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여름 몽골 중부 볼간 아이막 바양 노르 솜에서 투르크시대의 고분을 발굴했다. 발굴 과정에서 고구려 고분벽화와 유사성을 보이는 청룡·백호도가 함께 발견돼 주목을 받았다. 이에 재단은 아유다이 오치르 몽골 유목문화연구소 소장을 초청해 지난 10월 27일 '7세기 투르크 벽화무덤 발굴 조사 결과 및 성과'를 주제로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번 호에서는 강연 후 진행된 아유다이 오치르 소장과 재단 장석호 연구위원의 대담을 소개한다. _ 편집자 주
아유다이 오치르
몽골국립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91년부터 2002년까지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 소장을 역임하였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는 몽골국립박물관 관장을 역임하였으며, 2009년부터 몽골유목문화연구소 소장으로 각종 조사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몽골의 역사》 및 《몽골인의 역사와 문화》 등을 책임 편집하였고, 총 8권의 저서와 1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장석호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였으며,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에서 2년간 바위그림을 연구하였고,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물질문화사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예니세이강 중류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의 선사 및 고대 바위그림을 직접 조사 연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한국 민족문화의 계통성을 밝히고자 애쓰고 있다. 《몽골의 바위그림》, 《중앙아시아의 바위그림》 등의 저서와 《선사예술기행》 등의 역서가 있다.
장석호: 이번 발표를 통해서 몽골에서 처음 벽화묘가 발견된 것을 알았고, 앞으로 고구려 고분벽화 등과 비교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발견에 대한 감회가 새로울 텐데, 발견 당시 상황과 벽화를 확인했을 때 느낌이 궁금하다.
오치르: 처음 무덤을 발굴할 때 지하로 들어가는 널길 옆에 벽화가 나타났는데 벽화를 보는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느낌이 지금도 생생한데, 몽골에서 이런 벽화가 발견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놀라움 다음에는 '우리가 이것을 후대에까지 어떻게 온전한 상태로 보존해서 전해줄 것인가?' 또, '당장 연구를 하기 위해선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가?' 이런 생각들이 뒤따랐다. 이제 연구 시작 단계에 들어섰지만 사전에 고구려나 중국 등 주변 지역 벽화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발견된 벽화가 동아시아 벽화들과 유사점이 많다는 것을 첫눈에 알 수 있었다. 보다 과학적으로, 사실에 근거한 연구를 하기 위해서 바로 동아시아 고분벽화를 전공하는 연구 인력들과 공동연구를 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장석호: 이번에 발굴 경과 발표 후, 벽화에 대해 중국의 영향 대신 고구려 고분벽화와의 유사성을 강조한 이유를 누군가 물었다. 전문가로서 이번 벽화를 보고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과연 어느 쪽과 더 관계가 깊어 보이는지 의견이 궁금하다.
오치르: 일단, 벽화를 보고 마찬가지로 상당히 놀랐다. 지금까지 몽골은 고분벽화와 관계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런 유적, 유물들이 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벽화가 고구려 고분벽화와 유사성이 짙다는 점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지금까지는 중국 일변도의 연구를 해 왔는데 이제부터는 새로운 차원에서 벽화 제작, 주제, 양식 등에 관한 연구를 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발견한 것이다.
이 벽화를 통해 북방 유목민 문화의 새로운 전형을 보았다. 사신도의 용을 보더라도 사슴 뿔, 귀신 눈, 낙타머리, 호랑이 앞발, 독수리 발톱 등 여러 가지가 합쳐진, 요즘 말하는 하이브리드 형상이다. 이렇게 여러 동물을 모아서 하나의 형상을 만드는 전통에는 농경민 문화의 요소보다는 유목민과 수렵민 문화의 요소들이 많다. 그래서 오히려 북방 수렵민, 유목민 문화 속에서 근원을 찾아내어야 하고 또 그것이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졌는가를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중국, 한국 등 주변국의 유적과 비교연구를 하면 훨씬 성격을 분명하게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이것이 가장 시급한 연구라고 생각한다.
장석호: 이 고분벽화는 몽골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그리고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되는데, 이 고분벽화에 대한 연구 계획이 있다면?
오치르: 몽골에서 벽화묘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연구 인력이 없다. 당장은 눈앞의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시간도 자본도 부족한 형편이지만 이후에는 크게 두 가지 계획을 갖고 있다. 첫째로 발굴된 벽화의 성격을 객관적, 과학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주변 지역의 고분벽화와 비교 연구를 할 계획이다. 벽화를 본 일부 연구자들은 이 고분이 당나라 시대에 해당하는 무덤이기 때문에 중국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벽화는 중국 영향보다는 몽골의 독특한 느낌과 함께 동쪽으로는 한반도나 만주지역, 서쪽으로는 멀리 로마나 비잔틴 제국의 영향까지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요즘 중국에서 많이 발굴되고 있는 거란 벽화와도 비교 연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로 현재 이와 유사한 유적이 몽골에 몇 군데가 더 있는데, 이번에 발견된 고분벽화와 비교할 만한 자료를 찾아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귀한 자료가 될 유적에 대해 앞으로 한국과 몽골이 공동연구를 진행한다면 성과가 극대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석호: 현재 발견된 것과 유사한 고분과 벽화 등의 유적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다. 또한 향후 그 유적들에 대한 공동연구를 희망한다고 밝혔는데 그럴 경우 어떤 방법으로 진행해야 할까?
