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부터 최초로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동아시아사 과목이 개설되었고, 동아시아사 교과서로 교학사와 천재교육 출판사의 2종이 검정 통과되어 사용될 예정이다. 이번 호에서는 재단의 김정현 연구위원이 교학사 발간 동아시아사 교과서의 대표 저자인 손승철 강원대 사학과 교수를 만나 동아시아사 과목의 개설 배경과 교과서 편찬 집필의도, 동아시아사 교육의 의미 등에 대해 나눈 대담을 소개한다. _ 편집자 주
김정현: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동아시아사 과목을 개설하여 올해 3월부터 고등학교에서 '동아시아사' 가 선택과목으로 운영된다. 이 과목 개설의 배경과 의도는?
손승철: 동아시아사 과목 개설을 위한 준비는 2006년부터 시작됐다. 2006년 12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이 한창 문제가 되었을 때, 정부에서 역사교육강화 시책의 일환으로 동아시아사 과목을 고등학교 과정에 개설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역사왜곡과 동북공정에 대응해 우리 역사교육을 강화해가면서, 한편으로는 동아시아 국가 간 역사 갈등을 해소하고 나아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는 역사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이 과목이 개설됐다.
그 내용구성과 방법에 대해서는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주관을 하며 준비해왔다. 동아시아사 교육과정 시안을 만들었고, 시안에 따라 교과서 집필 안내서를 발간했다. 그 안내서에 따라서 교재 편찬을 했는데, 그것이 작년에 검정 통과되었고 올 3월부터 일선 고등학교에서 시행하게 된 것이다.
김정현: '동아시아사' 라는 과목은 아무래도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것 같다. 기존의 한국사나 세계사 과목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가?
손승철: 기존의 한국사는 자국중심의 역사, 일국사의 한계를 가지고 있고, 세계사는 세계 각국사를 망라한 백화점식 교육방식으로 한계를 보이고 있다. 또한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사와 세계사를 나누어 가르쳐왔다. 반면 동아시아사는 동아시아 지역세계를 하나의 단위로 보고 바람직한 지역공동체 역사의식을 함양해 나가는 데에 그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김정현: 동아시아사가 외교적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 과목을 통해 이제까지 해소하지 못했던 역사적 문제를 지적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향 제시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손승철: 기본적으로 우리는 역사 갈등이나 영토, 영해 분쟁의 원인을 역사적으로 파악하고자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독도영유권문제를 역사적으로 접근해보기로 하자. 울릉도와 독도는 우산국으로 신라시대부터 한국의 영토였고, 그것이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왜구의 약탈이 잦아지자 울릉도에 거민 쇄출(刷出)이라고 해서 섬을 비워놓고, 무릉등처안무사(武陵等處按撫使), 순심경차관(巡審敬差官), 수토사(搜討使)를 파견하여 관리를 했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인이 울릉도와 독도에 와서 어업활동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빌미가 되어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짚어보면 일본의 주장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일본의 북방영토문제나 센카쿠제도 문제 등의 실체를 역사적으로 접근하다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일본의 속내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당장 해결점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원인을 분석하고 과정을 이해하게 되면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되고, 그것을 통해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별력이 생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동아시아사가 나름대로 역사문제라든지 영토분쟁 문제에 대해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김정현: 교학사 간행 동아시아사 교과서의 주저자인데, 타 출판사 교과서와 무엇이 다르고 어떤 점을 강조하고자 했는지 궁금하다.
손승철: 우리 쪽 집필진은 동아시아 각 국가들이 독자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상호 교류를 하고 관계를 맺어 가면서 지금의 한국, 중국, 일본이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조금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 현재 빚어지고 있는 역사적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를 추구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게 우리 교과서의 지향점이다.
김정현: 편찬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용어나 개념 부분에서 한국과 일본, 중국이 다른 점이 많아 까다로웠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을 이번 교과서에서는 '임진전쟁' 으로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런 용어나 개념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했는가?
손승철: 용어나 개념이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상태여서 어려움이 많았다. 편찬 과정에서 동북아역사재단, 교과부, 교과서 편찬 담당자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용어, 개념 정리가 사전에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무척 아쉬운 부분이다.
임진왜란 같은 경우, 임진전쟁으로 표기한 것은 이번 기회에 보다 학술적으로 정확한 용어를 써야 한다는 집필진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다. 임진전쟁은 1592년부터 7년간 한국, 일본, 중국이 동아시아지역에서 벌인 대 전쟁이었고, 이 전쟁이 지니는 의미를 생각하면 동아시아 국제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는 용어로 표현되어야 했다.
그런데 왜란이란 '왜인의 난' 을 의미하는 용어로 지극히 편협한 용어다. 따라서 7년이나 지속된 동아시아 대전란을 한낱 '왜인의 난동' 의 의미를 가진 왜란으로 표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8명의 필자가 의논을 한 끝에 임진년에 일어난 동아시아 대전쟁이라는 의미로 '임진전쟁' 이라는 용어를 만든 것이다. 동아시아사에 나오는 용어와 개념은 동아시아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한쪽의 입장만 두둔하면 설득력이 없어진다.
