는 선사미술을 주제로 암각화에 접근하려고 한다. 이번 학술 대회에는 조각사, 회화사 연구자들을 많이 투입했다. 일부러 과제를 주면서 연구를 독려했다. 그래서 이전과는 다른 색깔의 학술대회가 될 것이다. 첫술에 배부르지는 않겠지만 이런 식으로 양성하고 키우면 앞으로 더욱 풍성한 암각화 연구가 진행될 것이라고 믿는다.

암각화 연구 외에 현재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나, 앞으로 꼭 진행해보고 싶은 연구 분야가 있다면?

내년에 준비하고 있는 학술대회가 두 개가 있다. 하나는 꽤 규모가 큰 "토함산 석굴암 국제학술대회"이고 또 하나는 "기록문화재의 집대성과 그것을 통한 조선시대 미술의 도상학적 연구"다. 우리 한국미술사연구소에서는 이렇게 매년 2~3회 학술대회를 연다. 꼭 해보고 싶은, 이루고 싶은 연구는 이전에 시작한 실크로드 연구다. 파키스탄 중국을 거쳐서 우리나라까지 이어진 실크로드 문화를 집대성하는 총체적인 연구를 완료하고 연구보고서를 내는 것이 평생소원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내 당대에는 다 이룰 수 없는 것이고 후학들이 이어받아 완성해야 한다. 실은 내가 완성을 하려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특히 지속적인 연구 지원이 없으니 중간 중간 맥이 끊겨 아직 완료하지 못했다. 완료는 고사하고 이미 다 완성한 연구보고서들도 가제본 상태로 보관되어 있어서 안타깝다. 앞으로 후배들이 연구를 계속해나갈 때는 이 연구와 업적의 중요성이 널리 인식되어 지속적인 지원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암각화연구와 관련해서 재단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정부차원에서 암각화 연구를 진행하는 곳은 동북아역사재단이 유일하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재단자체가 연구를 지속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하다. 재단이 중심이 되어 연구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느 분야나 그렇겠지만 명맥을 잇는 것이 중요하다.

문명대

동국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박물관장, 한국미술사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며 (사)한국미술사연구소장이다. 주요 저서로 《한국미술사의 이론과 방법》(1978), 《한국조각사》(1980), 《고려불화》(1991), 《마애불》(1991), 《한국불교미술사》(1997), 《한국불교미술의 형식》(1997), 《한국미술사 방법론》(2000), 《토함산 석굴》(2000), 《한국의 불상 조각》Ⅰ, Ⅱ, Ⅲ, Ⅳ(2003)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