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에서는 동북아 역사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역사갈등 현황과 우리 입장을 해외에 알리고, 세계 각국 학자들과 지속적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세계 유력학자들을 초빙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조선시대 전기 대외관계사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재단 초빙학자 케네스 로빈슨 박사와 재단 독도연구소에서 독도주권 수호와 관련하여 연구 중인 이명찬 연구위원의 대담을 소개한다. _ 편집자 주
케네스 로빈슨
하와이대학 한국연구센터를 거쳐 일본 ICU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조선시대 전기 대외관계사를 전공했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조선지도와 외국지도에 관한 연구논문을 발표했으며 영어, 한국어, 일본어로 출판하였다. 현재 재단 초빙학자로서 조선왕조의 대일본, 대유구, 대여진의 교류와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이명찬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와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과를 졸업하였으며, 게이오대학 법학연구과에서 법학박사(정치학전공)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재단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국제정치에 대한 인식과 일본의 외교·안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독도주권 수호에 힘을 쏟고 있으며 동아시아 지역의 영토분쟁에 대한 연구를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
이명찬: 일본에서 14년 동안 교수로 재직한 걸로 알고 있다. 미국인으로서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느꼈던 점이 남다를 것이다. 오늘 이야기 나누고자 하는 주제는 세 가지다. 먼저 독도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 두 번째로 최근 불고 있는 한류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 그리고 마지막으로 10년 이상 오랜 기간에 걸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점에 대해 듣고 싶다. 우선 첫 번째로 독도에 대한 일본인의 반응과 그에 대한 인상은 어떠했나?
로빈슨: 독도에 대해 대부분의 일본 국민들은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일반 국민에게 독도는 쉽게 놀러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독도를 둘러싼 갈등이 전쟁만큼 이슈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메이지유신 이후의 외교관계, 대외관계에 대해 일반인들은 잘 모르고 있다. 고교 역사교육에서 메이지유신 이후 일제강점기와 러·일전쟁에 대해 다루고 있는 분량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일반 국민들은 물론이고, 대학생들도 식민지시대가 좋지 않았다는 점은 알아도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대다수 일본 국민들은 독도 대해 무관심한 듯 느껴졌다.
이명찬: 그런데 최근 독도에 대한 일본 반응을 보면 갑자기 난리법석을 떠는 듯한 느낌이 든다. 10년 전만해도 일본 내에서 화제거리도 되지 못했는데 최근에는 교과서에까지 한국 측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식으로 기술이 되어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로빈슨: 그건 일본 우익의 움직임 때문이 아닐까?
이명찬: 우익이라면 예전에도 있었는데 왜 최근 들어 우익들의 활동이 활발해졌을까? 최근 이루어진 '교육기본법' 개정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그에 대한 의견은?
로빈슨: 일본정부가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강조한다면 문부과학성도 정부의 일부이니 그 노선을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870년대에 태정관(太政官 : 메이지 전기의 최고 관청, 현 내각에 해당)에서 내놓은 자료는 교과서에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역사교과서에서 다룬다면 설명도 같이 덧붙여야 하니까 역사책에는 상세히 기술하지 않는 것이다. 달리 말해 역사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현재 영토문제라는 식으로 다루는 것이다.
이명찬: 일본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할 때 독도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이 없었나? 수업 진행 중 독도에 대한 내용이 화제가 된 경우는 없었는지?
로빈슨: 물론 독도에 대해 교재로 다룬 적은 있었는데, 그 때 학생들은 그저 묵묵히 듣고 있었을 뿐 화제가 된 적은 없었다.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설명에 대해 반론하거나 "일본 땅이 아니냐"고 되묻는 학생은 없었다. 마치 학생들은 난생 처음 독도에 대해 설명을 듣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이해되는 상황이다. 고등학교 역사수업은 2000년 동안의 역사를 다뤄야 하니 일일이 자세하게 다루지 못했을 것이다. 고교 교사의 입장에서는 독도나 다케시마 대신, 메이지유신이나 청·일전쟁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편을 택했을 것이다.
이명찬: 1994년부터 10여 년 가량 일본에서 생활을 했는데, 98년까지는 일본TV에서 한국의 '한'자도 본 적이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은 한국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을 다녀가고 문화개방에 합의하면서 최초로 드라마에 한·일 양국 남녀연기자가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프렌즈'라는 드라마가 제작되어 시청자들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는 최초로 일본이 한국과 함께 세계적인 행사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며 한국을 응원하는 모습까지 보여준 특별한 것이긴 했지만, 2004년 배우 배용준과 함께 불붙기 시작한 한류 붐을 예견할 수는 없었다. 이후 일본의 한류에 대한 반응은 바로 옆에 있지만 모르고 지냈던 신대륙을 발견한 것에 비유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한류 열풍이 시작된 계기가 무엇이라 보는가?
로빈슨: 한류가 생기게 된 분명한 계기가 있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전에 김종필씨가 가고시마, 후쿠오카 등지에서 마치 '사전작업'이라도 해 놓듯 일본어로 연설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한 이후에 여러 가지가 가능해졌다. 일본정부나 한국정부 모두 유연하게 대응했고, 결과적으로 '차게 앤 아스카(CHAGE and ASKA)'가 2000년,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인으로서는 최초로 한국에서 콘서트를 열 수 있었다.
