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이 서구학계에 한국사(고구려사)를 알리기 위해 지난 2007년 시작한 한국사 알리기 프로그램인 'Early Korea Project' (이하 EKP)가 올해로 5년째를 맞았다. 지난 2007년 시작 이래, 많은 성과를 내왔던 EKP 프로그램에 대해 이 프로그램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하버드대 마크 바잉턴(Mark Byington) 박사와 프로그램 기획의도, 현재까지의 성과 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본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되었으며, 독자의 편의를 위해 대화체로 재구성 하였다. _ 편집자 주
지난 2007년부터 지금까지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에서 진행된 한국사 알리기 프로그램인 'Early Korea Project' (이하 EKP)가 벌써 5년차가 되었습니다. 미국인 학자로서 EKP를 기획하게 된 배경과 목적은 무엇인가요?
EKP는 한국고대사를 영어로 다룬 경우가 부재하다시피 한 서구 학계의 심각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2006년 이전까지 존재했던 기존 영문 간행물들은 오래되거나 편향된 연구(대다수가 1945년 이전 일본인이 진행한 연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대부분 시대에 뒤떨어진 경우가 많았고, 한국인의 연구 내용의 번역물인 경우에는 번역 수준이 낮거나 적절한 문맥이 제공되지 않아 제기된 논지를 서양 독자들이 따라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즉, 2006년 당시 영어로 된 한국 고대사와 고고학 연구는 지극히 미흡한 상태였습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기존의 간행물들은 부적절했고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소지도 많았습니다. 2003년에 시작된 고구려 역사 논쟁은 영어로 된 한국 고대사의 인식 증진이 필요함을 단적으로 보여 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5년 저의 주도 아래 하버드대에서 개최 된 고구려 역사 및 고고학에 관한 국제회의를 통해 6개국 출신의 여러 학자들의 발제가 진행된 적이 있는데, 본 행사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한국 고대사 및 고고학의 영어 연구 발전을 위한 노력의 때가 무르익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06년에는 한국과 북미 등지의 학자들이 한 데 모여 한국 고대사, 고고학과 관련하여 선정된 주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세심한 준비를 거친 워크샵 프로그램을 기획하였습니다. 이 워크샵의 결과 제작된 영문 서적들은 한국고대사 영어 연구를 위한 견고한 기반을 착실히 쌓아갈 것으로 기대됩니다. 정리해서 말씀드리자면 EKP 기획의 목적은 서구에서 발전이 미흡했던 고대한국학의 연구 수준을 최소한 영어권에서의 고대 중국/일본학 연구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사님의 전공이 부여사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당히 독특한데 부여사를 전공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미국 내 한국고대사를 전공한 연구자들의 현황과 연구활동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1980년대 후반부터 고구려 역사와 고고학 분야가 저의 주 관심사였습니다. 하버드대 대학원 재학 시절 몇 년간 연구를 진행한 적도 있고요. 당시 석사 학위 논문 주제는 '고구려' 였고 박사 학위 논문 역시'고구려'에 관한 것으로 할 계획이었습니다만, 중국 동북부 지역에서 현장 조사를 하던 1990년대 중반 당시에 고구려의 역사 계승에 관해 중국과 한국 사이에 분쟁이 커지고 있던 관계로 고구려 유적지를 방문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고구려 유적지를 방문하지 않고서는 조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없었던 터라 아예 연구 주제를 '부여' 로 바꾸기로 한 것이지요. 부여는 고고학적 가치도 충분했고 유적지 방문도 수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여는 거의 연구가 되지 않은 지역이었으니, 부여로 전공을 바꾼 것은 무척이나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질문하신 미국 내 한국고대사 전공 연구자들의 현황을 보자면 고대 한국학은 새롭게 성장하고 있으며 전망이 가장 밝은 분야에 속합니다. 현재 고대 한국 관련 분야를 중심으로 활발히 연구 중인 박사학위 소지자는 4명에 불과합니다만, 북미 지역의 다양한 대학교에 고대한국학(대부분 고고학) 전공 대학원생들이 여러 명 있고 다양한 단계의 고대 한국학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부생과 대학원생도 많이 있습니다.
그동안 진행되었던 워크숍의 주제 및 내용 등을 설명해 주시죠.
