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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고구려ㆍ발해사 국제학술회의 개최 고구려ㆍ발해사 연구의 새로운 모색
  • 김정열 역사연구실 연구위원

지난 2011년 11월 28일과 29일, 이틀에 걸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고구려·발해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이라는 주제로 학술회의가 열렸다. 러시아 연방 연해주에 소재한 인구 약 60만의 크지 않은 도시로 블라디보스토크는 옛 소련 극동함대의 근거지이며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동쪽 기점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이 유사 이래 우리 민족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옛 고구려와 발해가 이 지역을 영유하여 활발한 해상 활동을 전개하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11년 초겨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고구려·발해사 국제학술회의가 남다른 의미를 가지는 까닭은 이처럼 아득한 시간적 거리를 뛰어넘은 과거와 현재의 조우라는 다소는 극적인 요소가 더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적과 유물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고구려ㆍ발해 역사

이번 학술회의의 주제를 '새로운 지평'이라고 설정하게 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고구려와 발해에 대해 기록된 역사는 그 양이 풍부하지 않을뿐더러, 알려질 만한 것들은 세간에 이미 다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이미 알려진 문자자료를 통해 고구려·발해 역사에 대한 새로운 지견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우리들의 관심이 증폭되어가는 것과 반비례하여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더욱 풍요롭고 다채롭게 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성급하게 비관적인 대답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고구려·발해인이 문자 형태로 남겨 놓지 않은 자료를 지하에 남겨진 유적과 유물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으며, 이를 통해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더욱 구체적이며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조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학술대회 주제를 '새로운 지평'으로 설정한 것은 고구려·발해인이 남겨 놓은, 그리고 이제 우리들 눈앞에서 새롭게 발견되고 이해되기 시작한 유적과 유물을 통해 고구려·발해 역사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를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겠다는 일종의 조심스러우면서도 낙관적인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와 같은 낙관적 자신감이 막연한 희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우리 재단은 이번 학술대회를 함께 기획하고 주관한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극동분소와 함께 2007년부터 지금까지 5년에 걸쳐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에 위치한 크라스키노 발해성지를 공동으로 발굴해 왔다. 크라스키노 발해성지는 발해의 5경 15부 62주 가운데 62주의 하나인 염주(鹽州)의 치소로 추정되는 유적이다. 이곳에서는 성벽은 물론 사원지, 지상 건물터, 도로 유구 등이 확인되었으며, 발해인들이 일상생활과 의례에서 사용한 유물이 풍부하게 출토되었다. 크라스키노 발해성 터의 발굴로 말미암아 우리는 발해 지방행정조직과 물자유통망은 물론 일반 민중의 생활 양상까지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물질자료를 확보하게 되었다.

성공적인 경험은 비단 우리와 러시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고구려와 발해가 다스리던 드넓은 영역은 지금 한국과 러시아, 중국 등 서로 다른 국가의 영토로 분할되어 있다. 고구려와 발해 유적이 분포하고 있는 모든 국가에서는 지금도 고구려·발해의 유적과 유물에 대한 조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그것이 보여주는 풍성한 성과는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새로운 자극과 활력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는 물론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이 남겨진, 그리고 이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나라의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지금까지의 경험을 공유할 장이, 나아가 이 분야의 연구가 지향할 미래의 방향을 토론할 장이 절실한 시점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고구려ㆍ발해사 연구의 새 지평을 열다

이번 학술대회에는 우리 재단의 고구려·발해사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 대표단은 물론, 북한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 등 국가에서 고구려·발해 관련 유적을 실제로 조사하였거나, 이들 자료를 바탕으로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학자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이틀에 걸쳐 5개 국가 40여 명의 학자가 참여하여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토의한 이번 학술대회는, 그 규모도 규모지만 고구려·발해 역사에 대해 실질적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국가의 연구자들이 참여한 사상 최초의 학술회의이며, 남·북한 학자가 거의 5년 만에 한 자리에 모인 학술회의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의의를 가진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주제는 크게 보아 세 종류로 구분된다. 첫째는 참여 각국의 고구려·발해사 연구 현황이며, 둘째는 최근의 고고학적 연구 성과를 통해 본 고구려·발해사의 새로운 조명이고, 셋째는 고구려·발해 관련 문헌 연구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점적이며 활발하게 논의된 것은 총평에 나선 정영진(연변대) 교수도 지적하였듯이, 두 번째의 유형에 속하는 것이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북한 평양 인근 옥도리 등에서 발견된 고구려 벽화묘와 크라스키노 발해성 터, 함경북도 부거리 발해성 터, 발해 상경성 유적, 홍준어장 묘지, 한반도 동북부 해안 일대의 발해 무덤 유적, 그리고 콕샤로프카 유적 등에 대한 소개와 연구다. 이들 유적과 출토 유물은 앞으로 고구려·발해사 연구에 새롭고 의미 있는 조망을 가능케 할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이번 학술회의에 참여한 모든 연구자들은 이번 학술회의가 필요한 시점에 적절한 내용으로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그 성과와 의미를 높게 평가하였으며 이와 같은 학술회의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구려와 발해가 우리 민족의 소중한 역사적 자산인 만큼, 우리에게는 고구려와 발해 역사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모든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연구하고 토론하여, 그것을 더욱 높은 차원의 연구로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는 새로운 자료에 대한 다양한 시각의 해석과 검증을 통해 더욱 풍요로우며 소중한 우리 이야기로 거듭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