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일체화와 역사 현재화를 병행하는 지구화는 역사적 현상일 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글로벌한 역사의 시각에서 보면, 지구화와 한반도, 그리고 동북아시아는 결코 무관하지 않다. 즉 지난 19세기 말 20세기 초 동북아시아는 제국주의 시스템화와 세계 일체화가 접속된 시공간이었다. 만주와 한반도는 구미 제국주의 열강의 세계정책과 세력균형의 역학 관계에 접속되었고, 특히 한반도는 러·일 대립을 중심축으로 하여 열강의 동맹 협조체제가 연동되면서 세력판도의 각축장이 되었다.
한편 21세기 현재, 황해와 동해를 변경(邊境)한 동북아시아는 지중해 유럽과 더불어 글로벌 파워들 간의 새로운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 펼쳐지는 접속 현장이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를 위요(圍繞)한 동북아시아는 세계사의 중핵 지역이다. 따라서 오늘날 동북아시아 밖의 타자(他者)들이 왜 동북아시아에 주목하고, 특정 카테고리를 역사화하고 있는지 그 중심 구상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마스터 역사내러티브의 구상 시급
그 밑그림들 중 동북공정, 독도, 전쟁과 평화, 한민족 디아스포라(diaspora)와 관련된 역사는 경계를 넘나드는 트랜스내셔널한 역사담론들이다. 그것은 주변 타자들과 사회적 네트워크가 단절되면 언제든 지방/지역적, 민족/국가적 이해 관계에 따라 마찰, 갈등과 충돌을 야기하며 전쟁으로 비화될 소지가 있다. 한·중·일 3국 간의 역사 전쟁으로 비유되는 역사교과서 문제도 그 편린이다. 따라서 주변부 역사담론을 넘어서는 마스터 역사내러티브(narrative)의 구상은 시급하다. 동북아역사 연구의 현재 및 미래 구상도 이에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같은 구상에는 '보이지 않는 손'들에 의해 긴장상태가 조성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그것은 역사의 경계를 넘는 글로벌화 과정에서 이질성(heterogeneity), 잡종성(hybridity)과 같은 변위요인들이 정체성 혼란을 초래해 오히려 새로운 유형의 위기와 전쟁 상태(warfare)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에 '유럽의 변방화'(Provincialising Europe)를 모색하여 역사의 글로벌화에 기여한 챠크라바티(Dipesh Chakrabarty)는 포스트 식민 비평에서 이것은 다소 불가능한 작업이라고 논하기도 한다. 이에 반(反)하면 동북아시아의 중핵화(Centralizing Northeast Asia), 나아가 한반도 중핵화를 통해 역사의 글로벌화를 모색하는 작업 또한 불가능한 작업일 수도 있다.
역사 다시읽기와 다시쓰기에 동참해야
그럼에도 이를 넘어서려는 시도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기실 오늘날 역사의 글로벌화를 논하는 많은 연구자들이 동북아시아에 주목하고, 그 역사를 새롭게 읽기와 다시쓰기에 동참하고 있다. 그들은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가 역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생각의 중심에 서 있다. 하지만 그 작업은 결코 간단치 않다.
일례로 러·일전쟁 100주년을 전후하여, 글로벌한 전망으로 전쟁을 어프로치한 학제적 연구들이 주목되었다. 그것들은 러·일전쟁을 '제0차 세계대전'(World War Zero)으로 새롭게 재해석함으로써, 지역적 차원에 머물렀던 러·일전쟁의 시공간적 범주를 확대하였고, 기존 러·일 및 서구 중심 역사담론들을 넘어섰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필자는 압록강변의 한국문제에 대한 심층읽기가 간과됨으로써 기존 러·일전쟁 원인론이 답습되는 한계가 엿보였음을 누차 지적하였다. 그럼에도 압록강변 사건은 역사와 기억의 장으로 환기되지 않았다.
재론하지만 러·일전쟁 개전 직전인 1903년 압록강 변경의 조차와 개방을 둘러싸고 전개된 한·러·일 3국 간의 각축전은 한반도에서 벌어진 러·일전쟁의 전초전이었다. 그것은 영·미와 공조를 모색한 일본을 한 편으로, 그리고 러시아의 지지를 기대한 대한제국을 다른 한 편으로 한 러·일전쟁의 한국판 드라마였다. 그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동인(動因)이 된 '서구 유럽 모로코사건'과 견줄만한 '아시아판 모로코 사건'이었다. 소위 러·일전쟁을 한반도전쟁과 세계전쟁이라 명명하는 단초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같은 역사 다시읽기는 한반도라는 작은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일지라도, 국가 경계를 넘어 동북아시아 지역과 구미 지역 간 연계가 불가결하다는 탈지역화 인식에 기초한 것이며, 그 시간틀을 청·일전쟁으로부터 제1차 세계대전 나아가 한국전쟁까지 확장하여 장기적인 변화 가운데에 개별사건을 위치하게 하는 방법이다. 바로 이것이 한국사의 세계사적 맥락화를 구상하는 역사 기술(歷史技術:Historical Technology)이다.
이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역사의 글로벌화를 지향하는 연구자라면 우선 우리의 역사적 경험이 모더니티(modernity)보다는 글로벌리티(globality)의 요소들에 보다 접근하고 있음을 직시하여야 한다. 아울러 그 핵심 작업은 1차적 역사를 수집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다른 역사가들의 1차 연구들을 토대로 추론하고 비교하여, 매즈리쉬(Bruce Mazlish)가 구상한 글로벌한 상호 관련성을 모색하고, 브로델(Fernand Braudel)이 추구한 거대한 장기적 패턴을 찾아내며 지역사, 나아가 세계사의 본질과 의미를 명료하게 할 변화를 이해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임을 자각하여야 한다.
글로벌 시대에 한반도에서 벗어나 동북아와 더불어 세계를 보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역사의 길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그에 대한 답 중에 동북아시아의 글로벌히스토리 구상을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밖으로는 글로벌 시민정신(Global Citizenship) 구현에 일조할 것이고, 안으로는 제국주의, 식민주의와 이데올로기 담론에 중층화되고, 역사분리 담론과 사회통합 담론에 찌들고, 민족/민중 담론과 지역화 담론에 병들어 있는 우리 역사교육과 구제불능상태에 놓인 세계사교육의 암담한 현실을 진단하고 치유하여 역사교육의 세계사적 맥락화의 길을 여는 반성적(reflexive)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