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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일본에서 본 한국강제합방 100년
  • 김경남 호세이대 교수
한국강제병합 100년을 맞는 일본의 다양한 모습들.
(왼쪽 세번째까지는 각종 심포지엄 모습. 맨 오른쪽은 우익들의 선전차량. 나머지는 촛불을 든 시민들과 경찰이 이들을 보호하는 모습)

일본이 한국을 강제로 합방한지 100년의 해가 저물고 있다. 이 글은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한 일본에서 한국인으로서 살면서 느낀 작은 감상이다. 또한 이 시점에서 일본은 남북한과 아시아에서 무엇을 해결해야할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본 글이다.

무엇을 보았는가

일본에는 100년 행사로 정치, 학술, 시민단체 등이 다양한 홍보, 심포지엄, 집회를 하였고 또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정치적으로 간 나오토(管直人) 총리가 한국을 식민지 지배한 것에 대한 사죄를 표명하였다. 이전에도 일본의 수상이 '유감'이라고 한적은 있으나 사죄라고 한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일정정도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자민당을 비롯하여 전통이 긴 우익단체들은 단호히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1965년 한일경제협력 과정에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청산을 모두 했는데 왜 다시 사죄를 하느냐고 아우성을 쳤다.

이러한 우익단체의 반대 행동은 8월 14일, 일본을 비롯하여 한국, 대만, 중국 등의 국제적인 시민활동인 '8·15 반야스쿠니' 행동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났다. 야스쿠니반대운동은 일본의 침략전쟁에 의해 강제 동원되어 끌려간 조선 대만 류큐(오키나와) 사람들이 일본의 전쟁영웅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에 합사되었기 때문에, 이의 불합리성에 항거하여 시작된 행동이다.

대회는 "조선 식민지 지배와 야스쿠니"라는 심포지엄과 촛불 거리행진으로 구성되었다. 현재 일왕이 살고 있는 황거와 야스쿠니신사 가까운 곳에서 열린 이 대회에는 약 700명 정도가 참가하였다. 촛불시위에 몇 십만 명이 모이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이정도 규모의 집회가 열리는 것도 드문 일이다.

이날 우익단체들은 하루 종일 이 대회가 열린 사민당 강당 앞과 국회 주변을 돌면서 시커먼 선전차를 여러 대 끌고 다니며 확성기로 군가를 울리면서 선전선동하였다. 그들은 인터넷으로도 조직적으로 자신들의 활동에 동참하도록 유도하였으며, 100년을 맞이하여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야스쿠니 반대행동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행진을 할 때는 반대편 도로에서 튀어나와 큰소리로 위협하고 난동을 벌여, 경찰들이 경찰차를 동원하여 촛불을 든 시민들을 보호해야 했다. 참가자들은 해외에서 온 사람을 제외하면 아이를 데리고 나온 시민들, 평범한 일반시민이나 나이든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일본의 어떠한 TV나 언론에 일체 보도되지 않았다.

회색빛 국회 앞 넓은 도로를 옛 일본제국의 깃발을 날리며 의기양양하게 지나가던 우익단체 회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하였다. 아마도 1945년 8월 15일, 일본 패전, 조선 해방의 엇갈리던 희비가 현대판으로 재현된 것 같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리라.

일본의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한국강제병합 100년 국제심포지엄 등을 개최하였다. 8월 8일 동경대학에서 열린 심포지엄(국립역사민속박물관 주최) 에서는 "한국병합 100년을 묻는다"를 주제로, 근세·근대의 동아시아와 세계사 속에서의 한국병합문제, 전후 일본의 불완전한 식민지 지배 처리 문제, 황민화정책 문제 등을 논의하였다. 야요이(生) 강당에는 300명 이상이 참석하여, 일부는 바닥에 앉아 들어야 했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그러나 한 청중이 "메이지 천황은 한국을 병합했기 때문에 식민지 지배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지적을 했으나, 가장 본질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더이상 논의되지는 못했다.

조선사연구회에서는 "한국병합·식민지지배, 그리고 현재-단절과 연속의 시점으로부터"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청국 조계와 식민지 지배체제의 완성문제, 고종황제의 1905년 한국보호조약 재가 문제의 불법성논쟁, 한일회담에서 재일한국인 법적 지위 교섭 문제 등을 둘러싸고 활발하게 토론이 이뤄졌다. 하지만 발표자의 구성이 일본인보다 재일조선인이나 한국인이 많아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학계와 시민단체들의 다양한 활동

그 외에도 학계와 시민활동단체들은 다양한 주제로 100년을 맞이하였다. 일한시민공동선언집회는 서울(8월 29일)과 도쿄(8월 22일)에서 각각 개최되었는데, 이케부쿠로(池袋)에서는 일본과 한국의 시민 약 1천여 명이 참가하여 식민지주의 청산과 평화 실현을 촉구하고 '일한시민공동선언'을 채택하였다. 이때 대회의 실무를 맡은 한 청년은 "일본인은 한국의 역사는 물론 일본의 역사를 많이 배우지 못했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것도 잘 모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달라"고 했다.

이렇듯, 일본의 각계각층에서는 강제병합 100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떠한 역사를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하여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였다. 어떤 이는 옛 대동아공영권의 허망한 꿈을 아직도 꾸고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일본의 식민지주의에 대하여 경종을 울리며 전후처리에 대한 일본 정부와 국회의 진지한 처신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대다수 일반 시민들은 한일의 불행한 옛 관계에 대하여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생활 속에 묻혀 살고 있다. 조금 고무적인 것은 소수이기는 하지만 일본과 한국의 시민과 젊은 청년들이 서로 연대하여 한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습에 여린 희망이라도 걸고 싶다. 다만 여러 행사에 참여하면서 참석자가 거의 노년층 이라는 점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젊은 청년들의 활동에 거는 기대는 크다.

일본이 한국을 병합한지 100년,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패하고도 6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한일양국과 북한 그리고 아시아에는 심적·물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남아있다. 어떠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에 대한 전후보상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호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