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했던 것보다 홋카이도의 2월은 따뜻했다. 영하 40도를 넘어서고 1년의 절반 가까운 시간이 겨울인 도시의 첫인상은 세상을 하얗게 덮은 눈 때문인지 눈부시고, 포근했다. 이번 홋카이도 방문은 2012년 '동아시아사' 교과서의 현장적용을 앞두고, 역사교사 25명과 관계자 30명이 함께 하였다. '디아스포라(Diaspora)의 땅, 홋카이도에서 만나는 동아시아'라는 주제처럼 140여 년 전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생활터를 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개발하기 위해 강제이주된 일본인과 일제강점기에 강제연행된 조선인(1945년 당시에는 11만 명의 조선인 거주), 중국인 등이 함께 했던 이곳에서 한국과 일본의 교사, 평화를 염원하는 시민들이 만나 진정한 동아시아의 평화에 대해 느끼고자 하였다.
처음 우리가 찾은 곳은 혼간지(本願寺) 삿포로 별원(別院)이었다. 혼간지에서 1999년에 유골유류품정리부에 있던 101명의 명단과 유골함이 발견되면서 홋카이도의 유골 발굴 활동이 본격화되었다고 한다.
혼간지 101구 유골은 두 차례의 화장을 거쳐 조그만 3개의 납골함에 보관되었다. 유가족에게 유골을 봉환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명부가 확인된 유가족들이 이곳을 찾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홋카이도 일제 강제 연행지에서의 유골발굴과 봉환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다음날 삿포로에서 200여km 떨어진 홋카이도섬의 북쪽인 슈마리나이로 이동하였다. 강제동원된 노동자들에 의해 건설된 대규모 인공호수인 슈마리나이호와 근처 댐건설 현장을 찾아 당시의 상황에 대해 듣고, 강제노동자료관에 모셔진 유골과 위패에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슈마리나이로 이동하는 내내 바라보이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이곳으로 끌려온 수많은 노동자들도 저 풍경을 보았겠지? 그들은 이곳으로 오는 내내 무엇을 생각했을까?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낯선 땅에서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자신의 미래를 감히 생각이나 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맴돌았다.
유골발굴 돕는 일본인들의 진심이 주는 감동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서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많은 분들과의 소중한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분들은 유골 발굴 작업을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자신들이 꼭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실제로 2005년 첫 발굴 당시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서 땅을 파야 할지 막막할 때, 갑자기 비가 내려 천막으로 이동하던 중에 지금 홋카이도포럼의 공동대표인 채홍철 선생님의 무릎 깊이까지 다리가 빠졌고, 발굴단의 한 교수님이 이곳을 삽으로 표시해 두고 파보자고 했는데, 얼마 파지 않아 거짓말처럼 1구의 유골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또한 홋카이도는 비가 잘 오지 않는 지역인데도, 유골 발굴 때마다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한다. 발굴단은 이 비가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울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힘든 작업이지만 유골 발굴과 봉환 활동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번에 홋카이도를 함께 방문한 교사들도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반일(反日) 감정만으로 일본을 가르쳐 왔는지 반성했다고 하면서 이곳에서 만난 일본인들과 그들의 활동을 수업시간에 꼭 소개하겠다고 했다. 이러한 조그만 변화들이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를 이뤄가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