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겨레가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해방되고 연합국에 의해 분단된 때로부터 어느덧 67년이 흘렀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글자 그대로 경이적인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으며, 세계의 많은 나라들로부터 칭송과 선망을 받고 있다. 반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침체를 넘어 쇠잔의 늪 속에 깊이 빠져 있다. 한반도의 주변국가들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은 여전히 최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연합국의 다른축이었던 소련은 해체됐고 그 후계국가 러시아연방은 소련의 영토보다 줄어든 영토에 점감하는 인구를 안고 세계 양대국의 반열에서 탈락했다. 반면에 중화인민공화국은 개방과 개혁을 통해 고도의 경제성장을 거듭하여 미국과 더불어 'G2'를 형성하고 있다. 패전국이었던 일본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크게 성장해 동북아시아의 운명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위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는 어떤 방향으로 길을 열어야 할 것이며 특히 대한민국은 어떤 '대전략'을 채택하고 집행해야 할 것인가? 매우 중요한 민족적 국가적 문제에 대해 잠시 생각하기로 한다.
지정학적 상수(常數)에 대한 고려
광복 67주년을 맞이하면서 우선 갖게 되는 생각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다. 이 말은 어린 시절부터 너무 자주 들어서 진부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은 한반도가 동북아시아에서 차지하는 지정학적 위치가 우리의 운명을 제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뜻에서, 필자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우리 민족의 현재와 미래를 논할 때 하나의 상수(常數)로 파악하는 것이다. 주변 열강이 자신들 사이의 이해관계의 충돌을 한반도의 분할로써 조절하거나 해결하려 한 발상은 신라와 당(唐) 사이의 관계에서, 고려와 원(元) 사이의 관계에서 이미 드러났었다. 조선왕조의 경우, 임진왜란 때, 청일전쟁 때, 그리고 러일전쟁 때 드러났었다. 그런데 마침내 일제의 패망 때, 이미 냉전의 개시기에 들어선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의 38도선에서의 분할로 자신들의 세력권을 확정지었던 것이다. 이러했기에, 냉전이 열전으로 확대된 1950∼53년의 6·25전쟁에서 어느 한쪽의 완승과 어느 다른 쪽의 완패는 허용되지 않았다. 북한의 남한정복이 가시화됐을 때 미국이 유엔의 이름 아래 개입하고, 한국의 북한정복이 가시화됐을 때 중국이 인민지원군의 이름 아래 개입함으로써 전전원상(戰前原狀)의 회복을 실현시킨 것이 그것을 말해주었다.
바로 이러한 지정학적 고려와 그것에 따른 세력균형정책이 남북분단을 고착시켜왔다. 1970년대의 개시와 더불어 기존의 냉전구도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탈냉전의 분위기가 조성되어 그 새로운 국제환경을 활용한 남북한이 역사적인 7·4남북공동성명을 채택했다. 그러나 그것이 더 이상 진전할 수 없었던 배경에는 남북 각자의 국내정치적 요인들이 깔려 있었지만, 열강이 남북의 통일을 바라지 않았던 국제정치적 요인들이 깔려 있었다. 그 국제정치적 요인들의 중심에는 바로 지정학적 고려에 따른 세력균형정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점은 오늘날에도 사실상 동일하다. 북한에서 정권이 붕괴할 때 중국이 개입할 것이라는 추론이 그 점을 말해준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를 표방하는 친미적 한국이 자신의 국경선을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확대하는 것을 중국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추론은, 그리하여 중국이 동의하지 않는 한국에 의한 통일은 사실상 그 실현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추론은, 바로 지정학적 고려에 따른 세력균형정책의 틀 안에서 도출된 것이다.
현재의 동북아 정세
이러한 전제 아래 현재의 동북아정세를 읽어보기로 하자. 우선 지적해야 할 것은 한편으로는 은연중에 한·미·일 협력관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은연중에 북·중·러 협력관계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하나의 그림이다. 앞의 경우는 비교적 선명하게 나타나는 반면에 뒤의 경우는 앞의 경우만큼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한반도의 남과 북을 갈라놓은 상태에서 북쪽과의 '협력'과 남쪽과의 '협력'은 그 성격이 '대결적'이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현상임에 틀림없다.
여기서 우선 이 두 개의 '대결적' 구도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관계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살피기로 하자. 두 나라는 모두 외교적 언사들을 구사하면서 진상을 가리려고 하고 있지만, 상대방을 '가상적(假想敵)'으로 보거나 적어도 '강력한 경쟁자'로 보고 있다. 두 나라 모두 동북아시아에서의, 더 나아가 환태평양권에서의 패권 장악을 지향하고 있다.
이것이 한반도에도 직접적으로 나타나, 중국은 북한을 자 신의 강력한 영향 아래 묶어 놓으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장차의 한반도상황을 고려해 '동북공정'을 여러 단계로 추진하였다. 미국은 한국을 일본과 연결시켜 중국봉쇄의 전선에 세우려고 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국내정치에서 쟁점으로 떠올랐던 한일군사정보보호에 관한 협정은 그러한 시각에서 이해될 수 있다.
러시아의 동북아시아로의 적극적인 복귀도 주목의 대상이다. 특히 '강력한 러시아'를 표방해온 푸틴 대통령이 중국과의 협력을 내세우면서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 장악을 견제하겠다는 의도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러했기에 최근 미러관계는 냉랭한 느낌마저 주는 것이다.
일본이 군사대국으로서의 지위를 공식화하려는 최근의 국내적 동향은 러시아 및 중국, 그리고 북한을 염두에 둔 것임에 틀림없다. 영토분쟁과 관련해 일본이 러시아에 대해서 나 중국에 대해 강경히 맞서려고 하는 것,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 역시 일본에 대해 강경히 맞서려고 하는 것 등은 모두 하나의 연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에 얽혀 있는 것이 북한의 핵개발과 핵보유다. 김정일이 죽고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했다고 해서 북한이 핵개발과 핵보유를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북한의 지도부에게 핵은 생명보험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아갈 길
광복 67주년을 맞이한 오늘의 시점에서, 한반도 상황은 엄중하다. 분단구조가 해체될 개연성은 점점 줄어들고 오히려 강고해질 개연성은 점점 커지는 것과 같은 형세다.
대한민국의 국력과 국민의 자신감은 북의 그것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남한사회는 분열의 길에 들어섰다. 그 중요한 요인은 빈부격차의 확대와 그것에 따른 계층간 갈등의 심화다. 2013년 2월에 출범할 새 행정부는 이러한 경향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결적 성격이 짙은 새로운 국제구도에 능동적이면서도 효율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렵다.
민족의 민주적이면서 평화적인 통일을 위한 준비는 국내적 갈등의 완화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일본이 대한민국의 영토인 독도에 대해 오만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게 견제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이제 동북아의 국제관계에서 능동적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