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방문 배경
"하버드대 교수들이 일본 교과서로 한국을 연구하면 되겠나"
얼마 전 신동아 칼럼에 실린 경희대 인문학과 E. 페스트라이쉬 교수(하버드대 동아시아 언어문명학과 박사)의 말이다. 재단은 하버드대와 벌써 4년 째 깊은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 결과물이 해외로 확산되는 것에 대응하고, 일본의 식민사관으로 왜곡된 서구학계의 한국사 이미지를 시정하는 차원에서 지난 2007년부터 하버드대 한국고대사 연구활동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하버드대에 최초로 한국고대사 연구실이 설립되었고, 한국고대사 및 한국학을 소개하는 웹사이트도 개설되었으며, 한국고대사 강좌도 처음으로 생겼다. 또한 그동안 한국사와 한국고고학의 영문 번역의 한계로 연구성과가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점을 감안, 한국고대사를 전공한 하버드대 출신 M.바잉턴 박사에 의해 서구학자들이 이해하는 언어와 양식으로 'Early Korea' 라는 한국 고대사 시리즈를 출간해 오고 있다. 이번 하버드대 방문은 사업중간평가와 하버드대에서 요청한 재단의 정재정이사장 특강을 위해 추진되었다.
하버드대 방문 일정
작년 12월 1일에서 6일까지 4박 6일간의 일정으로 하버드대를 다녀왔다. 도착한 1일 저녁 보스턴 총영사관 주재 만찬에 초대되어 총영사와 재단 활동에 대한 유익한 대화들을 많이 나눌 수 있었는데, 총영사는 이미 하버드대 한국고대사 프로젝트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특히 재단의 주요 관심사인 동해 표기에 대해 대화할 때는 재단의 든든한 후원자를 만난 것 같았다.
다음날 2일은 이사장 특강과 사업중간평가 회의를 모두 소화해야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을 느끼고 시차 적응할 겨를도 없이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4년 만에 처음 진행되는 중간평가였던 터라 하버드대 측에서도 상당히 열심히 준비한 것 같았다.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역대 소장들, 부소장, 자문위원, 사업책임자, 행정담당, 프로젝트 참여연구원들이 모두 참여하여 사업 진행경과, 성과와 의의에 대해 브리핑하고 토론했다.
회의시간이 길어지면서 이사장 특강 시간이 임박하여 급히 유럽학연구센터 회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학기말 시험기간이라 학생들이 많지 않을 거라 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교수 및 대학생 등 약 50명 이상이 회의장을 가득 채웠다. 특강을 통해 이사장은 우리나라, 일본 및 중국의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역사인식이 서로 달라 갈등과 대립의 우려가 있으며 3국간 공동노력에도 불구하고 역사화해의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하였고, 이에 동아시아의 공영을 위해서는 자국우월주의 및 과도한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역사인식의 다양성 이해 및 공유 등을 통해 역사화해를 추구해야 한다고 하는 재단의 지향점을 강조했다. 여러 교수와 학생들의 많은 질문이 이어졌는데 동아시아 역사 갈등 해소를 위한 미국의 역할을 물었던 미국 교수의 질문이 가장 인상 깊었다. 미국이 한중일 중 어느 입장을 대변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나, 학문적 논리 증거를 토대로 하는 학술회의 등에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갖고 공조해주길 기대한다는 이사장의 답변에 청중들은 공감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특강이 끝나자마자 이사장은 갑자기 보스턴 코리아 기자의 인터뷰를 받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한, 중, 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해외 교민들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통해 재단과 소중한 파트너십을 발견한 것 같았다. 미국의 대학 및 박물관 등 다양한 사이트에 한국사 관련 왜곡을 찾아 주는 것을 요청해도 좋을 듯하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중간평가와 특강, 인터뷰, 자문위원회와의 저녁만찬 등 모든일정이 끝난 뒤, 밤늦도록 한국학연구소 소장으로 부터 향후사업 계획에 대해 들을 때야 비로소 긴장 풀린 피로감이 찾아왔다.
