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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새로운 '천하 삼분지계'의 동향과 한국학계의 이해
  • 박장배 | 정책기획실 연구위원

'중화민족 다원일체'나 '중화민족 대가정' 또는 '통일적 다민족국가' 등 다양한 용어로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는 중국학술계는 2002년부터 '동부(東部)'와 '서부(西部)'라는 경제지리적 구분보다 더욱 전통적인 구분선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기존의 양안구분 이외에 중국대륙을 사실상 내강(內疆)과 '변강(邊疆)'으로 구분하는 기획사업들이었다.
먼저 '동북변강연구공정' (2002-2007)은 중국의 동북3성을 '동북변강'이라고 규정하였고, 신장항목 (2004-2009)은 신장위구르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 지역을 변강의 대표주자로, '서남변강항목' (2008-2012)은 윈난성(雲南省), 구이저우성(貴州省) 등을 '서남변강'으로, '시짱항목' (2009-2013)은 시짱자치구를 변강의 또 다른 대표주자로, 마지막으로 북강항목 (2010-2014)은 내몽고를 "북부변강"으로 규정했다. 여기에 '남해변강연구항목(海疆項目)'이 설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로써 '오직 하나의 중국'이어야 하는 공간은 타이완(臺灣) 또는 해강, 내강, 변강으로 이루어진 '중화천하 삼분지계(中華天下 三分之計)'를 통해 일체화되어야 할 공간으로 이해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내강은 물론 과거의 내지(內地)나 본부(本部)에서 차용한 편의적인 용어이다. 제갈량의 '천하 삼분지계'가 위·촉·오 삼국정립의 구도를 형성하는 것이었다면, 현재의 중화천하 삼분지계는 매우 학술적인 '가상구역'의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동북변강연구공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해왔는가를 가늠해보는 자리

지난 7월 20일과 21일 양일간 대구 팔공산온천관광호텔에서 재단과 한국고대사학회 공동 주최로 열린 <'동북공정' 이후 중국의 변강정책과 한국고대사 연구동향> 학술회의는 한국고대사학계를 중심으로 한 한국학술계가 중국의 '동북변강연구공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해 왔는가를 가늠해보는 자리였다.
이 학술회의의 제1부 <'동북공정' 이후 중국의 변강정책과 한국인> 부분은 ① 동북공정과 그 이후, 동향과 평가, ② 중국의 동북변경연구공정 이후 주요 역사·지역 연구항목, ③ 중국 변강정책의 변화와 동북지역, ④ '동북공정' 이후 한·중 언론의 보도양상, ⑤ 동북공정 이후 한국의 역사교육 등 5개 주제의 발표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임기환 서울교대 교수는 '동북공정'을 역사공정과 전략공정의 이중성을 갖는 것으로 이해하고 어느한쪽으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는 점과 향후 한·중간 역사분쟁이 피차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과잉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을 지적하였다. 두 번째 발표자인 필자는 지난 10년 간의 중국 학술연구가 한국학계의 진단처럼 문화보수주의의 지식구조를 기초로 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학문분과인 '변강학' 구상 위에서 역사공정과 지역공정의 양대 부분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세 번째 발표자로나선 이천석 박사는 중국학계의 역사공정들이 소수민족을 한족(漢族)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추진하는 '변강정책'에서 나와 청사공정, 문화공정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네 번째 발표자인 김현숙 재단 연구위원은 '동북공정'이라는 말이 무차별적으로 확대되어 그 실체를 이해하는데 혼란을 조성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한·중 양국 언론의 국제협력을 위한 선도적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발표자인 조법종 우석대 교수는 '동북공정' 이후 제기된 역사교육강화가 여러 가지 아쉬운 점을 안고 있으나, 동아시아사 교과서 발간 등 주목해야 할 진전이 있다고 정리하였다.

한국고대사의 입장에서 중국 학계의 홍산문화, 요하문명론 등 관련 연구를 검토

이 학술회의의 제2부 <'동북공정' 이후 중국의 한국고대사 연구동향> 부분은 ① 중국 동북지방 문명의 형성, ② 동북공정 이후 중국학계의 고조선, 부여, 예맥 연구동향, ③ 동북공정과 그 이후 중국의 고구려사 연구 동향, ④ 동북공정 이후 중국의 고구려·발해 고고학 연구동향, ⑤ 동북공정 이후 중국의 발해사 연구동향, ⑥ 중국학계의 동아시아사 인식과 국제 관계사 서술 등 6개의 주제발표로 구성되었다.
이들 6개의 주제는 한국고대사의 입장에서 중국 학계의 홍산문화, 요하문명론, 고조선, 부여, 예맥, 고구려, 발해 연구를 검토해본 것들이다.

첫 번째 발표자인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에 의하면, 중국학계는 국가주의의 역사관에 따라 그 지역의 독자성에 주목하기보다는 중원과의 관계를 중시한다고 지적하였고, 토론자인 김병준 서울대 교수는 중앙학계가 전국적인 '중화문명'의 존재를 강조하는 반면 지방학계는 각 지역의 '지역문명'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박준형 연세대 학예사는 '동북공정'의 중대한 성과는 후속 연구인력의 양성에 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중국 학계에서는 단군신화가 고조선 시기의 산물이 아니라,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을 펴면서 한국사가 기자조선에서 시작한다는 논리를 강조한다고 지적하였다. 여섯 번째 발표자인 홍승현 숙명여대 연구원은 '동북공정기' 이후 중국 학계에는 점차 '동아시아적' 국제질서의 개념이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에 대해 중국 학계에서 동북아의 일원으로서 정체성을 얘 기한 적이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전반적으로 '동북공정' 이후 중국 학계의 대상 지역 고대사 연구는 보다 다양한 주제를 천착하는 쪽으로 심화되고 있다고 하겠다.

한국 학계의 어려움, 중점 과제 및 국제학술교류의 중요성 확인

중국 학계에 투입된 막대한 연구비는 어떤 성과물을 냈을까? 연구기구의 신설과 강화, 자료집성 등 적지 않은 성과를 냈지만, 한마디로 '덧쓰인 흔적으로 가득한 양피지'를 의미하는 팔림세스트(palimpsest)라는 측면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중국 학계의 일부 연구는 스스로를 부정하는 요소를 갖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어떤 역사상을구축할 것인가 하는 점은 한중 고대사학계 모두의 과제일 것이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학술적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특히 외국 학계의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써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사실, 같은 동아시아 지역국가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학계의 용어와 관점이 상이한 측면이 많다. 또한 생태학과 농업사, 의약학사 등 과학적 분석에 바탕을 둔 연구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리고 관련 연구기관의 조직 강화와 더불어 연구후속세대를 양성할 수 있는 교육기능강화도 요청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사실상 이러한 것들이 전제되어야 '역사 교육강화'가 실질적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남북공동연구와 '개성역사문화특구' 논의 등 학술문화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번 학술회의는 한국고대사학계를 중심으로 한 한국학계의 몇가지 어려움, 중점 과제와 국제학술교류의 중요성을 확인해준 자리였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