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독도문제를 한국과 미국과 일본 등 삼국관계 속에서 다루며 독도문제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연 연구서가 출간되었다. 《독도 1947》은 1947년을 중심으로 1951년까지의 한·미·일 삼국관계를 통해 독도문제의 본질을 고찰하며 독도분쟁 해결에 힘을 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재단의 '독도연구상 시상식'에서 "독도수호상"을 수상한 저자, 정병준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_ 편집자 주
지난해에 펴낸 《독도 1947》이 독도문제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책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처음 독도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01년 국사편찬위원회 재직시 1년간 미국에서 자료를 조사하게 되었다. 그때 보게 된 1950년대 초반 미국 외교문서들 중 독도에 대해서 일본 측 입장이 맞다고 하는 식의 문서들을 보게 됐고.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조사해 보니까 결국 출발이 샌프란시스코평화회담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평화회담이 어떻게 진행되었길래 독도문제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겼고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면서 독도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돌아보니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시작했지만, 자료의 내용을 보다가 불편한 심정이 생겼고 또 학문적으로 자극받기도 해서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독도가 일본령에서 배제되어 한국령으로 표시된 영국 외무성 대일평화조약 초안에 첨부된 지도를 2005년에 발굴, 소개했는데 발견 당시 이야기와 소감을 듣고 싶다.
2001년에 미국에서 처음 미국 외교문서들을 보았을 때는 사실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 2005년에 다시 미국에서 샌프란시스코평화회담을 주도한 존 포스터 덜레스의 문서철을 비롯해 몇몇 문서철을 찾아보다가 영국외무성 지도를 발견하게 된 거다. 마이크로 필름으로만 공개된 문서들을 우여곡절 끝에 원문으로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1미터가 넘는 큰 지도가 있었다. 지도를 발견했을 때는 기분이 참 좋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자료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원문에 지도만 덜렁 있는 것이 이상해 다시 그 지도와 관련된 비밀문서를 찾아보니 영국에 보관되어 있는 영국 외무성이 작성한 문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국내에서는 영국에 있는 문서만 알려졌고 미국에 있는 지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 해 2월 주일대사가 독도가 일본령이라고 망언하던 때 지도가 공개되며 얼떨결에 크게 주목을 받아 뉴스에도 나오고 했지만 사실은 조금 서글프고 속상했다.
지도를 공개한 후 그런 감정을 느낀 이유는?
자료를 찾다보니 독도연구라는 것이 서글픈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왜 국내에 문서만 알려지고 지도는 알려지지 않았을까'하고 이유를 찾으니 국내에 유통되는 문서는 일본 국회도서관에 있던 전문가가 독도가 일본령이라는 것을 밝히려고 미국·영국에서 수집한 문서를 자의적으로 선택하여 잡지에 실었던 것인데, 이것을 국내로 가져와서 책으로 펴낸 것이었다. 잘 알려진 미 국무부의 제1초안부터 9초안도 일본학자가 발굴한 것을 국내에 소개하면서 숫자를 붙인 것이다. 그래서 그 일본학자의 논문을 찾아보았다. 당연히 지도는 없었다. 단지 각주에 문서는 영국에서, 지도는 미국에서 확인했다고만 언급했다. 불리한 자료니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그걸 알고서 참 속상하고 서글프고 복잡한 심경이었다.
이런 것들이 계기가 되어 책을 펴내게 된 것인가?
지도를 공개했다고 끝난 것은 아니니 학자로서 글을 쓰게 됐다. 영국 외무성 지도에 대한 글을 쓴 다음 샌프란시스코평화회담을 중심으로 한 전후독도문제를 써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쓰게 됐다. 국내에서는 아직 미국 문서보관서 자료나 시스템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미국 문서보관서에 관해서는 내가 전문가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에 기초해서 써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거꾸로 출발한 셈이다. 1952년도와 1953년도 미국문서에서 출발해서 샌프란시스코평화회담으로 올라갔고 그걸 보니까 일본사람들이 어떻게 했을까를 알기 위해 2차 세계대전을 추적하게 됐고, 또 회담과정에서 한국의 이야기를 찾아 올라가게 되었다. 조약 초안들에 독도를 리앙쿠르 락으로 표기한 미국은 독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찾아보게 됐다. 결국 독도문제를 2차 세계대전 전후 한·미·일 관계 속에서 다루게 된 것이다.
《독도 1947》,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이 책에서는 1947년을 독도 영유권 문제의 분수령으로 보는 것 같은데 1947년을 주목한 까닭은?
샌프란시스코평화회담이 있었던 1951년은 독도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갈림길이었고, 결정의 귀결이었지만 실제로는 한·미·일 3국이 독도문제에 대해 인식을 시작한 출발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47년은 한국으로서는 독도에 대해 조사를 시작하고 대마도, 독도, 파랑도를 하나의 묶음으로 인식하는 해가 됐고, 그때 일본 외무성은 독도가 일본령이라고 하는 허위 선전물을 만드는 등 독도에 대한 정책을 구체화한 시점이었다. 미 국무부도 1947년에 대일평화조약을 본격적으로 만들면서 그때 리앙쿠르 락이 한국령이라고 명기를 했다. 즉 세 나라의 전후 독도인식의 출발점이 바로 1947년이었다. 그것이 1951년에 회담으로 귀결되었고 그 이후에 각자의 길로 갈려나갔다. 그래서 나는 그 전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1947년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주목했고, 책의 제목으로까지 붙이게 됐다.