이명찬: 한류가 생기게 된 계기 중 하나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일로 보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로빈슨: 배경이 따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도 그렇고, 시간적으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일 이후에 일본문화가 본격적으로 개방·수입됐다. 한국에서 일본 음악, 영화, 서적 등이 합법적으로 유통됐다. 그런 것들을 통해 일본인들이 아마 처음으로 한국인들과 진심으로 서로 교류할 수 있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해 역사가 한국인과 일본인의 개인적인 관계를 규정하지 않게 된 것이다. 역사가 아니라 다른 주제를 통해 출발할 수 있게 되었고, 이후 조금씩 역사에 대해서도 일본인들의 생각이 새롭게 미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 일본인 친구들과 학생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명찬: 동감한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도 꽤 큰 영향을 주었다. 당시 일본에서 한국 사람들, 유학생들, 조선족 동포들은 물론 일본인들과도 함께 어우려져 열심히 응원했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함께 응원한다는 건 예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축구경기에서 말이다. 나 역시 신주쿠 오오쿠보 거리에서 한국경기를 일본인들과 함께 응원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로빈슨: 음악이든 영화든 축구든 같이 즐길 수 있는 소재다. 골칫거리가 아니라 서로 즐길 수 있는 대상을 통해 같은 동북아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마도 일본인 입장에서는 좋은 의미에서 '충격'이었던 것 같다. 이전까지 지나치게 서양에 경도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종의 '재발견'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 월드컵 개최 전후로 정부 협력 하에 방송국들이 한국 드라마는 물론, 한국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제작해서 방송했다. 한국인들이 일본을 많이 왕래하고 있는데, 반대로 자신들이 한국에 갔을 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사전준비를 한 것이다.
이명찬: 그야말로 이전까지는 일본은 한국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겠다. 늘 미국, 영국, 유럽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했다가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한국을 배워야 한다는 쪽으로 바뀐 것 같다.
로빈슨: 그보다는 '배워도 좋다'는 쪽으로 바뀌게 된 거다. 일종의 정신적인 해방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 대해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져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그래서 당시 일본인 유학생 수가 폭발적으로 급증했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위화감이 많이 없어졌는데 20여 년 전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유학생이든 관광객이든 이제 한국에 가는 것은 젊은이들 사이에 흔한 일이 되었다. "아직도 한국에 안 가봤니?"라는 말을 할 정도로 공통적인 경험을 하고 있다. 물론 한국으로 떠나는 일반 관광객들도 많아졌다. 이제 일본인이라면 '명동'에 대해 다들 알고 있을 정도다.
이명찬: NHK에서 2004년 방영한 '겨울연가' 이후 본격적으로 '한류'라는 흐름이 생겼다. 그 당시 일본 내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배용준 한 사람이 외교관 1,000명이 전력을 쏟아도 하지 못할 위업을 해냈다는 얘기들이 회자되었다. 다만 '겨울연가'의 경우 주부들이 주로 좋아했는데, 아줌마라는 뜻의 일본어 '오바'와 외계인이라는 영어의 '에어리언'을 합친 '오바리안'이라는 말까지 등장할 정도로 젊은층이나 남성들로부터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금은 K-POP이 한류의 중심이 되고 젊은층이 열광하는 흐름으로 바뀌었음을 반추해 보면, 한류의 일본침투는 특별한 어느 계층에 국한되지 않은 전반적인 현상으로 꽤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로빈슨: 지인 중 70세의 한 일본인 여성은 한국 TV 프로그램을 아주 좋아하는데,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자신의 10대, 20대 무렵을 떠올리게 됐다고 말한다. 아마도 처음으로 정치, 역사가 아니라 TV 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으로 한국인과 교류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 이전까지 벽이 있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더불어 한국 유학생들도 늘어나 일본 대학생들은 자신이 다니는 대학에서 한국인들과 교류를 할 수도 있게 됐다. 그 때문에 한류의 흐름이 길어지고 확장될 수 있었다. 현재 도쿄에서 오전 10시대에 한국드라마가 더빙으로 녹음돼 방영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유명 그룹뿐 아니라 마이너 K-POP 그룹도 일본을 방문 중인데, 매우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이명찬: 마지막으로, 한·일관계나 한국사를 연구한 일본인 학자들이 보는 한류는 어떠한가?
로빈슨: 알다시피, 일본에서는 한국사든 한국정치든 다소 마이너한 분야다. 그렇지만 최근 한류 붐을 타고 조금씩 중시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특히 고대사, 한·일교류사, 일제강점기 시대와 같은 주제가 일본사 전문가에게 인정을 받아 공동연구가 늘어나면서 조선사, 한국사의 중요성이 확인되고 있다. 실제로 TV뉴스에 이즈미 하지메 교수나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 등이 나와 북한문제뿐 아니라 한국 국내의 정치라든가 한·미관계가 일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기도 했다. 이런 변화는 한·일역사공동위원회가 설립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류는 양국 역사와 정치에 대해 서로 열린 마음으로 연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