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시원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고속도로를 달린다. 오랜만에 답사를 떠났다. '한국 암각화발견 4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2010.26~27)'에 참석한 국내외 암각화 전문가와 함께 가는 길이다. 답사는 대학을 다니면서 시작했기 때문에 제법 다녀봤지만, 이번처럼 해당 분야의 석학과 함께 하는 답사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인지 내려가는 내내 기대감으로 설레었다.
답사의 주요 일정은 울주 대곡리 천전리, 경주 석장동, 포항 칠포리 신흥리 암각화를 둘러보는 것으로 짜여있다. 암각화는 바위에 그림을 새기기 시작한 때인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을 그대로 전달해 주는 선사인의 '타임캡슐'이자 '메시지'이다. 특히 이번에 답사하였던 곳은 날짐승, 들짐승, 고래, 기하학적 무늬, 사람 등 다양한 그림을 한꺼번에 접할 수 있는 일종의 종합선물세트와도 같다.
흔히 암각의 동물 그림은 사냥·사육방법 등의 교육을 위해 남겼을 것이라고도 하고, 기하학적 무늬 중에 원은 하늘, 사각형은 땅, 깊은 구멍은 성혈(性穴) 또는 별자리라고 한다. 사실 청동기인들이 무슨 의미로 그림을 그렸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문명과 함께 철학·문화·사상이 발전하면서 습득된 지식을 수수께끼를 푸는 도구로 사용하고 그 결과, 앞서 말한 의미들이 나열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풀이라는 것은 정작 남기려는 의도보다 그 그림이 내가 알고 있는 무엇에 가깝다고 이해한 해석일 게다.
이번 일정 중에는 독특한 암각화가 있다. 울주 천전리 암각화이다. 일반적으로 보이는 다양한 문양과 함께 '글씨'가 새겨져 있어서다. 그림에 대한 풀이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글씨에는 확실히 남긴 사람의 뜻이 드러나 있다.
갈문왕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천전리 암각화
천전리 암각화의 '글씨'가 쓰인 시기는 신라 때로 알려져 있다. 글씨 중에는 눈여겨 볼만한 내용이 제법 있는데, 특히 소위 '추명(追銘)'이라 일컫는 '을미년명(법흥왕 26년, 539년 추정) 서석'의 글자 중 '사부지갈문왕(徙夫知葛文王)'이 흥미롭다. 사부지갈문왕은 입종(立宗)갈문왕(법흥왕)의 아우이자 진흥왕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입종갈문왕의 사망 연대와, 어린 나이에 즉위한 진흥왕의 사정을 자세히 전하지는 않았다. 진흥왕이 신라 사회에서 '살아있는' 갈문왕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한 것도 특이하지만 갈문왕의 생존 여부가 유일하게 천전리 바위글씨에만 나타나고 있어 매우 중요하다. 이런 글씨들은 사료가 부족한 한국고대사를 채워주는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천전리 암각화는 청동기시대 기하학적 문양부터 끊임없이 지우고 새기는 과정이 되풀이된 일종의 '낙서판' 노릇을 했다. 그런데 이 '낙서판'이야말로 생생한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소통의 통로가 아니겠는가.
천전리 암각화는 청동기시대부터 신라시대까지 사상·문화·생활 등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그 형식이 문양이건 글씨건 간에 누군가에게 전해야 하는 메시지를 담은 채 소통의 매개체로 남아 있는 것이다. 요즘처럼 가족, 계층, 사회, 세대로 나뉘고 갈린 현대사회에서 그 간극을 메워줄 소통의 도구로 선사인들의 지혜를 빌려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