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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새 책
근대 이행기 한일 관계와 인식에 관한 연구
  • 정영미 | 독도연구소 연구위원

1900년 대한제국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통해,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승격시키고 울릉 전도와 '죽도(竹島)' 및 '독섬(石島)'을 그 관할 하"에 두었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죽도(竹島)'는 울릉도 바로 옆에 위치한 '댓섬'이며 '독섬(石島)'은 오늘날의 독도를 일컫고 있다. 하지만 '석도(石島)'가 독도라는 명확한 사실에 대해 일본 측 일부 연구자들은 다르게 해석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나오는 '석도'는 한국 학계에서 주장하는 독도가 아니라, 관음도라고 주장한다.

'독섬'의 다양한 한자표기 사례 연구

재단은 이러한 '석도'의 명칭과 독도를 연구해 온 관련 연구자들의 깊이 있는 연구성과를 모아 기획연구서를 발간했다. 재단 기획연구 55번째 도서로 발간된 『근대 이행기 한일 관계와 인식에 관한 연구–독섬(石島)과 Liancourt Rocks를 중심으로』는 이 '석도' 문제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한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끈다. '석도'의 명칭과 그 유래에 대한 설명에서 지금까지는 주로 언어학적 관점에서 '석도'가 전라남도 지역 어민들의 방언에서 나온 '독섬'의 한자 표기라고 주로 설명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번에 발간된 본 연구서에서는 국내 다른 지역 '독섬'들의 다양한 한자표기 사례 등에 관한 심도 깊은 연구와 이를 토대로 이전보다 더욱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보강하는 한편, 그 이전까지 '우산도'로 불려왔던 독도가 왜 '석도'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독도 역사의 통사적 이해라는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석도의 명칭 및 어원을 둘러싼 다양한 연구성과와 함께 본 도서에는 19세기 후반부터 일본에서 독도를 일컫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던 'Liancourt Rocks'라는 명칭을 소재로 해, 일본이 집요하게 주장하고 있는 독도 고유영토론의 본질과 그러한 일본의 주장이 논리적, 국제법적, 해양법적으로 얼마나 허구성으로 가득 차 있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정리한 논문을 같이 실었다.

국제법, 한국사, 일본사, 지리 등 다양한 전공 연구자의 시선에서 집필

본 도서에는 긴 시간 동안 독도 연구에 천착해 왔으며 국제법, 한국사, 일본사, 지리 등 각기 전공이 서로 다른 총 5명의 연구자들이 각자의 전공과 그간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살펴본 시선에서 집필한 논문들이 실려 있다. 본 도서에서는 국제법 전문가로 1998년 최초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초안 등을 발굴 공개한 바 있는 김병렬 국방대학교 안보정책학부 교수는 「섬의 명칭이 영유권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한국사 전문가로 오랫동안 독도의 명칭 등을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사료를 연구해 온 임영정 동국대학교 역사교육과 명예교수는 「한말(韓末)의 우산도(于山島) 연구」를 주제로 집필했다.

그리고 역시 한국사 전문가로 근대사료 연구에 많은 업적을 쌓아가고 있는 홍정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는 「근대 문헌에 보이는 독도(우산도, 석도) 관련 연구」를, 지리학 전문가이자 서울대 규장각 재직 시절부터 조선시대 고지도 및 독도 관련 고지도 연구에 많은 업적을 쌓아온 이기봉 국립중앙박물관 고서전문원은 「순한국말 지명과 한자 표기의 관계를 통해 본 석도·독도 고찰」을 집필해 눈길을 끈다.

한편 일본사 및 한국사를 연구하고 다수의 한일 고문서 번역집, 논문 번역집 등을 발간한 바 있는 필자는 「일본의 '섬의 명칭 혼란에 대한 연구'와 Liancourt Rocks」를 주제로 연구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독도 수호에 또 하나의 초석이 되길

오늘날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 무엇인가를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독도문제를 들 것이다. 독도문제는 그러나 어제 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다. 길게 보면 17세기 말, 짧게 보면 20세기 초 일련의 사건들에 기인하고 있다. 그동안 17세기 일본의 울릉도 도해 및 이의 금지에 관한 연구는 나름대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렇지만 20세기 일본이 러일전쟁에 활용하기 위해 독도를 편입할 당시의 정황에 대해서는 연구가 미진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관련 분야 연구자들을 초빙해 근대 한일의 경계와 인식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게 된 것은 독도 수호에 또 하나의 초석을 놓는 것으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