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을은 따뜻한 햇살과 높은 하늘, 그리고 청정한 공기가 있어 정말 아름답다. 그야말로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이 아름다운 가을의 한 자락인 10월 15일에, 동북아역사재단과 서울시교육청이 공동 주최한 주한 원어민 중국어 보조교사 대상 역사 체험교육이 강화도에서 있었다.
아침부터 촉촉이 가을비가 내렸지만, 이번 행사에 초대된 주한 원어민 중국어 보조교사 10명과 중국어 협력교사 10명이 강화도로 출발하기 위해 동북아역사재단으로 모였다. 이번 행사는 강화도 역사시설 견학 및 문화체험 활동으로 주한 원어민 중국어 보조교사에게 한국 역사에 대한 이해 폭을 넓혀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되었다.
첫 번째 답사장소는 강화역사박물관이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적 제137호 강화 고인돌 공원 내에 위치한 강화역사박물관은 강화 문화유산을 보존·활용하기 위한 조사연구 및 전시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다. 개국시원부터 청동기시대, 고려, 조선, 근·현대까지, 긴 복도를 따라 전시된 옛 선조들이 남긴 문화재를 통해 오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조선 숙종 때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청동범종인 강화동종(보물11-8호)을 보았는데, 강화 성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리는 데 사용된 이 종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이 약탈해 가려다가 무거워서 버리고 갔다고 한다. 비록 지금은 이 종을 치지 않지만 강화 성문을 여닫을 때마다 웅장하게 울렸을 당시 종소리가 강화도 영욕의 세월과 변화를 말해주며 나를 감싸는 듯 했다.
강화도 역사 속으로 빠져들다
강화역사박물관 건물을 나와 고인돌을 보았다. 오랜 세월동안 하늘을 이고 무겁게 고여 있는 지석묘 앞에 서니, 내 호흡도 그 무게에 눌려 무겁게 내려앉는다. 이렇게 거대한 돌 아래에 묻힌 사람은 얼마나 큰 권력을 가졌으며, 얼마나 많은 영광을 누렸을까?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해 울었을까? 당시에 돌을 옮기기 위해 동원된 수 백 명은 어떤 목청을 냈을까? 수십 톤 무게의 돌을 2미터 높이까지 어떻게 옮겼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상상이 안 되었다. 눈 앞에 서 있는 거대한 돌은 문자 없는 비석으로, 그곳에 청동기 시대 문명이 새겨져 있고, 대자연에 대한 인간 정복의 위대함을 말해 주고 있다. 선조들의 지혜와 문명의 찬란함에 자못 고개가 숙여졌다.
강화해협을 따라 용머리처럼 튀어나온 자연 갯바위 위에 설치한 용두돈대에 갔다. 이곳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치열한 포격전이 치러졌던 곳이다. 용두돈대에는 아직도 병인양요의 포성이 귓가에 울리고, 신미양요의 신음소리가 성벽을 감돌고 있는 듯했다. 용두돈대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강화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수없이 쏟아지는 화살에 꽂히고 칼에 찔리고 베어지며 젊음을 바쳤던 군사들의 격렬한 싸움을 생각하니 절로 전율이 감돌았다. 피, 눈물, 원한들이 알 수 없는 전설이 되어버린 지나간 아픔들이 광풍으로, 그러다가 부드러운 빗속으로 이따금 뚜렷하게 때로는 몽롱하게 연상되면서 강화도 역사 속으로 나도 모르게 점점 이끌리고 있었다.
용두돈대 바로 밑으로는 물살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느껴지는데, 물이 빙빙 돌며 파도가 험하기로 유명한 '손돌목'이다.
고려 21대 희종이 몽고군을 피하여 용유도로 뱃길을 재촉할 때 뱃사공으로 이름이 알려진 손돌을 사공으로 정하였다. 희종이 음력 10월 20일 이 곳 용두돈대 밑에 당도하니 물살이 세고 바다가 막힌 곳으로 자꾸 배를 저어 들어가자 당황한 왕은 사공 손돌을 역적으로 의심하여 죽이고 만다. 손돌은 죽으면서 왕에게 "바다에 조롱박을 띄워 조롱박이 가는 데로 따라 가면 바다가 트일 것이다"라고 일러주고 죽었다고 한다. 말대로 조롱박을 띄워 이곳을 통과한 왕은 손돌을 죽인 것을 후회하고 김포쪽 강가 야산에 묻어주고 제사를 올려주게 하였다.
이 좁은 물길을 '손돌목'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이는 손돌이 억울하게 죽은 곳이기 때문이란다. 뱃사공 손돌은 죽은 후에 서북풍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음력 10월 20일이면 부는 바람을 '손돌풍', 추위를 '손돌추위'라고 한다. 빗줄기와 함께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뱃사공 손돌의 슬픔이 나에게 다가왔다. 갯벌에 물이 들어와 소용돌이치는 물살은 천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 자리에 지켜 머물고 있다.
지나간 세월을 머리에 이고,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곳
강화도는 가는 곳마다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해 주고 있었다. 시조 단군이 마니산에서 제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장엄함, 삼국시대에 칼날을 부딪치며 치열하게 싸웠을 전쟁, 몽고 철갑기병과 39년을 버터며 싸웠던 고려인들의 꺾이지 않는 조국을 지키려는 의지, 연산군이 유배되었던 일, 인조가 피난하며 흘렸을 눈물과 탄식, 프랑스군이 규장각을 약탈하며 여기저기 마구 불을 질렀던 일, 광성보에서 화살도 양식도 다 떨어진 상태에서 미군과 장렬하게 싸웠던 육박전, 일본 함대 침략과 강제로 맺은 강화도 조약의 굴욕… 강화도 곳곳에 남겨진 유물과 유적들은 마치 치열한 전쟁을 치른 장수 몸에 남겨진 상처처럼 당시의 고난과 아픔, 그리고 영광을 느끼게 했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어느새 멈추었다. 석양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지붕마다 굴뚝연기가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모습이 정성을 다해 만든 강화도 화문석을 보는 것 같았다. 황금색 논이 시야에 펼쳐져 있고, 농부 두 명이 방금 수확한 고구마를 메고 짙푸른 무밭을 지나고 있다. 강화도의 따스하고 여유 있는 기운이 느껴졌다. 강화도는 지나간 세월을 머리에 이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며 오늘도 그곳에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촉촉한 가을비를 맞으며 체험한 강화도 역사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았다. 강화도는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근대 초까지 한국 역사의 주요 무대가 되었던 곳으로 한국 역사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 중국 역사와 비교하여 고찰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뜻 깊은 역사체험 기회를 주신 동북아역사재단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