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0일 뉴욕시 맨해튼(Manhattan)의 뉴욕대학교(NYU)의 킴멜(Kimmel)센타에 500여 명 이상의 학생과 시민들이 모였다. 주로 아시아인들이 많았지만 백인, 흑인 그리고 남미계들이 섞여서 겉으로 봐서는 행사를 주관하는 곳을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인종별 구분 없이 서로 어울려서 제기를 차고 윷놀이를 하며 떡국을 함께 먹는 것을 봐서는 뉴욕시가 아시안계를 위해서 기획한 행사 같았다.
사람들이 강당을 빼곡하게 채운 후에야 한복을 차려입은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서 나왔다. 사회자의 인사(Openning Comment)가 충격이었다.
"Why do Korean people celebrate Chinese New Year?" (한국인들이 왜 중국의 새해를 기념하는 것인가?)라고 큰 소리로 질문을 하였다. 그리고 사회자는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하였다. "겉으로 보기엔 모두를 백인이라고 하지만 문화와 정서로는 이탈리아, 그리스, 프랑스, 독일 등 각각의 나라가 명확하게 구분되듯이 아시안계를 모두 중국인(Chinese)이라고 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다. 오늘은 한국인들의 새해인 '설날'이다. 제기차기, 윷놀이, 떡국 먹기 등은 한국의 문화이지 중국의 문화가 아니다." 다양한 인종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서 이렇게 시선을 집중시켜서 아주 명확하고 명료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사. 뉴욕대학교 한인학생회의 '설날'행사의 취지는 간단하면서 명확했다.
아시안계는 모두 중국인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28일 명문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는 "Colorful China"란 공연이 열렸다. 이 공연팀은 미국 전역을 순회하면서 공연을 펼쳤다. 이것은 중국 민족박물관과 중국영사관 등 중국 정부 단체에 의해서 주최한 것으로 중국 내 60여 개 소수민족의 문화를 보여준다는 취지의 공연이었다. 거기에 한국의 전통 문화에 관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논란이 되었다. 중국 내 수많은 소수민족의 하나인 조선족의 문화라고 소개하면서 기생들의 옷과 춤, 전통한복, 가야금연주, 아리랑, 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가인 '오나라'도 연주해서 관중의 갈채를 받았다.
형식적으로는 WAE(World Artists Experiences)라는 미국 문화단체가 초청을 했는데 매머드급의 전국순회공연에 전액 무료로 관객을 입장시키는 것을 미루어 볼 때에 중국정부가 아주 치밀하게 전략적으로 준비해 온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 이 공연은 2세들에게 한국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게 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한인동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전세계 한(국)인들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뿌리째 흔드는 실로 중대한 사건이었다. 더구나 아시안계 하면 곧바로 중국인(Chinese)이란 등식으로 통하는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한인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준 사건이다.
지난 1월 18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워싱턴을 국빈 방문했다. 그는 미국과의 중요한 현안이 첩첩이 쌓였음에도 3박4일 동안의 방미 일정 중 1박2일 동안 시카고의 공자학원(중국계미국인(Chinese American)들이 설립한 미국 내 '중국센타')을 찾아갔다. 세계 속의 중국건설을 위해서는 미국 내 중국인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는 행보였다. 그의 시카고 공자학원 방문에 대해 미국 내 중국언론들은 "중국계 미국인들에게 민족적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도록 했다"고 평가했다. 미국 내 중국인들의 정치적인 결집력이 눈에 보이게 달라지고 있다. 미국에서 중국인들은 홍콩계, 대만계로 3등분되어 있었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직후부터 빠르게 구분이 없어지고 있다. 그들의 이념적 갈등인 대만계와 중국(Mail Land)계의 울타리가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대륙적 기질'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어쨌든 너무나 쉽게 통합되어가는 모습이 부럽기까지 하다. 미국에서 중국계들은 '하나의 중국'이 아닌 '하나의 아시아'를 주장하려는듯 하다. 이러다 정말로 한국이 중국의 소수민족 중의 하나로 인식될까 두렵다.
한국을 지키기 위한 발상 전환이 필요한 때
지난해의 중간선거로 공화당이 연방하원의 다수당이 되었다. 중부지역 공화당의 계보는 친일본계의 밥 미첼, 데니스 해스터트, 도널드 만즐로로 이어지고 있다.
2006년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이 상임위에서 만장일치 통과되었음에도 전체회의엔 근처도 못갔던 이유가 바로 그 당시 하원의장이 친일본계의 데니스 해스터트였기 때문이며, 2007년, 미주교포들에 의해 다시 결의안을 상정시켰을 때에도 시작부터 만즐로 의원에게 막히게 되었다.
더구나 만즐로 의원이 아태소위원회 공화당 간사(ranking mem)였기 때문에 우리에겐 정말로 큰 골칫거리였다. 그는 결의안의 내용에는 공감을 하지만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내세웠고 일본이 아시아를 주도해야 미국에 이익이란 논리를 펴면서 '일본군위안부결의안'에 동의해 주질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 공개 찬반 투표에서는 41명 중에 2명이 반대를 했는데 만즐로 의원은 현명하게도 찬성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만즐로 측과 한인풀뿌리 측과는 충돌의 반복이기도 했다. 그 당시 우리의 시민 풀뿌리 로비는 세련되지 못했다. 설득하고 또 설득해야 함에도 정당성과 명분만을 내세우며 미디어를 통해서 공격만 했다.
그런데 지금 그 만즐로 의원이 외교위 내 아시아태평양환경 소위원장이 되었다. 만즐로 의원의 입장은 '반중국, 친일본, 무한국'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가 이러한 입장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한국과의 접촉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의 마지막 표결 과정에서 만즐로 의원이 결국엔 찬성한 것을 보고서 필자는 그에게 한국에 대해 더 많이 알리기로 작정했다.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한미관계를 중심으로 미국의 이익을 보도록 열심히 자료를 퍼붇고 있는 중이다.
도널드 만즐로 의원의 경우는 빙산의 일각이다. 그동안 일본은 연방의원을 상대로 꾸준히 교육·홍보 활동을 펼쳐왔다. 일본이 이렇게 꾸준한 홍보활동을 펴고 있고, 대만이 급속하게 하나의 중국으로 귀속되고 있는 가운데에 한국은 어떤가? 2008년 여름, 워싱턴 의회도서관과 미국 지리위원회에서 갑자기 발생했던 '독도명칭변경'의 사건이 악몽처럼 떠 오른다. 지금 워싱턴에선 아시안계들끼리의 정치적 로비 경쟁이 거의 전쟁에 가깝게 벌어지고 있다.
영토뿐만이 아니고 문화와 전통, 민족적 정체성까지도 국력이 있어야 지킬 수 있다. 국제화 시대가 이것을 가장 극명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미국이 한국을 옹호토록 하는 일은 200만 이상의 한국계 미국시민이 지렛대다. 미국에서 한국을 지키는 일에 전략적인 발상전환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