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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대지진 1년, 일본은 어디로 가려는가?
  • 김민규 역사연구실 연구위원

1. 그토록 처참·처절하고 거룩하지 못한 어두운 밤을 경험하기는 처음이었다. 거북이 차량으로 꽉 막힌 혼고(本鄕) 도쿄대 앞 인도는 정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흰 헬멧에 흰 마스크를 쓴 남녀 직장인들의 구둣발로 완전히 점령당해 있었다. 모골이 계속 송연했던 건 새파랗게 질려있는 다름 아닌 그들의 죽은 표정 때문이었다. 이렇게 수많은 인간이 있건만 단 한 사람의 속삭임조차 들리지 않았던 것은 내 공포심을 배가시키기에 충분했다. 좌우로 나뉘어 같은 방향으로 일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그들은 거대한 무덤 속으로 무한정 빨려 들어가는 괴기영화의 주인공들이었다. (2011.3.11)

 

쓰나미가 할퀸자국(센다이)쓰나미가 할퀸자국(센다이)

2. "차 밖으로 나가시는 건 안 좋을 듯싶으니 그냥 차 안에서 쓰나미 피해지역을 삥 둘러보시는 게 낫겠습니다." "저쪽에 차량 수 십대가 뒤엉켜 있고 또 그 엉킨 차량 위로 올라앉아 있는 게 보이죠? 바로 저곳이 기린 맥주공장인데요. 그 질서정연하기로 소문난 일본인들도 마실 물이 없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저곳을 털었답니다." "이곳은 그래도 언젠가는 정리가 되겠지요. 그런데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한 후쿠시마(福島)는 앞으로 어찌 될지 아마 조물주도 모를 겁니다." 토호쿠(東北)지방 최대의 도시인 센다이(仙臺)시의 진흙이 채 걷히진 않아 회색빛을 띤 텅 빈 공항은 악귀가 훑고 간 바로 그 괴기영화 속 유령도시의 한 편영이었다.(2011.4.28)

 

야스쿠니신사의 봄제사야스쿠니신사의 봄제사

3. 일본사의 전개를 다음처럼 담대하게 난도질해 본다. 7세기 중후반 한반도의 극적 변동으로 지식인 집단이 대거 일본열도로 건너가 그곳 고대국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고 일본인들은 그를 열도의 '기본 틀' 로 만드는 계기로 삼았다[제1차 도약의 시작]. 내적 '성장통' 으로 혼란을 겪고 있던 일본에 크리스천 '난반(南蠻)문화' 가 전래되어 꽃망울을 틔우고, 임진전쟁에서 약탈하고 통신사가 전해준 '조선 문화' 가 밑거름돼 은(銀)을 물질로 또 다이묘(大名)와 그 가족들을 인질삼아 에도(江戶)를 꽃피운다[제2차 도약]. 존왕양이(尊王攘夷)는 구호 뿐! 흑선(黑船) 페리 함대에 단 한 발의 포탄도 못 쏜 채 개국! 구미의 뭇 선생들을 비싼 봉급으로 초빙해 소위 문명개화하고, 부국강병·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캐치프레이즈로 청일전쟁 → 러일전쟁 → 한국강제병합![제3차 도약? 제1차 멸망의 시작?] 그 다음엔 조선을 세로로 가르는 열차에 위안부의 피눈물을 싣고 북쪽의 대륙으로 또 동남아의 섬나라로 침략이다, 아니다 '해방' 이다. 히로시마 또 나가사키의 핵폭탄 검버섯 운우(雲雨)로, 아~ 천대만손(千代萬孫)이라던 천황의 신격(神格)이 인격(人格)으로, 大일본제국은 결국 그냥 일본국으로 화(化)![제1차 멸망의 종식? 제4차 도약의 시작?]

 

4. 미국 유학시절 LA폭동(1992.4~5월)과 대지진(1994.1.17)으로 연옥을 경험했다면, 이번 대지진과 거대 쓰나미의 목도는 지옥 그 자체! "그때 닷새정도 잠을 못자 무엇을 어떻게 조언했는지 기억에 없습니다."(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2012.2.15), "제가 문과 출신이라서 실무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당시 원자력안전보안원 원장, 2012.2.15) 이런 사람들한테 목숨을 맡긴 가엾은 일본 민초들! 매너리즘에 빠진 일본은 지금 그 지옥을 코앞에 두고 일 년 내내 고민만 죽어라(하는 척?)하고 있다. 바로 그 지옥이 자연(=신?)과 인간의 합작품이기 때문이며, 또 원체 그 정체가 불분명한 천황의 존재가 그러하듯, 일본인들의 기괴한 '논리'를 굳이 헤아려보자면 어느(=신?) 누가(=인간?) 책임을 져야하는지가 애매모호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리라.

 

우익들의 데모우익들의 데모

5. "4년 내에 대지진(M7 이상)이 수도권에서 발생할 확률은 70%로 엄청 위험합니다."(도쿄대학 지진연구소, 2012.1.30) "실은 5년 내에 28%입니다."(교토대학 방재연구소, 2012.1.31) 허허~ 이것 참.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어떤 딴쓰를 춘다? 하기야 딴쓰 여부는 오직 하늘, 아니 땅에 달려있으니 예측이 안 맞은들 수원수구(誰怨誰咎)하리오만은. "지진 및 쓰나미 피해를 입은 지역을 재활키 위해 오늘 드디어 부흥청(復興廳)이 출범합니다." (노다 총리, 재난 발생 11개월 후인 2.10) 이게 달팽이 정부지, 정말 '도죠(=미꾸라지) 정부' 맞나? "천황폐하께서는 심장의 관동맥 수술을 받으시기 위해 이번 주말 동경대학병원에 입원하십니다."(NHK, 2012.2.11) 어? 그런데 이 와중에도, "총리는 다케시마를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왜 확실하게 말을 못하는가? 어째서 불법점거라는 용어 사용을 계속 회피하고 있는가?" (김포에서 쫓겨났던 자민당의원 '다케시마-위안부-야스쿠니 아줌마' 이나다 토모미[稻田朋美]의 대정부질의, 2012.2.11)

 

탈원전 데모탈원전 데모

6. 출국 전 야심차게 세웠던 계획은 일본 도착 10여일 만에 조우한 원자력발전소 폭발로 한순간에 사라져 '방사능化' ! 21세기 버전의 유랑생활(?)을 하느라 잃은 것도 많았지만, 형이상학적 이득은 손실을 월등히 능가하는 귀중한 것이었음을 밝힌다. 불행의 당사자들께는 진심으로 미안하지만! 각설하고, 걱정인건 향후 일본의 오리엔테이션! 이제 막 '이신(維新)의 8대 공약'을 내건 '하시즘' 의 일본은 대체 어디로 향하려는 것인가?[제5차 도약의 시작? 제2차 멸망의 시작?] 아~ 오타쿠(御宅) 일본인들이여~! 이웃 한국을 본받아 밑으로부터의 '민주혁명'이라도 화끈하게 한 번 일으켜 보심은 어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