EKP의 방향을 제시하는 운영위원회는 고대 한국을 중심으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는 북미 지역 4인의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매년 4차례의 회의를 개최, 고대 한국학의 다양한 분야를 영어로 가장 효과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서구의 연구 상황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워크샵 주제를 선정하는 것이지요. 주로 영어로 크게 잘못 소개된 주제라거나, 서구학계에서 주로 관심을 갖는 학문적 주제를 바탕으로 서구학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가 선정됩니다. 지난 2008년 진행된 제1회 워크샵 시리즈의 주제는 '한사군 시대의 한국사' 였는데, 선정 이유는 그 동안 영어권에서는 크게 왜곡된 분야였고 한국의 연구수준이 이제는 이 민감한 주제를 서구학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발전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제1회 워크샵 자료집은 올해 발간될 예정인데, 영어권에서 그 동안 크게 오해되고 잘못 인식된 분야를 바로잡는 데 큰 가치가 있으리라 봅니다. 이어진 제2회 워크샵 시리즈의 주제는 '신라 중후기의 치국책' 이었습니다. 이 주제 선정 이유는 고대 중국이나 고대 일본에 관해서는 비슷한 주제가 다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고대 한국에 대해서는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2회 워크샵 자료집은 현재 북미 지역에서 높은 판매 부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대학교 교재로 채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010년에는 두 차례 워크샵을 개최하였습니다. 주제는 각각 '고대한일교류' , '고구려와수(隋), 당(唐) 관계' 였습니다. 인접국가와의 고대 한국 관계라는 중요한 주제로서 각 워크샵 자료집에는 그 동안 영어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이들 두 가지 주제에 대한 최신 연구결과가 망라될 예정입니다. 2011년에는'고대 한국의 실크로드 유리(Silk Road glass in early Korea)'를 주제로 워크샵을 개최했는데, 고대 한국의 물물 교환을 다룸으로써 한국이 동아시아 뿐 아니라 동반구 대부분 지역을 아우르는 역동적인 지역간 교류망에 활발히 참여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한국이 진보된 과학적 방법을 효과적으로 활용, 고대 교역망 개발에 기여했음도 살펴보았지요. 그리고 앞서 설명한 워크샵 이외에도 EKP에서는 3개의 워크샵으로 구성된 시리즈를 기획했는데, 한국 고고학의 최신 현황 발표를 목적으로 하는 이 워크샵이 고대 한국학 영어 연구 지속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데 귀중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가 큽니다.
EKP에서 출판된 단행본은 어떤 기준을 거쳐 주제가 선정되고 그 후 절차는 어떻게 되나요?
EKP에서는 비정기 간행물 시리즈(EKP Occasional Series)를 통해 주로 워크샵 성과물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우선 EKP 운영위원회에서 워크샵 성과물이 서구 학구에 직접적으로 유용한지, 해당 주제를 발표할 수 있는 학자가 한국이나 다른 지역에 있는지, 워크샵에 참가 가능한 서구학자가 있는지 등을 고려해 주제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역사적 시간 순서에 따른 서적 간행이나 한국에서의 인기에 따른 주제 선정은 지양하고 있습니다. 주제가 선정되면 운영위원회에서는 한국어로 발표된 연구 성과를 조사하여 워크샵 참가 대상을 파악합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관계자들로부터 조언을 구하기도 하는데, 각 참가자들의 상호 협력 능력 등을 신중히 검토한 후 워크샵에 초청합니다.
하버드대 내 최초 개설된 한국고대사 강좌에서는 주로 어떤 내용을 다루셨나요? 학생들의 반응과 미국학계 내 한국고대사 강좌 개설 현황은 어떤가요?
저는 하버드대 내 개설된 고대 한국학 두 개 과목을 가르친 바 있습니다. 입문강좌와 학생들이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기본 자료를 읽는 강독 강좌였습니다. 신규 과목 치고는 수강 신청이 많이 이루어진 편이어서 과목당 평균 학생 수가 5명 정도였는데, 수강생들의 출신배경과 수강 신청 이유도 다양했습니다. 두 과목 모두 한국 고대사를 개관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학문적 토론의 쟁점들을 살펴보도록 유도했고 수강생 전원이 토론 수업에 활발히 참여했는데, 두 과목 모두 수료 후 최고 평점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강좌를 개설한 결과 현재 2명의 학생(학부생 1명, 대학원생 1명)이 한국 고대사를 주제로 한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고대 한국학 자체에 관심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고대 한국학이 넓은 학문 분야의 일부로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고대 한국학에 학생들이 관심이 있음을 확인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과목들은 북미 지역에 개설된 유일의 한국고대사 과목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EKP의 활동이 적지 않게 축적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활용하고 배포하고 홍보 선전할 수 있을지 계획은 세우신 것이 있으신가요?
