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재단의 후원 아래 제2회 아시아세계사학회 국제학술대회가 '아시아의 글로벌 교환 네트워크'와 '아시아의 대안적 근대성'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개최됐다. 이번 대회는 그동안 국내에서 개최된 역사학 관련 학술대회 가운데 가장 큰 규모였다. 이번 학회의 의의와 이모저모 등을 김민규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과 조지형 이화여자대학교 교수간 대담을 통해 소개한다. 조 교수는 금번 학술대회에서 차기 아시아세계사학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김민규 제2회 아시아세계사학회 국제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차기 학회장으로 선출된 것을 축하한다. 먼저 아시아세계사학회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조지형 아시아세계사학회는 아시아에 있거나 아시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세계사 연구자들의 모임이다. 서양사 중심의 세계사가 아닌, 새로운 각도, 다양한 경로가 가능하다는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아시아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보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3년마다 개최하는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서구적인 관점을 뛰어넘어 새로운 시각을 마 련하는 동시에, 아시아 안에서도 얽혀있는 각국의 정치·경제·외교·학문적인 이해관계들에 대해 서로 소통하며 이해할 수 있는 연구의 장을 만들고 있다.
4년 전 중국 톈진에서 몇몇 사람들이 모여 움직이기 시작했고, 3년 전 오사카에서 제1회 학술대회를 개최하면서 공식적으로 발족을 했다. 이번이 두 번째 국제학술대회로 아직 초창기라 친목도모의 성격이 강하고 여전히 부족한 면이 많은, 걸음마 단계의 신생학회다.
김민규 신생 학회가 전례 없는 규모와 범위로 국제학술대회를 치렀는데, 어떻게 해서 이렇게 대규모의 인원이 참가하게 됐는지, 제1회 때와 비교해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조지형 오사카에서 열렸던 제1회 학술대회에서는 90여편의 논문 발표가 있었다. 이번에는 라운드 테이블을 포함해서 150여 편 정도가 발표됐다. 제1회 때에는 참가자의 60%가 일본인들이었는데, 이번에는 20여개 국에서 참석했고 59개 패널들이 구성돼 발표하고 토론했다. 사실 주최측에서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리라고는 예상하지못했다.
홍보를 위해 일본에 가서 몇몇 학자들을 만났고, 작년 7월 북경에서 열린 미국 세계사학회에 참석해 홍보 리플렛을 돌리기도 했다. 그때 참석했던 일본과 중국 학자들 중 상당수가 자비를 들여 이번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사실 예산부족으로 경비지원이나 초청이 어려웠는데 학자들이 호의를 보이며 자비로 참석했다는 점이 무척 고무적이었다.
이렇게 홍보도 효과적이었지만, 가장 주효했던 것은 인적 네트워크였다. 아시아세계사학회 발족에 주축이 된 패트릭 매닝 같은 학자를 비롯해 세계사학회 쪽으로 인적 네트워크가 있는 학자들이 그 네트워크를 통해 함께 이야기를 해주고 격려해주며 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또, 2년 간 준비를 하면서 동북아역사재단과 이화여대의 지원, 역사를 연구하는 국내 학자들과 사학과 학생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다.
김민규 3년 후에 열릴 제3회 아시아세계사학회 국제학술대회가 더욱 기대된다. 실제로 이번 학술대회에 참가해보니 앞으로 한국연구재단 프로젝트와 연결해 국내 학자들도 많이 참가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다.
조지형 이번 학술대회가 규모가 크고 참가자가 많다 보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목하기가 쉽지 않아서 아쉬웠는데, 사실 세계적인 석학들이 많이 참여했다. 그들 중에는 미국이나 유럽의 세계사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과 긴밀한 연관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고, 세계사 교과서를 쓰는 사람도 있다.
이런 기회에 우리나라 학자들 중 한국사나 동양사 연구자가 참여해 자신의 의견도 밝히고 우리나라의 입장도 밝혀주면 그것이 미국이나 유럽의 세계사 교과서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 학자들의 참여율이 저조했다. 영어를 잘 못해서, 또, 국제학술대회인데 인적 네트워크가 없다보니 국내 학자들로만 패널을 짤 수밖에 없어서, 또 패널을 조직하면 일부나마 재정적으로 도움 을 줘야한다는 부담감이 생겨서 참여가 어려워진 것 같다. 그래서 매우 안타까웠다.
그래도 국내 학자들끼리라도 서툴지만 해보자고 용감하게 뭉친 한 패널이 있었다. 학회에서는 될 수 있으면 여러 나라, 다국적 구성원들이 모여 패널을 구성하길 원하지만 여의치 않다면 이런 구성도 허용하고 있다. 그렇게라도 참여하게 되면, 해외의 학자들과 서로 만나 얼굴 트고 말을 트고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다음 연구를 함께 도모할 수 있게 된다. 다음 학술대회에는 보다 많은 국내 학자들이 참여해 네트워킹을 하길 기대하고 있다.
김민규이야기를 듣다보니 아시아세계사학회장으로서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궁금해진다. 아시아세계사학회는 앞으로 어떠한 주제로 토론을 이끌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규명해 나가는 역할을 할지, 그 전망을 듣고 싶다.
조지형크게 세 가지 정도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 첫 번 째로 국제학술저널을 발간할 예정이다. 세계적인 석학들을 편집위원으로 초빙해 논문 게재가 최종적으로 결정이 되더라도 편집위원이 지속적으로 살필 수 있도록 수정기간을 두어 양질의 논문들로 채운 국제학술지를 발간할 예정이다. 두 번째로, 국제적으로 다양한 공동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기획하고 있다. 그 준비를 위해 아시아세계사학회 페이스북을 따로 만들어 각국 연구자들의 빠른 의사소통을 돕고 있다. 세 번째로, 패트릭 매닝이 진행하고 있는 '세계사 정보분석 협력 프로젝트'에 적극 동참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각국에 있는 세계사 데이터들을 협력해서 모아 근대사의 여러 현상들을 공동으로 연구할 수 있는 데이터 뱅크를 만드는 작업이다.
