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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012년 한일 관계를 전망하다
  • 박기갑 | 고려대학교 교수, 대한국제법학회 회장, 유엔 국제법위원회 위원

2012년 봄 한국과 일본의 표면적 관계는 매우 좋아 보인다. K-POP과 드라마 등 한류 열풍도 여전하고, 작년 3월 11일 대지진 후 한국 국민이 보여준 따뜻한 성원에 일본 여론들은 고마움을 나타낸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대폭 감소한 한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후쿠오카 근처에 제주도 올레길과 같은 산책로가 선을 보였다. 국제정치적으로도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감행할 지도 모르는 불장난에 한일 양국이 공동대처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한가롭게 물 위에 떠있는 오리의 물갈퀴는 쉬지 않고 움직이듯 한일 양국관계의 속내는 일본군 '위안부', 원폭 피해자, 동해 지명 표기문제, 독도문제 및 일본 교과서 문제 등의 현안문제로 긴장의 연속이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한일 정상회담에 이어 3·1절 축사에서도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에 관해서 일본정부의 납득할 만한 대책을 다시 한 번 강하게 촉구하였다. 한일간 현안문제들은 넓은 의미에서 과거사 문제로 귀결된다. 국민의 대다수도 양국간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로서 과거사 문제를 꼽고 있다. 즉 일본정부가 20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자행한 한반도 침략행위와 그로 인해 파생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솔직하게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이는 유대인 학살과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책임에 대해 늘 사과하는 독일정부와는 상반된다.

전쟁범죄와 국제인권 차원에서 전방위 대응이 필요

그러면 상기 다양한 현안들에 대한 일괄적인 대응책은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각각의 현안은 그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개별 맞춤식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일본군'위안부'와 원폭피해자 문제는 90년대 초부터 제기되었고, 작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또다시 부각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 의해 성노예로 전락했던 일본군'위안부'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피해자들이 낸 헌법소원 청구사건에서 청구인들의 대일 배상청구권이 1965년 청구권 협정에 의해 소멸되었는지 여부와 관련된 한일간 해석상 분쟁을"동 협정 제3조(분쟁해결)의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않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의 부작위는 위헌"이라고 확인하였다. 그에 따라 외교통상부는 일본정부 측에 재협상 개시를 수차례 요청하고 있고,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서서 강경발언을 하였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 왜냐하면 일본정부는 모든 문제는 이미 법적으로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만일 한국정부와의 협상에 응할 경우 동남아, 유럽 등 다른 나라의 일본군'위안부'역시 다시 떠안아야 한다는 부담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정부의 입장과 정책 변경을 유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한일 양자 관계에 의존하기 보다는 전쟁범죄 처벌과 국제인권 보호에 민감한 주변국과 미국 등 서방국가들을 움직여 국제여론을 통한 전방위적인 압박이 필요하다고 본다.

동해/일본해 지명의 병기 등도 하나의 해결책

동해 지명 표기문제는 독도 영유권 문제와 관련된 듯 보이지만 분명히 다르다. 다시 말해서 독도와 다케시마는 결코 동시에 그리고 함께 존재할 수 없지만, 동해/일본해 지명의 병기는 분쟁의 해결책으로 타협가능하기 때문이다. 해역 명칭에 관한 한 이해당사국들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서로 다른 명칭을 병기함이 국제사회의 권고사항이며, 한국은 일본의 불법강점기 동안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는 점 등이 부각되어야 할 것이다. 그 동안의 학계와 외교계의 다각적인 노력이 가시적인 결실을 맺고 있기 때문에 향후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독도 영유권문제를 잠시 언급하고자 한다. 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일본의 부당한 독도 영유권 주장 중 일본 중등 교과서에 실린 독도에 대한 왜곡된 내용 기술을 가장 심각하다고 여긴다. 이외에도 일본정부 고위 인사의 독도 관련 망언과 일본 지자체의 이른바'다케시마의 날' 지정 및 연례행사 실시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일본 교과서에 실린 독도 관련 왜곡 내용은 현재 진행형일 뿐만 아니라 향후 한일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들 뇌관과도 같다. 일본의 젊은 세대들 중에는 잘못된 교육방식으로 인하여 왜곡된 역사관을 갖는 보수 민족주의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바로 이 점이 한국 등 일본의 주변국들이 우려하는 바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자신의 교육방식은 국내문제이므로 이에 간섭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자기 입맛대로 각색함은 국제사회, 특히 동북아 지역의 선린우호관계를 해치는 행위이다.

2012년 안에 위에서 언급한 모든 한일 현안문제가 일본정부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로 모두 다 잘 해결되리라는 기대는 꿈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특히, 현재 일본 내 정치 리더십 부재현상에다 작년 3월 11일 동북부 대지진 이후 국내여론의 보수 우경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음을 지켜볼 때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꿈을 잃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꿈을 소중하게 가꾸고 실현시킬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