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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Q&A
일본정부의 독도분쟁화 전략의 역사
  • 김용환 | 독도연구소 연구위원

Question

최근 일본정부는 독도를 국제사법법원(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에 제소하겠다는 전략을 노골화하고 있다. 일본의 독도분쟁화 전략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자

Answer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략 및 식민지배의 역사와 이를 극복한 대한민국 독립의 상징이다. 연합국은 카이로 선언(1943)에서 '일본이 폭력과 탐욕으로 약취한 기타 일체의 지역에서 축출되어야 한다'고 했고 뒤이은 포츠담 선언(1945)으로 '일본의 영토는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 및 연합국이 결정하는 여러 작은 섬들에 국한된다'고 했다.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에도 이러한 입장은 바뀌지 않았으며, 해방 후 주한 미 군정청의 관할 하에 있던 독도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지금까지 우리의 관할 하에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의 독도의 국제분쟁화 전략은 양국 간에 있어서나 국제사회에서 모두 실패

우리나라는 정부 수립 이후 그해 10월 20일부터 문화재 반환, 어업, 재일 한국인의 법적 지위,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에 따른 대일 청구권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과 교섭을 진행했다. 동시에 한국전쟁을 수행하는 어려움 속에도 우리 정부는 '인접해양에 대한 주권에 관한 선언'을 통해 독도가 우리 관할 하에 있음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했다. 그러나 1952년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이 발효되면 이른바 '맥아더 라인'이 사라지게 됨에 따라 당시 이승만 정부는 독도 근해의 어족자원을 보호하고 영해와 대륙붕에 대한 주권을 행사할 목적으로 평화선을 선포했다. 이후 일본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1965년 한일 간 기본조약 체결 전까지 평화선은 유지되었다. 일본은 국교 재개를 위한 협상 시 독도를 분쟁지역화 하고자 독도문제를 의제로 삼고자 했으나 이러한 시도는 무산되었다. 또한 1991년 제46차 유엔 총회 때 대한민국과 북한의 유엔 공동 가입 시에도 일본은 영토문제를 의제화하지 못했다. 따라서 양국 간에 있어서나 국제사회에서 한국과 일본의 영토문제는 공식적으로 없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독도분쟁화 시도는 일본의 자충수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ICJ 전경

일본의 독도 분쟁화 전략에 말려들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일본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국제사법법원(ICJ)에 일방적으로 제소하겠다는 입장이다. 외신기자를 상대로 기자회견을 하고 UN총회 등 국제사회에 이 문제를 거론하겠다며 국제홍보전에 나서고 있다. ICJ는 양국의 합의가 없으면 제소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본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이 이러한 행보를 하는 것은 독도를 국제분쟁지역으로 국제사회에 홍보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마찰을 볼 때, 일본의 이러한 전략은 오히려 자충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 국제 질서상 모든 분쟁은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분쟁을 국제재판에 회부해야할 일반 국제법상 의무는 없다. 일본이 독도와 관련해서는 국제사법법원에 회부해야 한다고 하면서 센카쿠열도에는 분쟁이 없다고 주장하는 모순은 일본의 국제재판 제안에 진정성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