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5일과 6일 이틀에 걸쳐 "동아시아의 역사서술과 평화-사회, 국가, 세계"를 주제로 서울에서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동북아역사재단과 동아시아사연구포럼이 공동으로 주최한 세 번째 학술회의였다. 2007년 12월 재단이 개최한 "중심과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 국제학술회의를 계기로 '동아시아사연구포럼'이 결성되고, 2008년부터 매년 11월 첫째 주에 대규모 국제학술회의를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는데, 이번에 3회를 맞은 것이다. 회의에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지역에서 총 40명의 연구자들이 참가했고 이 중 외국 참가자가 20명에 이르렀다. 모두 3개의 세션, 6개의 패널로 나뉘어 기조발제 1편을 포함 총 21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했다.
먼저 나카무라 마사노리(中村政則) 교수가 기조 발제를 했다. 그는 일본의 안보체제를, 전후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관련지어 상세히 설명하면서,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중·일의 삼각 우호 관계를 구축하는 방법 이외에는 없다고 강조했다. 필자에게는 마치 '중국이여, 제발 일본을 배제하지 말라!'는 호소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동아시아 국제관계에 대한 실감 넘치는 설명은 인상적이었다.
공동연구와 교류의 밑거름
각 패널에서는 평화를 위한 노력과 평화를 해치는 장애요인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많았다. 구체적으로는 국제기구와 국제환경, 갈등에서 화해로의 다양한 모색, 역사 인식과 갈등, 전쟁과 전쟁에 대한 기억, 상호이해, 평화사상 등 다양한 문제들이 평화를 화두로 다뤄졌다. '동아시아 지역질서와 평화' 패널에서는 국제기구와 국제환경이 20세기 동아시아에서 평화를 위한 중립적이고 자율적인 룰을 확보하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사실 이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갈등에서 화해로의 길' 패널에서는 올바른 역사 서술이 국가 간 정치적 화해에 기여할 가능성, 국제문화에 대한 바람직한 이해가 국제적 평화와 화해에 기여할 가능성, 공동의 신앙이나 문화가 동아시아 평화에 기여할 가능성 등을 모색하였다. '역사서술과 평화' 패널은 역사인식상의 차이와 갈등이 평화를 해치고 있음을 논증하였다. '전쟁과 화해' 패널은 전쟁책임문제에서 인식차이, 전쟁에 대한 역사 서술이나 기억 등의 문제에서 보듯이, 전쟁은 끝나고 나서도 평화의 절대적인 해악임을 강조하였다. '상호 이해와 평화' 패널에서는, 상대에 대한 이미지나 이해도가 평화문제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을 설명하였고, '평화구상과 사상적 모색' 패널은 다양한 평화 구상과 개념의 구축, 평화운동의 활성화가 동아시아 평화에 요긴한 일임을 지적하였다.
이번 회의는 크게 보아 사회, 국가, 세계와 같은 다양한 범주에서, 동아시아 역사 문제를 평화와 연결 지어 살펴보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성실한 발표와 열띤 토론이 이어졌고, 상호간에 의견 차이를 확인하고 인정함으로써 새로운 공동의 역사 인식을 창출하려는 학술회의의 기본 취지가 자연스레 달성되었다. 특별히 라운드 테이블 회의가 마련되었는데, 향후 동아시아사연구포럼의 활동과 국제학술회의를 위한 제언이 쏟아져 유익함을 더했다. 회의 말미에는 "동아시아 역사에서의 상호인식과 연동관계"라는 내년도 주제를 공개했다.
그 동안 상호인식에 대해서는 많이 다루었지만, 그 상호인식이 실제 행동에는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그 관련성에 주목한다고 하니,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내년에는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와 베이징대학 사학과가 함께 참여해 베이징에서 회의를 열고, 몇 패널은 주제를 지정해 공모한다고 한다.
패널 간 연관성 미흡, 주제의 쏠림 현상 아쉬워
이번 국제학술회의를 통해 마련된 학술적 교류와 소통의 장이 동아시아 각국의 상호 이해의 가능성을 넓혔음은 물론이다. 즉 한국, 중국, 일본, 대만의 연구자들이 국가라는 경계를 넘어 동아시아로 사고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을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러한 문제의식을 역사연구의 범주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심이 더욱 심화시킬 수 있었다. 특히 한국 연구자들은 동아시아사를 연구하는 외국학자들과의 실질적 소통을 통해 각국의 역사연구 경향과 방법론 등을 접하면서 연구시야를 확대할 수 있었다. 또한 향후 공동 연구나 다방면의 연구 교류를 추진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학술회의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몇 가지 아쉬운 점을 남기기도 했다. 첫째, 전체 주제-패널 제목-개별논문으로 이어지는 연관성과 이에 대한 공감대가 여전히 떨어졌다. 각 패널의 주제가 전체 주제와 어떻게 어울리는지 선뜻 이해가 안되었고, 각 패널 간의 연관성에 대한 충분한 고려도 미흡했다. 뿐만 아니라 한 패널 안에서도 개별 논문들이 연관성을 갖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향후 적극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발표자를 모집하는 시스템을 개선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둘째, 참가자나 주제의 쏠림 현상도 여전했다. 해외에서 초청받은 학자들은 몇 지역 몇 개 대학에 편중된 감이 있다. 국내의 경우에도 전공 간의 안배가 고르지 않고, 지역적으로 고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또한 근대 이전 시기를 다룬 논문이 너무 적어 그 자체가 문제였을 뿐만 아니라, 근대에 대한 논의를 보완하는 데에도 미흡했다. 한국사 연구자의 참여도 부족했다.
셋째, 젊은 신진학자들의 교류를 활성화하는 데에 더욱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약간의 젊은 학자들이 참가하여 신선함을 더했으나 전체적으로는 미흡했다. 미래 세대를 육성하는 일은 어느 분야에서나 매우 중요한 일이다.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인식을 창출함에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넷째, 발표 및 토론에 비교적 넉넉한 시간을 배정해 예전에 비해 여유가 생긴 것은 긍정적 변화였지만, 학회 현장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사회적 관심을 높이기 위한 배려가 더 필요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