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뉴스레터

연구소 소식
끝나지 않은 전후보상문제
  • 김경남 호세이대 교수

강제 합방 된 지 100년, 해방된 지도 60년이 넘었다. 그런데 아직도 일본의 식민지지배가 남긴 과제를 청산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 글은 지난 호(2010년 12월호)에 이어서 일본은 남·북한과 아시아에서 무엇을 해결할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해본 글이다.

전후 보상문제는 일본이 아시아태평양전쟁의 승전국과 옛 식민지·옛 점령지 국가에게 갚아야 할 배상금과 보상금,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그 청산문제이다. 현재 해결해야 할 문제는 크게 몇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100년 전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발생했으나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로는 먼저 '조선인BC급전범'문제가 있다. 이들은 일본군에 끌려가거나 동원된 군인과 군속들로, 명백히 식민지 피해자이지만 전쟁이 끝나자 포로를 학대한 '일본군'으로 처벌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정작 일본 정부는 이들이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 다음으로 한국 대만 필리핀 등의 어린 여성들이 일본 군대에 끌려가 성노예 노릇을 강요받은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있다. 일본 정부는 이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국가차원의 사과와 보상은 미루고 있다. 식민시기 노무자를 동원하여 일을 시켜놓고 그들의 봉급과 퇴직금을 지금도 돌려주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또 '내지(일본본토)'와 '외지(식민지 점령지)'를 구분한 호적으로 차별정책을 취해 놓고 전쟁이 끝나자 귀화하지 않는 한국인 대만인 중국인들에게는 어떤 보상도 하지 않고 있어 논란과 소송이 끊이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 국적 그대로이거나 '한국' 국적을 가지고 영주하는 60만 명이나 되는 재일조선인들에게는 아직도 참정권을 주지 않고 있다. 이밖에도 영유권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독도문제, 일제강점기에 반출해간 문화재반환문제 등도 아직도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미국의 냉전 대응용 극동전략이 부른 후유증

이제 일본 국회에서 전후보상을 위한 특별법안이
제정되기를 기대한다. 사진은 일본국회의사당

치욕스런 식민지 지배를 당했다는 자존심 문제를 뒤로하고라도 이 문제들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해방 이후 한국·북한·중국·대만 등에 대한 피해보상은 냉전논리에 밀려 이뤄지지 않았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이 냉전체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짠 극동전략에 있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미국에게 극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전략 가치는 매우 커졌다. 아시아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일본을 대대적으로 파괴했던 미국은, 거꾸로 일본을 다시 회생시켜야 할 필요가 생겼지만 그러는데는 너무나 많은 돈이 들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미국시민들의 세금으로 일본을 먹여 살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미국은 연합국은 물론 중국과 대만에게는 배상금을 포기하도록 유도하였고, 필리핀과 인도에게는 배상금을 경제협력 방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하였다. 당시 이러한 미국의 요구와 조정에 정면으로 반대할 배짱 좋은 나라는 없었다. 결국 미국 덕분에 일본은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고, 대신 일본과 피침략국 사이에는 전쟁의 후유증이 고스란히 남았다. 결국 아시아서 일본의 전후보상 문제는 미국을 뒷배경으로 하여 일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었고, 냉전논리에 밀려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전후 보상 입법과 동아시아 시민들의 연대가 답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일본 정부는 국가차원의 전후 보상문제 특별법안을 만들어 적극적인 해결방침을 세워야 할 것이다. 조선인 BC급전범보상에 대한특별법, 강제동원노무자보상에대한특별법, 옛 '위안부'에대한사죄와보상특별법 등을 만들어 명확하게 진상규명을 하고 피해자들에게 정중하게 사죄하고 보상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경제 강국이 되었다고 하지만, 한국을 비롯하여 아시아 여러 나라들한테서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전후 보상문제를 해결하여 국가 이미지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이는 글로벌시대에 그들이 피해를 입힌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더불어 살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둘째, 이를 바탕으로 민주주의 시민연대로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만드는 방안이 있다. 일본도 한국도 북한도 미국이나 중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민연대활동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새로운 평화의 물고를 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90년대부터 일본에는 수 많은 시민단체들이 전후
보상을 주장하고 지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은 아시아의 평화와 시민 모임에서 연 포럼

한반도에 사는 한국인들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 미군과 소련군의 점령과 군정, 한국전쟁을 거치고 남북으로 갈라져 살고 있다. 또한 한국은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엄청난 피를 흘린 끝에 겨우 민주화를 이룩했다. 일본인들은 제국주의로 나아간 전쟁, 원폭과 공습, 패전, GHQ(극동연합군사령부)의 점령통치, 미국에게서 주어진 민주주의, 시민들의 민주화 활동을 차례로 경험했다.

한국 시민들이 정치적인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는 사이에 90년대부터 일본에서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전후 보상처리를 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옛 군인군속을 돕는 모임, 조선인 유골반환을 돕는 모임, 헌법9조 개정반대모임, 위안부를 생각하는 모임, 강제동원 재판을 돕는 변호사 모임 등 수 십 개의 단체가 개미처럼 활동하고 있다.

지금 한국강제합방 100년이 되는 해에 되돌아보면 일본과 한국에 있는 학계, 시민단체, 청년들의 연대활동은, 참으로 어렵겠지만, 평화로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를 만들기 위해 너무나 소중한 씨앗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쟁이 없는 참다운 평화 유지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에게 귀중한 목숨을 지키기 위한 생명선이다.

※ 전후 보상문제에 대한 자세한 것은 최근 필자가 번역한 우쓰미 아이코(內海愛子) 씨의《전후보상으로 본 아시아와 일본》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