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연구의 깊이를 심화시켜 가기 위해서는 미진연구 분야에 관한 도전이 필요함은 물론이거니와, 이미 쟁점화되어 있는 부분에 관해서도 새로운 관점으로 성찰하고 재고하여, 우리의 논리를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서는 현재 독도문제 연구에서 가장 중요시되고 있는 논점들을 종래의 문헌비판적인 시각에서 재검토하는 한편, 지명조사 내지는 일본 지역사적 관점에서 접근해 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이러한 시도의 축적을 통해 독도연구의 저변이 확대되고, 그 속에서 객관성과 설득력은 지닌 참신한 논리가 형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본 연구서는 역사학과 지리학 연구자가 주축이 되어 근대 이전의 울릉도와 독도를 한국사와 일본사의 필터를 통해 조망한 결과물이다.
현재 독도 연구에서 중시되는 논점들을 문헌비판적인 시각에서 재검토
김기혁 교수(부산대)의 「조선후기 울릉도의 수토(搜討) 기록에 나타난 부속 도서의 표상 연구」 는 조선 후기 울릉도에서 수토관들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여, 각 장소에서 경험한 내용과 수록 지명을 통해 부속 도서에 대해 형성한 표상을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18세기부터 실시된 정기적인 수토 범위는 해안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나 1882년 이규원의 검찰은 해안 지역뿐만 아니라 육로를 이용해 장기간에 걸쳐 내륙 중심의 지역조사가 수행되었다. 수토 기록의 지명을 분석한 결과 울릉도 연안에 있는 지금의 죽도는 조선시대에 '죽도(竹島)' 혹은 '대도(大島)' 로 불렀음이 확인되었다. 우산도 지명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수토 기록에서의 지명과 섬에 대해 서술한 내용 및 수토 지도를 볼 때, 20리 방안지도를 바탕으로 그려진 지도에서 울릉도 동남쪽에 가장 크게 묘사된 섬이 지금의 죽도이다. 동쪽에 멀리 떨어져 '우산' 지명과 함께 묘사된 섬은 죽도와는 별개의 섬으로 지금의 독도를 그린 것이다.
최은석 교수(주히로시마총영사관 연구원)의 「안용복 사건의 무대 - 17세기 돗토리번과 오키국」 은 17세기 일본에서 안용복 사건 그리고 울릉도·독도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지방 세력을 하나씩 개괄해 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적어도 한국 국내에서 논의가 미진했던 부분을 들자면 당시 일본의 국내 상황과 《죽도 도해면허》 의 사료적 정당성 문제인데, 사실 이것은 17세기의 돗토리번(鳥取藩), 요나고(米子), 오키(隱岐), 그리고 오야(大谷), 무라카와(村川) 가문의 실제와 그들 간의 착종된 관계가 어떤 양상을 보였는가라는 하나의 문제가 빚어낸 두 가지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저 돗토리번의 역사(구니카에)와 그 행정체제·격식에 관해 개관하고, 돗토리번 안에서도 특이한 위치를 부여받고 있던 요나고의 아라오(荒尾) 가문을 살펴보았으며, 울릉도·독도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지역인 오키의 17세기에 대해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안용복 등 조선 어민의 직접적 대립자이자 울릉도 문제를 당시에 부각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으며, 현대 일본의 독도 고유영토론 주장에서도 최대의 근거로 제시되는 오야 가문과 무라카와 가문을 살펴보았다.
윤유숙 연구위원(동북아역사재단)의 「조선문헌 속의 '울릉도·우산도' 기사 검토 소고」 는 현재 한일 양국이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는 주요논점 중 하나인 "한국이 옛날부터 독도를 인식하고 있었는가" 와 관련하여, 조선의 문헌 속에 '울릉도' 와 함께 기재된 '우산도' 를 독도에 비정하는 문제를 검토하였다. 한국은 《세종실록지리지》 , 《신증동국여지승람》 , 《동국문헌비고》 , 《만기요람》 , 《증보문헌비고》 등의 기술을 근거로, 한국이 예로부터 '울릉도' 와 '우산도' 를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우산도가 바로 독도이다' 라는 입장에 서 있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는 몇 가지 점에서 한국 문헌이 지니는 사료적인 신빙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본 연구는 한국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서 주요한 근거로 거론되고 있는 조선 문헌의 기사를 살펴봄으로써, 일본 측은 그것에 관해 어떤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고 또한 그들의 입론이 객관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검토하였다.
임학성 교수(인하대)의 「조선시대 지리서·지도에 내재된 '독도' 영유 인식」 은 현재 독도 영유권 논쟁의 학문적 재료로 사용되고 있는 조선시대의 자료 즉 조선정부 또는 조선의 지식인이 기록하여 편찬한 여러 지리지(地理志)와 지도 자료들을 대상으로 하여 조선정부 및 지식인들의 독도 영유 인식이 어떠하였는지를 살펴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