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이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제주도 서귀포시 해비치 호텔에서 열렸다. 재단은 '세계화시대 새로운 동아시아와 역사교육의 과제'라는 주제로 2개 세션을 구성, 동아시아 역사교육의 현황과 과제를 집중적으로 검토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역사갈등이 추동(推動)한 동아시아사 교재 개발
첫 세션 사회를 맡은 정재정 이사장은 2012년 3월부터 동아시아사가 고등학교 선택과목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음을 환기하며, 동아시아사를 어떻게 봐왔고 앞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 일국사(一國史)를 뛰어넘는 동아시아사는 가능한 것인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역사학과 역사교육이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첫 발제에 나선 서울대 유용태 교수는 최근 한중일에서 출간된 『어른을 위한 근현대사(大人のための近現代史: 19世紀編)』, 『동아사(東亞史)』,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자국의 '제국성'을 성찰한다는 관점에서 비교하였다. 유교수는 동아시아 각국 전문가들은 자국사와는 다른 동아시아사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는 동아시아 지역사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한신대 안병우 교수는 2001년도 후쇼샤판(版) 역사교과서 검정 통과, 중국 동북공정의 충격이 자국사 중심으로 역사 교육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였다고 지적하였다. 이런 배경 속에 한국은 2006년 12월에 동아시아사 교과서 출간을 결정하였고 올해 그 결실을 맺게 되었으나 지속적인 연구와 편수 용어의 통일, 교사 양성 등 향후 과제도 적지 않음을 지적하였다. 이어 미야케 아키마사 교수는 도쿄서적판 고교일본사 교과서의 실험을 소개하며 한국사, 일본사, 중국사라는 내셔널 히스토리(national history) 대신 동아시아사 교과서 를 편찬해야 한다는 등의 대담한 방안을 제시하였다.
대만 중앙연구원 판광저 박사는 내셔널 히스토리를 극복하기 위해 위원의 『해국도지(海國圖志)』와 서계여의 『영환지략(瀛環志略)』, 윌리엄 마틴(William A. P. Martin)의 『만국공법』 등 19세기 동아시아 사회가 공유했던 텍스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주장하였다. 이런 공동의 텍스트 보급은 각국 지식인들이 자국에 대한 인식을 크게바꾸고, 각국의 개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현실의 정치지형과 새로운 동아시아사
이어진 2부 회의는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의 사회로 한국의 동아시아사 교육 실험이 가지고 있는 의의와 향후 과제 등을 집중 토론하였는데, 후마스스무 쿄토대 교수는 책봉 개념, 조선통신사 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면서 교과서에 18세기 동아시아 구조를 책봉체제로 서술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18세기 이후에도 조선통신사가 "조선의 선진문화를 일본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은 사실인지 등의 논쟁적 문제를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동아시아 지역을 우리들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관점에서 인식해야 함을 지적하고 일본이 전쟁에 대해 남긴 상처를 어떻게 해소해 나갈지,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주도한 50년 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 신아시아전쟁 30년을 포함한 80년 전쟁에서 어떻게 탈피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과제라고 적시하였다.
왕신셩 베이징대 교수는 각국 역사인식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연구자들의 노력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왕교수는 역사 공동연구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성격을 감안하여 긴 시간을 가지고 노력할 필요가 있으며, 지역사와 아울러 각국사를 균형 있게 봐야 한다는 관점을 제시하였다. 쳔윈셔우 베이징 연합대 교수는 역사적으로 동아시아는 민족국가를 단위로 했다고 보기 어렵고, 동아시아 지역사를 한 나라가 계속 주도한 것도 아니라고 평가하였다. 특히 그는 동아시아 역사 교육에서 역사상 공공재로서 기능했던 해양에 대한 재인식이 긴요함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독일 교과서 연구소 에크하르트 훅스 교수는 공통된 지역사의 구성이 곧바로 지역 정체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전제는 성급하다는 점에 주의를 환기하였는데, 훅스 교수는 특히 지역사 교과서 개발과정에서 지역정체성과 국가정체성이 상충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였다. 중앙일보 문화부의 배영대 차장은 한국에서의 최근 10여 년간의 역사논쟁은 주변국과의 관계, 국내적 차원에서의 보혁(保革)구도가 상호 연계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고 파악하고 근대성의 관점에서, 한국이 제국의 경험 없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루어낸 자부심이 동아시아사를 최초로 개발하고 교육과정에 집어넣은 원동력이라고 평가하였다. 마지막으로 재단의 오병수 연구위원은 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를 어떤 층차에서 이해할 것인지, 국가중심의 역사서술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등의 해소해 나가야 할 과제를 지적하였다. 특히 오 연구위원은 공동의 교재개발이 단일한 역사인식을 목표로 할 필요가 없으며, 공존 가능한 다원적 인식과 소통의 다원성과 민주성, 대중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일국사적 관점을 넘는 공감의 자리
이번 제주 포럼은 일국사적 관점을 넘는, 새로운 동아시아 역사상이 필요함을 한중일 지식인들이 공감하는 자리가 되었다. 각국 학자들간의 미묘한 이견, 동아시아사 서술의 문제와 과제에 대한 따가운 지적도 없지 않았지만, 새로운 동아시아사를 어떻게 조형하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는 회의였다.
그동안 동아시아사 교육과 실험을 주도해온 재단은 이번 회의를 계기로 그동안의 성과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보면 이제 재단은 이런 노력과 성과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대안적 담론을 생산하고 그 실천성을 확보해 나가기 위한 노력을 가열화해야 된다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된 것은 아닐까? 회의를 마치고 "가장 먼저 해가 비치는 곳", 해비치에서 갖는 자문이며 독백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