EKP 사업의 성과는 다음 두 가지 시리즈 중 하나에 발표되고 있습니다. Early Korea 시리즈는 고대 한국학의 주요 문제들을 입문 수준에 가깝게 다루고 있으며 EKP 사업의 일환으로 하버드대에 개설된 강의 일부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EKP 비정기 간행물 시리즈는 워크샵 성과를 발표하는 주요 매체입니다. EKP에서는 북미 지역의 학술 동향도 조사하여 본 사업의 간행물에 가장 관심이 높을 만한 기관과 개인을 파악한 후 이들이 간행물을 받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간행물은 하버드대 한국학 연구소에서 출판되지만 배포는 동아시아학에 폭 넓은 배급망을 보유한 하와이 대학교 출판부에서 맡고 있는데, 우리의 목표는 장기적으로 고대한국학의 여러 주제에 관심이 있고 이를 활용할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의 간행물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서구학계에 한국의 고구려사와 고대사 인식 확산을 담당하고 있는 연구책임자로서의 박사님의 연구현황과 앞으로의 각오 등을 말씀해 주십시오.
우선 고구려에 관한 제 개인연구와 발표 활동은 시간이 있을 때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2005년 하버드에서 개최된 고구려 학술회의의 결과로 탄생한 "고구려 역사와 고고학" 이라는 복수 저자의 방대한 저작물의 편집을 담당하고 있는데 올해 안에 이 작업이 완료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고구려 및 고대 한국사를 서구에 소개함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과제는 먼저 기본 자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고구려에 관한 자료를 영문으로 발표하는 것과 별개로 이것이 성공을 거두려면 한국 고대사의 틀 안에서 고구려의 위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국 고대사에 관한 전체적인 자료가 영문으로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구려 및 관련 분야연구를 20년 이상 진행해 온 저의 희망사항은 고대 한국학이 서구 학계의 동아시아학 프로그램 가운데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간단하지만은 않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EKP의 성공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 앞으로도 저의 최선을 다해나갈 생각입니다.
하버드대에 라이샤워나 페어뱅크 센터와 같은 한국학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구가 설립될 수 있다고 보시는지,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를 위해 필요한 재단과 정부의 노력은 무엇일까요?
한국학연구소는 하버드대의 유일한 한국학 연구기관으로서 하버드대 내 한국학의 모든 발전은 한국학연구소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한국학연구소는 다른 연구소들에 비해 재정과 인력 지원이 미흡한 것이 사실입니다. 재단과 한국 정부가 한국학연구소와 그 곳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사업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다면 하버드대에서의 한국학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최근 EKP에서 발행된 단행본에 대한 서평이 국제저널에 실림으로써 국제학계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는데 앞으로도 한국고대사에 대한 왜곡과 오류를 시정하는 역할을 활발히 해주시길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버드대 한국고대사 연구지원사업 책임자로서 재단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EKP와 그 사명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동북아역사재단에 항상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던 한 분야 전체를 소개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EKP의 특수성 때문에 EKP의 운영 방식에 대해서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을 줄로 압니다. 우리의 변함없는 목표는 한국 고대사와 고고학 연구를 소개하고 발전시키되 한국 최고의 연구성과를 소개함과 더불어 서양학자들이 최대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구축 중인 기반에 부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국사에 관한 한국 학자들의 견해와 인식을 서양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한국 학자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갔으면 합니다. 한국과 서양학자들의 교류 및 대화의 증진은 역사관 관련 인식을 촉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올해의 주안점 중 하나는 EKP와 그 사명을 계속해 나가기 위한 지원을 확보하는 문제입니다. EKP 활동의 다음 단계까지 재단의 계속적인 지원과 더불어 공동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함께 협력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크 바잉턴(Mark Byington)
하버드대 석ㆍ박사 과정에서 동아시아 언어와 문화를 배우면서 한국 고대사 중 고구려ㆍ부여 역사와 문화를 전공하였고, 현재 하버드대 한국고대사 연구실 실장으로 재임하면서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지원하는 'Early Korea Project' 를 진행해오고 있다. 영어권에 한국고대사 및 고고학의 발전된 연구성과를 소개하고, 북미에서 최초로 고구려 컨퍼런스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주로 한국고대사와 고고학, 특히 초기 고구려에 중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고 곧 부여 국가의 역사, 민족, 유물에 대한 내용으로 박사논문이 출판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