하버드대 주위 답사
셋째 날과 마지막 날은 하버드대 내 도서관과 박물관, 주위 박물관 등 한국사와 관련된 역사유적지를 둘러보게 되었다. 먼저 하버드대 옌칭도서관 한국관을 시찰했다. 무엇보다 한국관을 나오려 할 때 영문표기로 된 한국지도상 '동해' 를 발견했을 땐 무슨 보물을 찾은 것 같이 기뻤다. 하버드대 내에서 더 많은 곳을 보고 싶었지만 최초의 국비유학생으로 미국에서 공부하였다는 한말의 개화운동가 유길준 전시실을 보기 위해 다소 먼 길을 부지런히 이동했다. 세일럼 피바디엑세스 박물관이었다. 1799년 설립돼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으로 동양에서 건너온 도자기, 상아 공예품, 은제품, 비단 등 귀중한 예술품들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 정문으로 들어가면 1층 입구 맞은편에 '한국 전시관' 이 있다. 2003년에 '유길준 전시실' 이 따로 만들어졌는데 미국 역사상 한국 사람의 이름을 딴 최초의 전시실이라고 한다. 이 먼 곳에서 한국의 개화와 근대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모든진열품이 더 소중하게 보였다. 서유견문의 의미를 되새기며보스턴 견문이라도 잘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옆 전시실로 옮겼다. 최초의 미 대륙 정착자들의 삶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그들이 영국에서 타고 온 배의 모조품까지 재현해 놓았다.
거기서 바로 눈에 띄는 것은 서양 고지도였다. Marinetime Hall이라는 곳에 전시된 17세기 네덜란드 고지도에서 동해로 표기한 것을 확인하였다. 이사장도 필자도 답사 일정을 안내한 하버드대 방문학자도 모두 일거양득의 큰 수확을 거둔 것 같은 흡족한 마음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박물관을 나왔을 땐 이미 땅거미가 져 있었다. 이젠 어떤 박물관에 들러도 뭔가 본전을 뽑을 것 같은 기대감에 말로만 듣던 '마녀 사냥' 박물관으로 향했다. 다소 공포스런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지만 스토리텔링 방식을 적용한 체험관은 어린이 어른 모두 역사문화와 금방 친숙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우리도 고구려·발해·고조선 체험관 등을 기획할 때 참고하면 어떨까 상상하다가 전시 패널에서 재미있는 문구를 발견했다. 미국인들이 두려워하는 요소 중에 일본인이 있었다. 이유는 미국을 유일하게 선제공격한 진주만 공격 때문이라고 한다. 문득 한일관계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저녁 숙소로 돌아오는 차안에서는 행여나 잊어버릴까봐 서둘러 메모했다. 하루의 일정을 돌이켜보니 다음날 일정에도 기대가 생겼다.
마지막 날은 메사추세스주를 벗어나 뉴햄프셔주로 이동하기 위해 아침부터 서둘러 출발했다. 그곳에는 보스턴에서 북쪽으로 100km 지점 떨어진 포츠머스가 있기 때문이었다. 러-일 전쟁의 결과 포츠머스 강화회담이 을사조약으로 이어져 주권을 일본에 거의 빼앗기게 된 계기가 된 장소. 미국에서 한국근대사를 재조명한다는 새로운 감회에 잠시 젖을 수 있었다. 하버드대에 찾아오는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 미국 한인들을 대상으로 현장에서 배우는 역사수업 코스라도 만들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멀리까지 온 보람이 있었다고 자평하면서 다시 메사추세스주로 돌아와 우리 세계사 교과서에 나오는 메이플라워호가 정박한 플리머스로 이동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군의 역할과 공로를 소개하고 있는 패널에 한국지도가 있는데 동해로 표기돼 있었다. 미국 기타지역의 한국전쟁 참전 기념물에 한국 소개 내용과 지도가 갑자기 더 궁금해졌다.
상생공영과 평화발전의 이상동몽(異床同夢)을 꿈꾸며
짧지만 알찼던 하버드대 일정을 정리하며 귀국 길에 올랐다. 정리할 내용이 많아서 그런지 15시간 이상의 비행인데도 조금도 길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조선의 현실에 맞는 개화를 계획했던 유길준도 한 번 생각해 보면서, 오늘날 동아시대를살아가는 우리 실정에 맞는 우리의 꿈은 무엇인지 회고해본다. 비록 지금 당면한 동아시아 역사갈등과 영토분쟁 현실속 에 한중일의 '동상이몽' 이 운운되고 있지만, 우리가 우리의 역사의 진실을 찾기 위해, 그리고 널리 알리기 위해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의기투합한다면 언젠가는 상생공영과 평화발전의 이상동몽(異床同夢)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