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아시아는 활발한 교류로 보다 가까운 사이가 돼 가는 반면 '동북공정' 등 자국사 중심의 폐쇄적인 연구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갈등과 대립보다는 동아시아 연구자들의 상호이해와 연구증진을 위한 공동의 장이 자주 마련될 필요가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 10월 29일 동북아역사재단과 단국대 동양학연구소가 공동으로 "동아시아의 문명기원과 교류"를 주제로 한 동양학 국제학술회의는 동아시아 문명사연구의 새로운 길을 연 학술회의였다.
한국문명의 기원과 주변문화의 교류에 관해서 최몽룡교수(서울대)는 "한국문화기원의 다원성"에서 한반도에서 최근 발견, 조사된 문화유적을 동아시아 각 지역의 문화와 비교하여, 한국문화의 계통은 각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다원적인 입장에서 파악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최근 발견된 자료들은 중국 동북삼성, 몽고와 시베리아, 연해주, 아무르강 유역 등과 관련되므로 한국문화의 기원이 매우 다양했음을 강조하였다. 신숙정 원장(한강문화재연구원)은 "한반도 신석기문화와 교류연구"를 통해 한반도와 주변 국가들의 신석기시대 문화의 교류현상을 남북한 학계의 연구를 구분하여 검토하였다. 요동과 요서 및 한반도를 잇는 유물로서 지자문(之字文) 토기를 주목하고, 중국 동북지방과 러시아 연해주지역은 교차지역으로서 한반도의 문화는 신석기시대부터 이러한 지역과 지속적인 교류가 있었음을 밝혔다.
한·중·일·러와 몽골을 넘나든 고대 문명 교류의 흔적
중국 동북지역에 관해서는 먼저, 조빈복은 "한 이전 요서 지역의 문화 발전 단계의 건립 및 문화 전승과 교류 관계 연구"에서 요서지역의 신석기문화인 소하서문화,흥륭와문화,조보구문화, 홍산문화, 소하연문화와 초기청동기문화인 하가점하층문화는 전승관계가 있으며 9기인 하가점상층문화 부터는 전승관계가 없음을 밝히고 주변문화와의 교류 방식을 3개 시기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토론자인 백종오는 최근 중국학계의 연구가 '구계유형론(區系類型論)'에 입각하여 문화구분이 너무 세분화된 점과 '요하문명론'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이에 대해 발표자는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단계의 요서문화는 이미 문명단계에 진입하였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하여 이후 한중학계의 보다 적극적인 연구가 필요해 보였다.
하문식(세종대)은 "동아시아 문명의 기원과 교류 : 요동지역"에서 요동지역 문명단계를 살피기 위해 기층문화인 구석기 및 신석기시대의 상황을 살피고, 돌무지무덤, 고인돌, 비파형 동검을 이 지역 문화의 특징으로 파악하였다. 아울러 이지역과 요서지역 홍산문화를 비교하면서, 둘 사이의 지리·환경의 차이로 두 문화에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종수(단국대)는 "송눈평원지역 문명의 기원과 교류"를 발표하였다. 만주 북부 송눈평원을 중심으로 신석기시대부터 독특한 문화적 특성이 있었음에 주목하여 이를 '문화적 독립구'로 정의하면서, 송눈평원지역의 신석기시대 문화인 앙앙계문화에서 청동기문화인 소랍합문화-백금보문화와 초기철기시대 한서 2기문화를 검토하고 백금보문화부터 주변과의 교류현상이 보이는 점을 밝혔다.
일본, 러시아, 몽골 지역에 대해서 미야모토 카즈오(宮本一夫, 규슈대)는 "일본열도의 문명기원과 교류"에서 한반도에서 무문토기를 사용하던 문화로부터 목제 농기구가 일본으로 전파되었고, 중국에서 수수경작이 벼경작으로 바뀌고 이것이 산동반도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전파된 것에 주목하여 벼경작과 함께 관계농업이 시작되어 일본의 문명화가 시작되었음을 밝혔다. 이에 대해 이청규는 농경이 문명의 필요충분조건인지를 질문하고 벼 재배기술이 산동반도에서 요동반도를 거쳐 왔다면 그 증거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졌는데 현재로서는 이직 그 증거가 밝혀지지 않은 까닭에 후속 연구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클류예프. 엔.아.(러시아 과학원)는 "연해주 지역의 고대 문화-문명으로의 길"에서 연해주의 석관묘 묘제가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들어왔으며, 한국과 같은 온돌문화가 발달했음을 밝혔다. 아울러 연해주에서의 발해사 연구 성과와 한러 양국의 공동조사 연구의 중요성을 지적하였다. 김재윤은 연해주 지역에 청동과 철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확인되는 이유에 대한 토론이 있었는데 앞으로의 연구과제라고 생각된다.
투먼 D.(몽골 국립 울란바토르대학)는 "동북아시아의 고고학적 인종에 대한 인류학"을 발표하고 내륙 아시아의 역사적 시대들의 인종간의 형태학적 특성에 상당한 이질성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 신석기 및 초기 청동기 시대와 흉노 시대에 알타이, 신장 및 서부 몽골에는 코카서스인 혹은 몽골과 코카서스인이 혼합된 형태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거주한 반면, 바이칼 지역, 몽골 동부, 내 몽골은 발달된 몽골의 인류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인종이 점유하였다. 내륙 아시아 내 몽골인과 코카서스인 이주의 첫 번 째 변동은 신석기 시대 말엽에 발생하였으며 인종의 이동은 이후 이어지는 역사 시대에도 지속되었으며 중세 시기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토론자인 정석배가 인골 자료들의 시간적 비교에서 보이는 문제점을 제기하였으나 동북아시아의 인종적 변동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한 유익한 발표였다.
한국 고대문명의 실체에 다가서다
중국학계에서 '요하문명론'을 제시하고 중국문화의 원류 중 하나라는 가설을 제시함으로써, 동아시아 고대문명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최근 활발한 발굴성과에 힘입어 한반도 주변 지역의 문화편년이 점차 올라가고 있는 것이 동아시아 학계의 경향이며, 이에 따라 문명의 개시 연대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제시되고 있으나 한국학계에서 이를 정리하고 수용하는 속도는 한계를 갖고 있는 느낌이며 문명이론은 답보상태에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제 지역의 문화 현상과 그 교류를 통해 동아시아 고대문명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기원, 발전하였는가를 객관적으로 검토하는 동시에 한국 고대문명의 실체에 대한 실마리를 잡은 것이 이번 학술회의 성과였으며, 향후 한국고대문화를 고립된 단위에서 동아시아사 전체 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