김정현: 현재 3월 개학을 앞두고 일선 학교에서 '동아시아' 과목에 대한 반응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특히, 동아시아사 교육과 관련한 많은 문제들, 예를 들어 동아시아사 공간범주에 대한 역사 교과의 인식공유 부족, 한정된 수업시간에 비해 방대한 수업분량, 과목이 낯선 탓에 학생 중심이 아닌 강의식 수업을 선택하게 되는 문제 등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손승철: 동아시아사 과목 개설이 구체화되면서, 2009년부터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교원연수를 개최해 왔다. 처음에는 생소한 과목이어서 걱정들이 많았다. 하지만 실제로 연수과정을 진행하면서, 교사들을 통해 그 우려가 기우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교사들을 통해 들어 본 바로는 학생들이 오히려, 세계사 과목보다도 더 친근하게 느끼고 관심도 많다고 한다.
아마도 중국과 일본이 인접국이라는 사실과, 우리와 문화적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물론 처음 시도하는 과목이라서 시행착오도 많겠지만, 문제점을 잘 보완해 간다면 기존의 한국사나 세계사보다도 더 관심과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기대보다 높은 채택율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데, 두 출판사의 교과서를 총 7만 명 정도가 선택한 것으로 알고 있다.
김정현: 현재 한국사를 전공한 교사들이 앞으로 동아시아사를 가르치게 되는데, 어려움은 없을까? 이와 관련해 앞으로 동아시아사 교육이 대학에서도 교수되고 학습되어야 더욱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대학에서 동아시아사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손승철: 동아시아사라고 해서 지금까지 전혀 없었던 새로운 내용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 과거 한국사 시간, 세계사 시간에 중국사나 일본사가 상당 부분 다뤄져왔다. 다만 시각이 한국사에서는 자국사 중심이었고 세계사에서는 각국사 중심이었다. 동아시아사라는 것은 관계사, 교류사다. 동아시아라는 하나의 큰 틀 속에서 보며 관점을 다르게 한다는 것이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모든 분야에서 거론되고 있는 글로벌화는 역사학 분야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나 학생들의 관심도가 높은 만큼 '동아시아사' 교과목의 장래는 밝다고 본다. 또한 2014년부터 수능과목으로 채택이 되면서 관심도가 더욱 높아져 가리라고 본다. 당연히 대학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사범대학의 역사과 교과과정상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본다.
김정현: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12월 30일 한국사, 세계사, 동아시아사 등 새 고교 역사교과서의 집필기준을 발표했다. 이에 국사교과서와 동아시아사 교과서의 중복문제는 없는지, 집필기준이 또 바뀔 여지는 없는지 궁금하다. 또, 올해 처음 발간된 동아시아사 교과서가 앞으로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손승철: 역사사실이므로 자국사와 중복은 당연하다. 문제는 자국사 중심으로 확대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그것이 동아시아사의 보편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동아시아적인 시야, 관점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인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김정현: 그동안 재단에서도 교육과정 개발, 교원연수, 동아시아사 교육총서 발간 등을 통해 동아시아사 과목의 개설과 교과서 편찬에 상당한 지원과 역할을 해왔다. 향후 재단에 대한 바람이나 요망사항이 있다면?
손승철: 사실 동아시아사 과목이 개설되고 교과서가 만들어지는 데는 재단의 역할이 매우 컸다. 하지만 앞으로 재단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속적인 연구지원과 학습자료 제공이 절실하다.
우선 실제로 올해 3월부터 동아시아사가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현장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현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면서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계속 보완해나가는 시스템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또한 동아시아사가 아직 미완성 과목이기 때문에 계속 개정을 하며 다듬어야 한다. 특히 용어나 개념 정리를 지속적으로 해줘야 한다. 전문가들과 워크샵을 꾸준히 진행하고, 문제점을 개발하고 보완해나가는 용역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그 다음, 학습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돕는 학습 부교재 제작도 필요하다. 보통 부교재를 출판사에 맡기는데 상업적인 차원이 아니라 학문적인 차원에서 재단에서 부교재를 만들어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한국, 중국, 일본, 몽골, 베트남 5개국 학자들로 이뤄진 동아시아 역사학자포럼을 재단에서 운영했으면 좋겠다. 순수하게 동아시아사를 위한 역사학자 포럼을 만들어 쟁점이 아닌 화해와 상생, 협력, 교류를 중심 주제로 이끌어갔으면 한다. 이 부분이 특히 중요한데, 과거의 역사문제나 쟁점에 집중하면 역사대화는 실패하고 만다. 과거청산이 아닌 미래 지향적인 역사대화를 해야 한다. 동아시아사는 바로 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김정현: 좋은 지적 감사하다. 앞으로도 재단이 이 일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 도움 바란다.
손승철
한일관계사를 전공하고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일본 도쿄대,·홋카이도대·규슈대 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강원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로 조선시대 한일관계,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독도 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해오고 있다.
김정현
중국 근현대사를 전공하고 일본의 동경대, 중국의 북경대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하였다. 현재 재단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재단의 동아시아사 교육과정 관련 작업을 담당하고, 재단이 발간한 동아시아사 교과목을 위한 참고자료 『동아시아의 역사 Ⅲ (개항-화해)』 의 집필자로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