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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현황과 특징
  • 김지훈 성균관대학교 연구교수

본 연구는 2009년도 동북아역사재단의 "중국 역사교과서 현황 파악 및 분석" 과제 사업으로 기획되었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이미 중국의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재가 어떻게 한국사를 서술하고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2006년부터 기획연구를 수행하여 《중국 역사교과서의 한국 고대사 서술 문제》, 《중국 역사교과서의 민족·국가·영토문제》, 《중국과 타이완·홍콩 역사교과서 비교》, 《중국 대학 역사교재 속의 한국·한국사》, 《타이완·홍콩 대학에서의 역사교육과 한국사에 대한 인식》 등의 결과물을 출판하였다.

본 연구의 대상인 중국의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건국 이후부터 최근까지 '역사교학대강'에 의거하여 편찬된 인민교육출판사의 교과서가 사용되다가 현재는 2003년에 반포된 '역사과정표준'에 의거하여 편찬된 고등학교 실험교과서가 2004년부터 보급되어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중국의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인민교육출판사와 악록서사, 인민출판사, 대상출판사(북경사범대학출판사로 판권 이전됨) 등의 교재가 전국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 상해지역에서는 화동사범대학출판사의 교과서가 사용되고 있다.

정치적 변화 따라 달라지는 중국교과서

본 연구는 중국 고등학교의 역사교과서에서 단순히 한국사의 왜곡 내용을 찾아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적 다민족국가론 등이 중국의 역사교과서에 어떤 형식으로 반영되었는지를 분석하여 중국의 역사교육과 역사교과서의 현황과 내적 논리를 파악하려는 목적에서 진행되었다.

본 연구는 '역사교학대강'에 의거한 인민교육출판사의 단일 교과서에서 '역사과정표준'에 의거하여 다양하게 편찬된 중국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서술 내용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학계에서는 중국 역사교과서의 한국 관련 서술에 관심을 가졌지만, 중국사서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편이었다. 이번 연구에서는 중국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서술방향에 대한 검토가 먼저 이루어졌고, 그것을 토대로 부분적으로 한국사와 관련된 내용도 살펴보았다.

이번 연구를 통해 중국의 정치적 입장의 변화가 중국의 고등학교 역사교육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를 검토하였다. 중국의 역사교육에서는 종래 역사유물주의를 강조하던 관점에서 개혁개방 이후 실용주의적 관점으로 변화하고 있다. 기존 교과서의 중원 중심주의적 관점이 약화되고 다중심발전론이 대두하고 있으며 민족융합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의 변화에 따라 과거의 역사에서도 민족 간의 투쟁보다는 융합을 강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영웅'이나 '충신'이라고 평가되었던 '악비'나 '문천상'에 대해서도 사실 위주로 서술하고 있다.

현재의 중국이 한족을 비롯한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현실을 반영하듯이 교과서 서술에서도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 청나라의 강희, 옹정, 건륭제의 시대에 중국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확보했고 한족을 비롯한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통일적 다민족국가가 공고해졌다고 한다. 이러한 논리는 현재 중국의 신강과 서장 문제에 대한 중국의 공식적 입장이 청대 전기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해진 중국의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다른 한편으로 중국의 역사교과서는 종이, 인쇄술, 나침반, 화약 등 4대 발명을 비롯해서 전통시대 중국 과학기술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이러한 중국의 발명이 근대 유럽이 발전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하고 있다. 중국사와 세계사의 관계 속에서 자국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혁명사관 약화, 문명사관 확대 뚜렷

중국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시대구분은 중국사와 세계사에서 각각 차이가 있고 서술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국근대사 속의 항일전쟁은 중국공산당이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어떻게 지도하여 물리치고 '승리'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을 중시하고 있다. 반면 세계 현대사 속의 제2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이탈리아, 일본, 독일 등 파쇼 국가들이 어떻게 전쟁을 일으켰고 반파쇼 진영이 어떻게 승리하였는가를 서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중국의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역사과정표준'에 의거하여 개편되면서 중국사와 세계사를 합쳐서 역사를 가르치고 정치사와 경제사, 사상문화사를 분리하였으며, 주제사를 전면적으로 도입했다. 이러한 시도는 중학교 역사교육과 중복되는 고등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암기식 교육에서 탈피하여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어내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사의 도입은 시간 순서대로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이 역사적 사건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초래했고 정치사, 경제사, 사상문화사로 분리되어 하나의 사건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되는 등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의 역사교과서는 '역사과정표준'을 채택하면서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다. '악록서사'의 교과서는 중국사와 외국사를 병렬시키고 근대 이후에는 중국사와 세계사를 함께 설명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인민교육출판사'의 교과서는 일본제국주의 침략의 잔혹성을 비판하는 데서 나아가 일본군이 왜 인간성을 상실한 채 잔인하게 중국인을 살해했는가를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하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역사학계에서는 종래의 혁명사관이 약화되고 문명사관과 포스트모더니즘, 아날학파 등의 영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의 변화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역사교과서가 다양하게 출판되면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