이렇게 국제학술지, 국제 공동 프로젝트, 세계사 정보분석협력 프로젝트, 세 가지를 주도적으로 진행해가면서 각국에 있는 역사학자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일종의 세계사 연구 플랫폼을 만들려고 한다. 그 외에도 현재 한중일로 집중되어 있는 아시아세계사학회의 구성을 동남아시아, 아랍권까지 점차 확대해 학회가 보다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김민규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사가 추진해온 '빅 히스토리 연대표 프로젝트'에 거북선, 도산서원, 동의보감, 일성록, 수원 화성 등의 한국 역사 관련 내용이 들어간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향후 계획이 발표되었다는데, 이에 관한 설명과 '빅 히스토리'의 개념, 의의에 대해 듣고 싶다.
조지형 빅 히스토리는 역사를 빅뱅부터 시작해서 현대까지 이르는 기간으로 보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사를 이해해야 하고, 동아시아사를 이해하려면 유라시아사를 봐야하고 유라시아사를 이해하려면 세계적인 관점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확대시킨다면 우주적으로 맥락을 봐야하고 그 우주의 시작이 빅뱅이니까 빅뱅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역사를 통해서 인류의 역사, 지구의 역사를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빅 히스토리'라고 이름을 지어서 부르고 있다. '거대사'라고도 부른다.
미국에서는 빅 히스토리가 융합교육으로 발전하고 있다. 빅 히스토리를 통해 역사도 가르치지만, 역사라고 하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해 자연과학도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게 9학년, 10학년(우리나라의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연령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문과 자연과학의 융합학문을 교육하며 창의력을 키워주려는 의도다.
작년에 미국 5개 학교, 호주 2개 학교에서 시범사업을 진 행했고 올해는 미국 50개, 호주 20개 교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나면 내년부턴 공개적으로 활용 의지가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빌게이츠의 역사자료가 제공 될 예정이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결과물 중 하나가 '크로노 줌(Chrono Zoom)'이란 사이트(www.chronozoomproject.org)이다. 여기에서 일컫는 크로노 줌이란 기존의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보다 입체적으로 만든 것이다. 한 화면에서 137억년을 다 볼 수 있게 하면서도 클릭해 들어가면 하루 단위의 역사적 사건들을 볼 수 있다. 이 자료들을 단순한 연대기가 아니라 관련 문서는 물론 영상자료, 참고자료 등을 모두 포함해 입체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 한국 자료가 없다는 연락을 받고 세계사 맥락에서 우리나라에서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것이 무얼까 고민하다가 거북선, 도산서원, 동의보감, 일성록, 수원 화성 등을 직접 추천했다. 세계사와 직접 결부되어 있지 않더라도 '비교 가능한 사건들이 뭘까?' 생각해보고 연결성을 지닌 것들을 발굴해 연구를 하고, 외국어로 발표도 하고 소통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크로노줌 사이트도 시작 단계로서 기술적으로 점점 보강되고 있다.이에 각국의 역사학회들은 콘텐츠를 채워주는 역할을 하며 입체적인 사이트 구축에 힘을 더할 예정이다.
김민규 현재 지구사연구소도 맡아 이끌고 있는데, 지구사 연구소는 어떤 곳인지 소개해달라. 지금까지 추진해온 연구소 사업과 성과, 앞으로 추진할 프로젝트 등도 궁금하다.
조지형 '지구사연구소'라는 용어를 아직 생소해 하는 사람들도 많다. 처음 듣고 지구과학을 연구하는 곳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고, 혹시 지구를 지키는 다섯 용사들이 머무는 곳이냐고 농담을 건네는 사람들도 있다. 지구사연구소는 글로벌 히스토리를 연구하는 곳이다. '글로벌 히스토리(Global History)'라는 말이 사실 더 이해하기 쉽지만 이 용어가 5년, 10년 가다보면 뿌리가 정착하는 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지구사'와 '지구사연구소'라는 용어를 고집하고 있다. 지구사연구소에서는 총서를 해마다 한 권씩 내고있다. 올해가 4년째로 가을쯤 역사와 기후를 주제로 네 번째 총서를 펴낼 예정이다. 해마다 국제학술대회도 개최하고 있다. 끊임없이 움직인 덕분인지 다행스러운 것은 이제 '글로벌 히스토리'라는 용어 대신 '지구사'라는 용어를 쓰는 사람들이 점점 늘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 출판사에서는 '지구사' 시리즈를 발간하기도 했다. '지구사' 라는 용어가 점점 정착되어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김민규 마지막으로 현재 활동과 관련해 재단에 당부하고 싶은 점이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지?
조지형 역사는 결국 사람이 연구하는 것이고,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인적 네트워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역사학자들, 특히 자국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세계사를 공부하는 학자들은 보다 열려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알리고 쟁점에 대해 의견을 나누려면 기본적으로 열려있는 사람들끼리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 그래야 소통 가능성도 커지고 소통할 수 있는 장도 더 넓어지리라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함께 만날 수 있는 기회들을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마련해주면 좋겠다. 국내 연구자들이 중심이 되어 다른 나라 연구자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비롯한 환경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 덜 알려진 우리의 우수한 역사들을 많이 알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구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이 부분을 고려해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사업을 진행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김민규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