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들도 어려워하는 일을 우리더러 하라고요?" 2009년 1월,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는 2010년 1월에 치룰 참교육실천대회 역사교육분과 주제를 [동아시아사]로 정하였다. 그러나 준비는 시작 단계부터 순탄치 않았다. 위에 제시한 반응은 4월에 있었던 지역모임 대표자 회의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참석자들은 [동아시아사]라는 과목의 취지와 성격부터 지역범주, 내용체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감이 오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동아시아사]의 첫인상은 '당혹스러움' 자체였다. '2007 개정교육과정'이 고시된 지 2년이나 지난 때였는 데도 그랬던 것이다.
역사학자들에게도, 역사교사들에게도 "손에 잡히지 않았던" [동아시아사]가 교육과정 해설서 제작, 모형단원 개발, 교과서 집필안내서 발간 등의 과정을 거쳐 이제는 교과목 개설을 눈앞에 두고 있다. [동아시아사]가 "손에 잡힐 날"이 머지않은 것이다. 11월 25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주관한 제2회 동아시아사 교과서 학술회의(이하 회의)는 '교과서'라는 단어가 회의의 주제어가 된 현재 상황을 잘 보여준다.
회의에는 [동아시아사] 교과서 집필자를 비롯하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등 유관기관 관계자, 동아시아사 수업연구모임 소속 역사교사 등이 참석했다. 참석 대상에서 알 수 있듯이 [동아시아사]의 고등학교 현장 적용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효율적이고 밀도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려는 주최 측의 노력이 엿보였다.
수요자 입장 반영한 교과서가 되어야
회의는 크게 기조발제와 4편의 발표, 토론으로 이루어졌다. 기조발제에서는 '[동아시아사], 어떻게 구상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성균관대)가 동아시아 통사 서술에 관한 일본 학계의 경험을 중심으로 여기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들을 지적하였다. 다음으로는 [동아시아사] 교과서 집필자들의 발표가 이어졌는데, 집필 과정에서 고민했던 점들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마지막 발표는 필자가 맡아 [동아시아사]에 대해 역사교사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교과서를 바라는지를 정리하였다.
회의의 초점은 어떻게 하면 2012년부터 적용될 [동아시아사]를 고등학교 현장에 안착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데에 맞춰졌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이제 와서 [동아시아사] 과목의 취지·내용 구성 자체와 관련한 논의는 의미가 없다"는 교과서 집필자의 발언이었다. 교과서 초안이 이미 나온 상태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은 "과목의 성격·목표 등이 교과서에 얼마나 잘 반영되었나", "교과서의 완성도를 어떻게 놓일 것인가" 하는 문제이지 [동아시아사]의 개설과 관련하여 논쟁거리가 되었던 문제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교과서 집필이 일단락 된 시점에서는 교육 수요자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여 교과서를 얼마나 잘 완성시키느냐 하는 점이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회의에서는 여러 제안들이 나왔다. 첫째, [동아시아사] 교과서는 처음 편찬하는 것인 만큼 교과목의 목표와 성격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교과서 집필팀 사이에 소단원의 목차와 항목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제안은 특히 회의에 참석한 역사교사들의 공감을 샀다. [동아시아사]라는 과목 자체가 생소한 상황에서 교과서의 소단원 항목이 출판사별로 다르다면 이 과목을 채택하는 것 자체가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둘째, 교과서 제작과 검정 과정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사전에 신중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먼저 범위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어디까지를 내용에 포함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러가지 평가의 부담 속에 살고 있는 교사와 학생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다음으로 제기할 수 있는 것이 역사 용어의 문제다. [동아시아사]는 대내외적인 합의나 통설이 없기 때문에 역사 용어를 선정하는 데에 매우 큰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편수용어에 대해 사전에 알릴 필요가 있다.
채택률 높이기 위한 홍보 절실
셋째, 이러한 노력들이 열매를 맺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상호 공존을 이끄는 역사교육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동아시아사]의 채택률을 높이기 위한 홍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연수·사이버연수·답사 등 교원연수의 확대, [동아시아사] 개괄 팸플릿 제작, 수업자료를 비롯한 데이터베이스의 구축 등이 매우 중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동아시아사]는 교육과정이 고시된 2007년 2월부터 지금까지 줄곧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뜨거운 감자'이자 논쟁거리였다. 때문에 교육과정 개발자들은 [동아시아사]의 취지와 성격을 알리고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동아시아사]와 관련된 여러 사업을 주도한 동북아역사재단은 든든한 후원군이 되었다. 학계와 교육계는 문제제기를 하면서도 큰 틀에서는 [동아시아사]라는 과목의 취지와 성격에 공감을 표하면서 바람직한 동아시아 역사상과 역사인식을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왔다.
이러한 노력들이 이룬 하나하나의 물줄기들이 [동아시아사] 교과서라는 큰 강에서 만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교과서가 환호의 대상이 될지 날카로운 비판의 대상이 될 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이번 회의에서처럼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교과서로 채택되고 쓰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은 지금까지 해온 노력이 결실을 맺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마치 악천후 속에서도 비행을 포기하지 않은 조종사가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돕는 관제탑과 활주로처럼 말이다.
※ 동아시아사가 과목명으로 사용될 때는 [동아시아사]로 표기하였다. _ 역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