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부터 '동아시아사' 라는 과목을 가르치게 되었다. 기존의 한국사-세계사 구도에 익숙해진 입장에서는 매우 낯설게 여겨지는 과목이다. 걱정스러워하던 참에 마침 방학을 맞아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개설한 '동아시아사 교원연수' 과정에 당첨이 되어 좋은 강의를 들었고, 운 좋게도 중국 상해와 남경을 방문하는 '동아시아사 교원 현장연수' 까지 참가할 수 있었다.
상해에서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하는 중국을 보다
첫날 저녁, 수교 이후 한·중 관계에 대한 강의에서 중국의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는 한국과 관련된 내용이 거의 없고 우리가 민감하게 여기는 고구려 역사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사에서 중요하게 다룰 내용도 아닌데 양국 간에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을 굳이 교과서에까지 담을 필요는 없다는 중국인들의 실용주의적인 입장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왜구, 메이지유신, 항일전쟁 등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서술하고 있단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동아시아 중심국의 위치를 일본에 빼앗겼다는 박탈감 때문인 걸까? 어쨌든 양쪽 다 동아시아사적인 관점은 아닌 것 같다. 상해에서는 복단대학부속중학교를 방문하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중국에서 엘리트층에 속하는 이 학교 학생들이 1년에 한달 이상 낙후된 농촌 지역에 가서 그 곳 주민들과 함께 지내는 체험학습을 의무적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사회에서 혜택 받은 자로서의 책임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우리 교육현실이 슬그머니 밀어내 버린 공동체의식을 돌아보게 하였다. 이 학교는 교육과정에서 특별히 역사를 중요하게 여긴다거나 동아시아사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갖는 것 같지는 않았다.
상해에 도착한 후 내내 꾸물거리던 하늘에서 결국은 비가 쏟아진다. 그렇다고 유명한 상해의 야경을 포기할 수 없어 두 분 선생님과 함께 택시를 타고 와이탄으로 갔다. 황포강을 끼고 있는 와이탄은 1850년대 이후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조차지였던 곳이다. 이곳에서 제국주의 열강들은 중국 시장에서의 이익을 다투며 각축을 벌였다. 지금 보고 있는 건물들이 그 경쟁의 산물이다. 상해는 이미 1920년대에 세계 5대 도시에 꼽힐 만큼 성장했지만 대다수의 중국인들은 '중국인과 개는 입장금지' 라는 표지판처럼 무시당했다. 생각해보면 중국인만이 아니었다. 제국주의자들은 아시아인을 모두 무시했다. 일본도 러일전쟁 승리 이후에는 자신이 아시아인이 아닌 것처럼 중국인과 한국인을 무시하였고. 우리도 청일전쟁 이후에는 중국인을 무시하며 일본인을 경원시하였다. 우리는 지난 100여 년간 서로를 그렇게 보아 왔다. 중국이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하는 지금 서로의 시선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학생들에게 동아시아사를 가르친다는 건 막연한 편견과 선입견을 걷어내고 서로를 객관적으로 보고, 이웃으로 존중하는 미래지향적인 관계여야 하지 않을까.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는 글귀를 보며 동아시아사의 의미를 생각하다
남경에서는 남경사범대부속중학교를 방문하였다. 이 학교는 1930년대 남경에 있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자녀에게 특별히 입학을 허가해 주었던 학교로, 남경대학살의 비극을 딛고 '역사를 기억하고 미래를 바라보자' 라는 슬로건 아래 <동아시아평화교육>교과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의 동아시아사 과목도 교실 수업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들의 평화교류활동 등과 연계하여 보다 실천적인 과목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는 남경대학살기념관을 돌아보았다. 아무리 전쟁이고 적이라지만 어찌 인간이 인간에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었다. 이런 사실을 앞에 두고도 일본은 학살을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하더라도 규모를 줄이려는 교과서 서술을 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남경대학살을 '적수공권' 인 민중을 무참하게 살해한 일본군의 잔혹행위로 표현하여, 전쟁의 야만성을, 또 전쟁이 일본군인의 인간성을 파괴하여 반인륜적인 행위를 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려는 목적에서 교과서에 실었다고 한다.
전시관에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고 붙여놓은 글귀를 보면서 이 불행했던 기억을 딛고 미래 세대에게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이것이 동아시아사의 시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동아시아사 교과서는 일본의 가해와 침략 사실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정권과 일본의 민중을 구분하여 일본 민중 역시 제국주의 전쟁의 피해자임을 서술하고 있다. 가해-피해의 단선적인 구도를 넘어서 동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객관적인 시각을 가졌기에 가능한 서술이라고 생각된다.
동아시아사 교육을 통해 동아시아의 공통점을 바라볼 수 있기를
동아시아 각국 사이에는 각각 역사적 사실과 해석을 둘러싸고 몇 가지 쟁점이 존재한다. 동아시아사 교육과정에서 이 쟁점을 어떻게 잘 풀어서 가르치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각국이 이웃하여 지내온 오랜 세월동안 어떤 문화와 전통을 형성했으며 그것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그러나 그 이외의 지역과 비교해 볼 때 어떠한 공통점을 보이는지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우리는 동아시아 지역에 살기 때문에 공통점 보다는 차이점이 더 먼저, 더 크게 보인다. 그러나 저 높이 하늘에 올라가 동아시아 전체를 굽어본다면 작은 차이보다는 전체를 아우르는 공통점이 더 잘 보이지 않겠는가? 동아시아사 교육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