결국 이 책을 통해 독도문제는 미국의 전후처리 과정, 냉전에 대응하는 미국의 세계 전략의 부산물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 학계의 연구는 여전히 역사적 연원을 찾는 데 그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것은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일 간 관계로 보이지만 전후에 드러나게 되는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지역질서가 개편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강화조약과 샌프란시스코평화회담을 통해 일본영토가 확정되는 과정에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도 그와 연동돼서 지위가 결정되었고 영토문제 또한 그렇게 결정되었던 것이다. 샌프란시스코평화회담에서도 아주 중요한 당사자였던 한국은 제3자인 것처럼 취급되었다. 결국 미국이라는 패권국가의 자장(磁場) 하에 놓여져 있었기 때문에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그런 인식이 부족했던 것 같다. 이제는 샌프란시스코평화회담에 대해서 관심들이 많아졌다. 앞으로 새롭고 좋은 연구가 더 많아지리라 생각한다.
최근 중·일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센카쿠 열도(조어도) 문제도 그렇고 미국을 빼고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영토 문제를 거론하기 어렵다. 하지만 미국은 미국의 국익이라는 차원에서 피상적으로 접근할 뿐 적극적인 노력을 기대하기 어려운데, 이런 상황에서 해당 국가 국민이 원하는 해결은 요원하지 않을까?
미국이 러시아나 한국, 중국과 관련해서 특정한 섬을 호의나 악의를 가지고 조정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과 관련되는 부분은 명확하게 해결했다. 그런데 자국의 이익과 관련되지 않은 지역에 대해서는 상관없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존 포스터 덜레스의 등장 이후 맺은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은 기존의 강화조약과는 달리 전쟁책임을 묻지도, 배상과 영토할양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일본에 굉장히 우호적인 조약이었다. 동아시아에서 일본과 영토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한·중·러 세 나라 모두 초대받지 못했거나 러시아 같은 경우 그 자리에 있었지만 사인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전시의 영토정책은 폐기했지만 새로운 영토정책은 논의하거나 합의하거나 결정하지 않은 채로 조약이 체결된 것이다. 그것도 제일 중요한 나라들은 빠진 채로. 결국 지금 동북아시아의 영토분쟁은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만들어낸 여파라고 볼 수 있다. 당연히 미국의 태도는 이익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앞으로 지역질서가 중국을 중심으로 재편되면 상황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그동안 《독도 1947》 외에도 《우남 이승만 연구》, 《한국전쟁-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등 여러 권의 책을 냈다. 하지만 이런 연구들은 가까운 현대사이지만 그래도 과거의 일인데 반해 독도는 현재 진행형인 아주 민감한 문제다. 국제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주제를 연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그동안의 연구주제들이 대부분 민감한 것이었다. 사실 말리는 사람도 많이 있었지만 학문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바라고 생각했다. 제일 힘든 부분은 자료조사였다. 지금까지는 초안에 독도가 등장하느냐, 어떻게 표시되어 있느냐만 봤는데 사실은 그런 초안이나 문서들이 어떻게 나왔는지 구조적인 맥락을 모른 채 이야기해온 것이다. 이것을 구조화시키기 위해 대일평화조약과 관련된 조약을 전부 다 봐야 했다. 너무 힘들었다. 처음 자료를 보기 시작한 것은 2001년부터이고 본격적으로 자료를 모으고 찾은 것은 2005년부터다. 그리고 2년 전에 그동안 모아왔던 자료를 정리하며 집필하기 시작했다. 방대한 자료량 때문에 고생했다.
이 책을 펴낸 후 국내외 학계의 반응은?
먼저 책이 너무 두껍다는 이야기를 들었다.(웃음) 책을 읽어보고 평가하고 비평하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해외 쪽은 특히 일본 사람들이 열심히 사서 보고 비판, 비평해 주면 고맙겠다. 얼마든지 즐거운 마음으로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독도 연구에서 스스로 부족하다거나, 우리 학계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조금 더 원사료에 기초한 연구가 많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미·일 어느 나라 문서든 기존에 알려진 자료를 재해석 하는 것 외에도 새로운 자료를 많이 발굴해서 새로운 시각과 논리로 조형하는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재단으로부터 '독도연구상'을 수상했다. 좀 늦었지만 소감과 연구자로서 재단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격려와 분발의 의미로 준 상, 고맙게 생각한다. 앞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격려나 자극이 되리라 생각한다. 역사연구에 있어서 모든 힘의 기초는 사실과 자료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재단에서는 새로운 자료나 기존에 알려진 자료를 잘 정리하고 구축하고 활용하는 데 좀 더 신경을 써주길 바란다.
정병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해방 후 좌우합작운동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우남 이승만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3년부터 2002년까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근무하면서, 50여 권의 한국현대사 관련 자료집을 기획·해제·간행했고, 2001년에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파견되어 근무했다.
해방 전후 인물과 정치사, 독도문제와 한·미·일 관계에 대해 글쓰기를 하고 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인문과학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몽양 여운형 평전》, 《해방전후사 사료연구 1》(공저), 《미국소재 한국사 자료 조사보고1 : NARA 소장 RG 59·RG 84 외》, 《우남 이승만 연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