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뉴스레터

기고
한중일의 공동 역사 인식 모색과 동아시아 평화
  • 김정인 | 춘천교육대학교 교수

6년이라는 길고 힘든 여정 끝에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1, 2권이 출간되었다. 한·중·일 공동의 첫 작품인 『미래를 여는 역사』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응한다는 시대적 요청과 함께 한중일이 처음 한자리에 모여 역사 인식의 공유를 시도한다는 경험이 주는 설렘과 긴장이 묻어난 책이었다. 두 번째 성과인 이번 책은 만남의 과정이 흔히 그렇듯이 좀 더 가까워지면서 서로의 역사 경험과 역사 정서, 그리고 역사 인식의 차이를 깨닫는 동시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뇌했던 세월들이 담겨 있어 감회가 더욱 깊다.

역사 인식의 공유는 역사 대화로부터

『미래를 여는 역사』에서 시작된 한중일 시민단체, 역사학자, 역사교사 간의 만남의 세월이 10년을 훌쩍 넘어섰다. 한중일 3국 공동역사편찬위원회 위원들이 3국을 오가며 수십 차례의 국제회의와 수많은 이메일을 통해 나눈 10여년의 역사 대화는 역사 인식의 바탕이 되는 각국의 역사 경험과 역사 정서의 차이를 깨닫고 이해하는 시간들이었다. 동시에, 동아시아라는 틀 안에서 상호 역사 인식의 교집합을 찾아내려는 끝없는 모색의 나날들이었다.

그 성과를 정리하면, '만나야 친해진다'는 말로 간단히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여기서 만남은 간단없는 역사 대화를 의미한다. 친해진다는 말은 역사 인식의 공유가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역사 대화란 곧 역사적 경험과 정서가 다른 사람들이 만나 서로 친해지는 과정인 것이다. 1 0여 년을 만나는 동안, 중국 위원들과의 역사 대화에서는 오랜 세월 중화 문화권의 패자(覇者)로서 쌓아온 경험과 20세기 전반기 기다란 전쟁의 흔적, 그리고 최근 경제 부상이 가져온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일본 위원들과의 역사 대화에서는 근대 이후 제국(帝國) 형성과 그 붕괴의 격동적인 경험부터 오늘날 일본 시민운동의 경향까지, 나아가 작년 대지진의 충격의 영향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위원들은 역동적인 역사 경험만큼 강렬한 열정으로 때론 갈등을 유발하기도 했고, 때론 갈등을 과감히 해결하며 여기까지 왔다.

이러한 역사 대화의 경험은 넘지 못할 산 같아도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생각과 마음을 나누면 결국 넘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해 주었다. 즉, 무엇보다 지속적이고 꾸준한 역사 대화가 역사 인식 공유의 지평을 넓히는 데 근간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사 인식 공유의 지평 확대

『미래를 여는 역사』에서는 3국이 각자 자국 역사를 서술했다면,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에서는 각 국이 장별로 나누어 집필하고 삼국이 공통으로 자료를 제공하고 검토·수정하는 형식상의 진전이 있었다. 그렇다면, 내용적으로 첫 만남의 성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진전을 보이며 역사 인식 공유의 지평을 넓힌 사례들이 있을까? 두 번의 만남에 모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돌아보니, 3·1운동이 5·4운동에 미친 영향에 관한 논란이 떠오른다.

『미래를 여는 역사』의 구상 단계에서는 목차에 3·1운동만 들어 있었다. 그 부분 말미에 3·1운동이 5·4운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서술하자, 중국 측이 확실한 근거가 있느냐며 조목조목 따져 물었다. 결국 논란은 초기 목차에는 없었던 5·4운동을 별도 항목으로 집필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1권에서는 3·1운동과 5·4운동 각각의 특징과 함께 3·1운동이 5·4운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 관련 자료를 제공한 측도 중국이었다. 이처럼 꾸준한 역사 대화를 통해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가 역사 인식 공유의 지평을 넓혀갔던 경험은 매우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지속적인 역사 대화의 경험은 개인적으로도 국가사 혹은 민족사적 맥락에서만 이해하던 역사적 사건들을 동아시아사적인 안목, 즉 동아시아 관계사의 차원에서 재해석하도록 하는 역사관의 변화를 가져왔다. 가령, 현재의 우리 사회를 진단할 때도 한국사만이 아니라 과거 동아시아의 역사 경험 전체를 시야에 넣고 짚어 보게 되는 것이다.

동아시아 평화의 초석, 역사 대화

아직 제대로 넘지 못한 산도 있다. 20세기 전반 식민과 전쟁의 경험을 거치면서 형성된 가해와 피해의 기억에 대해 하나의 역사상을 구성하는 데는 이르지는 못했다. 다만, 생사의 기로에 섰던 아픈 경험에 대한 기억을 하나로 공유하는 것이 동아시아 역사 인식 공유의 핵심 의제요, 역사 대화의 최종 목표라는 사실은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을 긍휼히 여기고 상대를 증오하는 역사 인식 속에 평화가 둥지를 틀기 어렵다.

무엇보다 동아시아 정치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역사 갈등은 동아시아 평화 정착에 적지 않은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영토 분쟁과 역사 왜곡 논란,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 청산 논란 등이 끊임없이 뉴스거리로 오르내리는 현실을 살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나'라는 일국·일족 의식을 넘어 우리의 동아시아라는 역사 인식 공유를 모색하는 역사 대화는 곧 평화운동이기도 하다.

역사 대화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경험하고도, 그 필요성에 충분히 공감하는 것은 상대와 대화하고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인으로서의 연대의식과 정체성이 형성되어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동아시아인으로서의 연대와 정체성은 동아시아 평화의 심리적 초석이다. 이렇듯, 역사 인식 공유는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역사 인식 공유는 지속적인 역사 대화에서 나온다. 때문에, 더 많은 역사 대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