오치르: 현재 발굴된 유적과 유사한 고분이 몽골에 4군데 정도 더 있다. 이곳들은 비슷한 외형을 가지고 있는데, 선배 학자들은 이 유적들을 대부분 성터가 무너진 흔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난 무덤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한국과 몽골의 공동연구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1991년, 한·몽 공동학술조사 협의회를 결성한 이후 꾸준히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최근 한국과 몽골이 공동으로 조사하는 고고학 연구 성과를 보면 고대부터 한국과 몽골이 긴밀한 교류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유적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공동연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장석호: 방금 말한 것처럼 최근, 오래 전부터 한·몽 간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이 발굴됐다. 예를 들어 7세기 경 말갈과 몽골에 살았던 유목민과의 교류를 증명할 수 있는 비문, 10세기 후반에서 11세기 초, 몽골에 거주했던 발해인 흔적 등이 있고, 이후에도 관계를 증명하는 많은 유물들이 발굴될 것 같은데, 이렇게 계속되는 새로운 발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오치르: 역사는 '발견사'라고 생각한다. 새롭게 발견하면 과거 역사는 바꿔 쓰고 수정해야 한다. 한·몽 관계만 해도 계속 발굴되는 고고학적 문헌 사료, 유적과 유물들을 통해서 새로운 해석들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런 것들이 쌓여 지금까지의 정설, 통설은 굉장히 많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한테 주어진 임무는 지금까지 추정했거나 가정했던 것을 증명할 증거물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번 발굴에서도 말 재갈이 발견됨으로써 몽골은 물론 한반도까지 포함하는 중앙아시아가 광역 문화권을 형성했었다고 볼 수 있다. 말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순간 지역 사이에 보이던 지역 색이 점점 엷어지면서 거대한 하나의 동일한 문화권을 형성하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말 재갈이 마치 오늘날의 휴대폰이나 인터넷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중국으로만 쏠려 있던 시야를 북방으로 돌려 우리와 유사성이 큰 문화들을 주목하면서 근원을 찾아 올라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장석호: 중앙아시아와 한반도의 선사 및 고대 문화와 관련해 몽골이 차지하고 있는 역사 문화적 의미는 무엇일까? 또, 몽골이 중앙아시아사 또는 세계사에 기여한 점은?
오치르: 몽골 유목민을 비롯해서 중앙아시아에서 국가를 성립했던 수많은 유목민들은 지난 몇 천년 동안 동양과 서양이라고 하는 정주문명의 중간에 위치하며, 동서 간 문화교류가 이뤄질 때 유목민들은 일정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즉, 유목문명을 통해 동·서양 문명이 교류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건 유목민들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동성에 기반을 둔 것이다. 결국 몽골과 중앙아시아의 유목문명은 세계사를 연구할 때나 동·서양 정주문명을 연구할 때도 필수적으로 함께 연구해야 할 중요한 주제다.
장석호: 많은 학자들이 유목문화와 농경문화를 서로 대립하는 개념으로 보며 유목문화에 대해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 진정 유목문화란? 또, 몽골이 유목문화사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는 무엇인가?
오치르: 인류문명 초기에는 당연히 모든 사람이 이동을 했다. 그러다가 자연환경, 기후에 따라 정주문명과 유목문명이 생겨났다. 이 두 문명은 역사 속에서 항상 공존해 왔고 교류와 상호 의존을 통해서 서로에게 필요했던 걸 주고받았다. 특히 유목민들은 특유의 기동성으로 자신들의 문화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문화나 결과물들도 또 다른 지역으로 전달해 주며 세계사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몽골은 세계사와 중앙아시아 유목문화사에서 다양한 공헌을 했다. 물론 부정적인 면도 일부 있지만 몽골의 유라시아 정복을 통해 인류가 새로운 문명에 눈을 뜨게 됐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보다 깊이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안타까운 점은 현재 유목민들의 전통적인 생활이 오직 몽골에만 존재하고 있어, 앞으로 몇 십 년 후가 되면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
장석호: 재단이 11월 9일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한·몽 역사고고학자 협의회'를 발족하였는데, 협의회 발족에 대한 소회는?
오치르: 한·몽 교류 20년이 된 지금이 한·몽 역사고고학자 협의회를 발족하기 위한 최적기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양국 학자들이 진행해 온 연구와 교류가 자국민들에게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는 소개 단계였다면, 이번 협의회 발족을 계기로 상호 간 더 활발한 교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장석호: 재단에서 몽골과 공동연구를 진행할 때 어떤 것이 중요한 주제가 될지, 어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오치르: 몽골과 우리가 공동으로 연구할 것 중 시급한 주제는 고조선의 문제다. 고조선의 역사적 성격 규명과 고구려 문화 연구, 그 다음 발해 문제까지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 풀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과 몽골의 잃어버린 과거, 문헌으로 남아 있지 않은 고대사를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문헌이 설명해 주지 못하는 것은 암각화나 고분벽화 같은 조형예술이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과 몽골의 학술기관이 공동으로 발굴하고 비교 연구를 통해 그 성격을 밝혀야 한다. 우리는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을 눈앞에 두고 그에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몽골도 마찬가지로 중국에게 역사왜곡을 당하고 있는데, 이에 함께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양국 학자들이 질적·양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연구를 하고 그 결과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