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의 기운은 따사롭게 살아있어 여름의 끝자락을 밟고 버티고 서있었지만, 목 뒷켠의 서늘한 바람살은 영락없는 가을 저녁이었다.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교수는 약속 시간인 6시를 10분 남겨놓은 시각에 택시에서 내려 예의 함박웃음을 띠고 재단 앞에 위치한 호텔 정문 쪽 내게로 다가왔다. 면식이 있던 터였지만, 오랜만에 만나 반가움은 배가(倍加)됐다.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을 방문해 할머니들을 인터뷰하고 오는 길이란다. 저녁 약속 시간까지 남는 두세 시간의 짬을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튿날 하루 종일 있게 될 콜로키움이 마음속에 가득해 저녁은 응당 조촐할 수밖에 없었다.
콜로키움(10월 14일)을 일요일에 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일본 측 참가자 4명 중 3명이 대학에 적을 두고 있어 부득이 강의가 없는 요일을 택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요시미 교수와 재일교포 출신 학자이자 '위안부' 활동가인 김부자(金富子, 동경외국어大)·양징자(梁澄子, 히토츠바시大) 두 교수, 그리고 와타나베 미나(渡辺美奈) '여성의 전쟁과 평화자료관(wam)' 사무국장이 일본 측 참가자였다. 한국 측 '위안부' 전문가로는 강정숙(이화여대), 윤명숙(강원대), 하종문(한신대) 교수, 그리고 최봉태 변호사가 참석하였으며 재단에서는 제반 일본 관계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역사연구실 1팀원들 전원이 참석하였다.
오후 회의 도중에는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께서 회의장을 찾아주셔서 뜨겁게 달궈진 토론의 용광로에 기름을 선사했다. 콜로키움 개최 바로 이틀 전에 '한일조약 일본측 문서 공개'를 위한 1심 재판의 승소(10월 12일)를 이끌어낸 최변호사는 비행기로 한일 양국을 탁구공이 양쪽 테이블 넘나들 듯 왕복에 왕복을 거듭한 것은 물론, 대구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탓에 그 고단한 몸을 이번에는 KTX '새벽호'에 싣고 달려와 참가자 전원을 감동시켰다.
콜로키움 주제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현상과 해결을 위한 모색>으로 정한 이유는 '위안부' 문제가 대체 지금 어떤 문제들을 안고 있으며, 또 그것들을 어떠한 방법으로 풀어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였다. 우익 색을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는 하시모토 토루(橋下 徹) 오사카 시장이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 연행한 증거는 없다는 등의 망발을 일삼고 있는 가운데 한일 연구자 및 활동가들이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연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해 나아갈지에 대해 허심탄회하고, 또 진지하게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위안부 문제'의 진짜 '문제'는 우향우 지향적인 문제의 일본 정치가들과 '울트라 쇼비니스틱' 매체인 산케이(産經)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 '황색저널리즘'의 지극히 불건강한 내셔널리즘과, 그것을 곧이곧대로 신봉하여 경도되고 있는 가엾은(?) '보통의 일본사람들'이라는 데에는 이견의 목소리가 없었다. "어디 산케이뿐이겠는가!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하는 매체는 단 한 곳도 없다! 일본 정치의 후진성과 일본국민들의 정치의식의 저급성은 어찌 달리 표현할 방법조차 없다!"
지난해의 3.11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로 인한 엄청난 방사능 폐해로 의기소침해 있는 대다수 일본인들에게 전전(戰前)의 '대일본제국'이 이루어 놓은 '군국위업'에 '위안부' 강제연행이라는 '한 점(어디한 점뿐이겠는가 만은!) 흠집'을 지우기 위해 발광하는 정치가들은 최근 불거진 '영토문제'를 기화로 자국민들의 우향우 행진을 가속화, 또 지속화시키기 위해 내셔널리즘이라는 불쏘시개로 등 떠미는 일에 재미 붙였단다. 그래 그런 것도 '평화헌법'을 '전쟁헌법'으로 고치는 정지(整地)작업의 일환이란다. '보통의 일본사람들'이 좌 클릭하거나 뒤돌아보면 황국사관의 허구와 황국의 야만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했던가?
일본어로 '이안후(=위안부)'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대부분 우익들이 홈지기로 활약하고 있는 사이트로 연결된단다. 학생들에게 '위안부'의 실상에 대해 알리고 싶어도 일본어로 된 쓸만한 교재 하나가 없다고 한다. 동영상이 대세인 요즘인데 제대로 된 일어판 영상 한 편이 없단다. 위키피디아 등 SMS를 이용한 우익들의 선전이 날로 교묘해 그 폐해가 심각한 상황에서, 그것들을 상시 모니터링해 왜곡을 시정하고 세련된 문장과 그림으로 다듬어야 하는 '요원'들이 필요함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단다. 영문판 팸플릿이아닌 일본어판 팸플릿이나 브로셔, 유튜브 등의 비주얼 교재 또한 필요하다고 한다.
김복동 할머니께서 "내가 곧 산 증인이거늘 무슨 증거 타령인가"라는 취지의 말씀, 그리고 면회조차 거부하는 상식이하의 하시모토나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총재와 같은 좌우의 방향 감각을 잃고 그저 오른쪽으로 만 맴도는 이들과 '보통의 일본사람들'에게 일어판 '증거집' 요시미 요시아키 저(著), 『日本軍「慰安婦」制度とは何か(일본군 '위안부' 제도란 무엇인가)』(岩波書店, 2010)의 일독을 강하게 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