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시기 러시아는 한국의 전체적인 상황을 개괄하는 수준에서, 한국에 대한 사실적인 자료들을 축적하였다. 그 결과의 대표적인 저서가 외교관 포지오의 『한국개관』 , 러시아 재무부의 『한국지』 , 동방학자 뀨네르의 『한국개관』 등이었다.
뀨네르가 러시아에서 뛰어난 동방학자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한국개관(ОчеркъКореи)』 은 러시아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분석되지 못했다. 『한국개관』 은 한국의 지리와 경제상황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했지만, 일본의 한국 식민지 과정을 서술했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했다. 1910년 한국이 극동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뀨네르의 한국개관도 오랫동안 잊혀졌다.
20세기 초반 한국의 실상을 집대성
뀨네르(Н.В. Кюнер)는 1877년 러시아 뜨빌리시(Тбилиси)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0년 뻬쩨르부르크 대학 동방학부를 졸업했다. 그는 1902년부터 1920년까지 블라디보스톡 동방학연구소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1925년부터 레닌그라드 대학 교수, 1932년부터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민속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수행했다. 그는 1955년 레닌그라드(오늘날 뻬쩨르부르크)에서 사망했다. 그는 중국어, 몽골어, 일본어, 한국어, 만주어, 티베트어 등 11개 언어를 섭렵했고, 한국·중국·일본 역사와 민속 분야 전문가였다. 뀨네르는 러시아 재무부가 발간한 『한국지』 에 참여했기 때문에 한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는 '한국지' 후편의 성격으로 20세기 초반 한국의 변화를 집대성했다. 즉 그는 일본이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이후 한국의 지리와 경제 상황을 상세하게 저술 할 수 있었다. 『한국개관』 은 1912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동방학연구소의 기관지 '동방학연구소 소식' (Известиявосточногоинститута) 이라는 잡지에 공식적으로 발간되었다. 러시아 동방학연구소는 『한국개관』 의 객관성을 보장한 것이다. 이것은 『한국개관』 이 동방학자 뀨네르 개인의 업적이 아니라 동방학연구소의 공식적인 입장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1910년 이후에도 독도는 한반도 고유영역"
뀨네르는 『한국개관』 에서 20세기 초 한국의 지리적, 인구적, 경제적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제공하였다. 여기에는 한반도의 항구, 연안, 도서 등이 서술되었는데, 그 중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었다. 이것은 일제의 한국 강점인 1910년 이후에도 독도가 한반도의 고유영역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뀨네르는 울릉도와 독도의 지리적 중요성, 1900년 전후 울릉도 거주민의 인구 변동 추이,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 울릉도 영유권을 유지하려는 한국정부의 노력 등을 기술했다. 그 중 주목할 점은 독도가 바위가 아닌 섬이라고 했으며,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독도를 포함시켰고, 독도의 어업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는 사실이다.
뀨네르는 울릉도 주변 섬으로 독도(Liancourt)와 죽서(竹嶼, Чюксё)를 기술했다. 독도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울릉도에 가장 근접해 있는 작은 섬(островок) 리앙쿠르(Liancourt, 일본에 전달될 때는 얀코<Янко>)는 울릉도로부터 남동쪽으로 일본식 30리(약 70 해리)의 거리에 위치한다. 리앙쿠르는 울릉도와 오키(隱岐) 섬의 중간정도 되는 지점이다. 얀코 섬(Янкоостров)의 길이는 10정(약 1km)이다. 독도는 식수와 연료가 충분하지 못하다. 바로 이 때문에 독도는 사람이 살기 어렵다. 심하게 굴곡진 독도의 연안에는 어선들이 선착하기에 편리한 장소들이 많다. 독도 인근에는 해마(海馬, 카이바)가 많이 살고 있으며, 다양한 해산물이 풍부하게 존재한다. 울릉도의 연안 근처의 동쪽 측면에 부솔(Бусоль, 라뻬루즈 탐험대에 소속된 선박 중의 하나를 기념하기 위한 명칭)이라는 작은 섬이 있다. 이를 '한국신지리' 에서는 죽서도(竹嶼島, 일본식 독음으로는 치쿠쇼)로 명명하고 있다."(КюнерН.В. ОчеркъКореи. Ч.1. Владивосток. 1912. С.50)
한국인이라면 한번쯤 되새겨 보길
뀨네르는 한국이 일본의 다른 식민지인 대만(臺灣)·홋카이도(北海道)·사할린(樺太)에 비해서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일본이 한국을 다른 식민지에 비해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어가는 치밀한 과정을 주목했다. 뀨네르는 『한국개관』 을 통해서 일본이 자국의 이익에 입각하여 한국을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선입견' 에 빠지지 말 것을 경고한 동방학자였다.
뀨네르, 그는 일본의 시선에 의해 알고 있는 진실이 위장된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폭로한 인물이었다.
『한국개관』 은 1912년 러시아에서 발간되었다. 꼭 100년만인 2012년 『한국개관』 이 한국에서 번역되어 햇빛을 보았다. 그런데 100년 전 한국개관은 『현 일본조선총독부 한국개관』 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언제든 한국역사에서 다시 반복될 수 있는 섬뜩한 제목이다. 한국인이라면 한번쯤 그 제목을 다시 한 번 새겨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