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은 21세기정치학회, 제주평화연구원, 부경대학교 국제지역연구소와 공동으로 지난 2월 7일 부경대학교 미래관 3층 비스타홀에서 '변화하는 동북아와 역사인식' 을 주제로 한 학술회의를 열었다. 이번 학술회의는 사회과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이 동북아의 변화와 그 변화의 패턴을 조망해 보고자 마련한 자리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도 변화의 패턴이 있게 마련이고 그 패턴을 읽어내는 것은 일관성 있는 국가의 외교문화정책의 수립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인식의 극적인 변화 속에서
이근우 교수(부경대)는 역사학 측면에서 "변화하는 동북아와 역사인식" 이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했다. 이 교수는 동북아 각국의 관계방식이 갈등과 교류라는 형식을 갖고 있고 특히 갈등구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구도임을 지적하였다. 이런 구도의 변화는 정치상황, 경제력, 군사력의 변화 및 문화적인 격차에 의해서 촉발되는데, 가장 중요한 변화의 요인은 정치상황이라고 설명하였다.
정치상황의 변화는 사회모순의 증대, 기후의 변화, 군사력의 변화에 수반되는 경우가 많았고, 근대 이후 영토 확장 논리가 가세하였다. 또한 국내통일, 산업 발달 등으로 경제력이 변화하면 그것이 군사력의 증대로 연결되어 세력 불균형을 초래한다. 근대 이후에는 경제력이 군사력으로 전환되는 속도가 급속하게 빨라졌다. 그리고 문화적인 격차는 전란을 초래하거나 지배 종속 관계를 만들어 낸다. 근대 일본은 서양문물을 수용하여 조선에 막대한 문화적 영향을 끼쳤다.
한편, 이 교수는 역사인식의 극적인 변화의 사례로 단군 인식을 들었다. 전통시대의 단군은 기자에 비해 부차적인 인물로 간주되었고, 단군에 대한 강조는 매우 근대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단군신화에 대한 강조는 동아시아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시대 분위기에 역행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한국 내에서 다문화가정이 증가하는 점에 비추어 봐도 단선적인 민족기원론 대신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성공을 거둔 사회라는 다원적 기원설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의견과 함께 반대 의견도 제기되었다. 중국과의 외교관계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전통시대에 한국이든 중국이든 기자를 강조했지만, 단군인식이 근대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단군에 대한 강조가 다원적 기원설과 반드시 모순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었다.
돌고래의 외교정책을 찾아서
이성우 연구원(제주평화연구원)은 정치학 측면에서 "변화하는 동북아 질서와 한국의 대외정책 전망" 을 발표했다. 이연구원은 현실주의적 입장과 세력전이론의 입장을 비판하는 최근의 추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규범이 주식회사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동아시아는 중국, 일본, 한국과 아세안의 개발도상국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세계최대의 경제성장벨트이다.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는 주식회사 주주들 사이의 주도권 경쟁구도일 것이므로, 한국의 대응책은 한국 지분을 확대하는 방안 모색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일관성 있는 시각과 평가가 필요하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백승주 안보전략연구센터장(국방연구원)은 동북아 질서를 패권적 차원이 아니라 주식회사의 주주이익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관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어떤 이론으로 보든 '중국과 미국의 대결 구도' 가 더욱 선명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다른 토론자는 남북관계를 돌파하지 않고서는 한미, 한중 관계도 나아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패권국가 아래 줄타기 외교를 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한인택 연구원(제주평화연구원)은 동북아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한국의 부상인데 이점이 저평가되었음을 비판하였다. 한국은 고래 싸움에 등터지는 새우가 아니라 적어도 돌고래 정도는 되므로 돌고래 외교전략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경제를 주주총회 모델의 지분으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안보문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지분이 0.1%라고 해서 역할이 반드시 미약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외교는 테크닉이 아니라 아트(Art)
또 다른 발표자인 이희옥 교수(성균관대)는 "동북아에서의 미중 중첩구도의 성격: 김정일 사망 이후 동북아 국제질서" 에서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동북아는 기존의 패권국인 미국과 새로운 도전국인 중국이 안보적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변용될 것이다. 이제 중첩의 구도가 상황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으로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중국은 구조를 깨기보다는 지분을 늘릴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아직 중국의 매력이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김정일 사망 이후 중국은 북한에 신속하게 접근했다. 중국이 북한을 끌어안게 된 배경은 동북아 국제환경이라는 구조적인 맥락이 있다. 중국은 동아시아로 회귀하는 미국의 전략을 우려하면서 러시아의 푸틴을 명확히 지지하고 김정은 체제를 신속하게 지원했다. 이교수는 이런 맥락에서 북한이 위훈통치와 선군정치만을 가지고는 상황을 타개할 나갈 수 없다고 보고 선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개혁과 개방으로 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한미와 한중 관계는 대체해야 하는 관계가 아니며 동태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와 함께 남북관계의 현대화와 평화정착이 외교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이교수는 한국외교의 방향이 남북관계와 지역주의에 동시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학제간 토론의 가능성에 대하여
공동학술회의에서는 구조적 요인에 주목하면서도 패턴과 행위자를 강조하는 관점이 강조되었다. 한국의 정체성과 합당한 국제적 위치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루어졌다. 학제간 토론은 다양한 관점을 엿볼 수 있게 하지만 개념과 접근 방법의 차이로 인해 지속적인 소통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이번 공동학술회의는 작지만 알찬 학제간 토론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고, 이와 관련해서 조금 더 밀도 있는 학술작업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