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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부는 매년 외교청서와 방위백서를 통해 독도영유권 도발을 해 왔다. 일본은 올해에도 예외 없이 지난 4월 5일 근거 없는 독도영유권 주장을 담은 외교청서를 발표해 역사를 왜곡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일본의 그릇된 주장을 극복하기 위해 이들의 문제점을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연례적으로 불거져 나오는 일본 외교청서의 용어문제를 비롯해, 외교청서의 어느 부분이 문제가 되며, 언제부터 외교청서가 문제로 부상했는지, 그리고 방위백서와의 차이는 무엇인지 등을 정리한다. 이를 통해 일본이 저지르는 '영토분쟁'의 뿌리를 비판적 시각에서 알아본다.
답
외교청서란 무엇인가? 왜 백서가 아니라 청서라 부르는가?
정부가 시정의 내용을 국민에게 보고하는 문서를 지칭하는 이름이 백서이다. 영국정부가 외교정책의 내용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문서의 표지 색깔을 흰색으로 쓰기 시작하였다. 1922년 식민장관이었던 처칠이 발간한 보고서가 '처칠백서'라고 불렸다. 이후의 모든 정부 보고서를 백서라 불리게 되었다. 최근에는 정부가 각종 사안에 대해 발표하는 보고서를 백서라고 부르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이에 비해 예산이 의회를 통과한 뒤에 일어난 경제·사회의 변동추이 등을 의회가 국민에게 알리고자 발행하는 보고서를 '청서'라고 불렀다. 현재 일본이 발행하고 있는 여러 백서 중에서 외교청서만이 예외적으로 청서라고 불린다. 이는 1957년 외교청서를 처음 작성하기 시작했을 때 참고로 삼은 영국의회의 외교위원회 보고서의 표지가 청색이었던 데에서 유래한다
일본의 외교청서가 왜 문제가 되고 있는가?
일본의 외교청서가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왜곡된 시각과 우리의 입장이 충돌하는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입장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방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역사문제와 관련된 국가의 행위를 정례화하고 있다. 2013년의 경우, 2월 22일에는 소위 '다케시마의 날' 행사가 시마네현 주최로 개최되었으며 (일본정부가 주최하는 국가적 행사로 치르겠다는 공약을 취소하는 대신 시마네현 행사에 내각부정무관을 파견함), 3월말에는 고등학교 교과서의 검정결과 발표가 있었다. 4월초에는 외교청서가 내각의 승인을 거쳐 발표되었다. 그리고 7월~8월 경에는 방위백서가 발간될 예정이다. 그 외에도 4월과 10월에는 야스쿠니 신사의 춘계대제와 추계대제, 그리고 8월 15일 종전기념일에는 총리와 정부각료의 참배가 있을 수 있다. 이들 행사와 발표는 연례행사처럼 계획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와의 외교적 마찰은 언제든지 발생하도록 예정되어 있는 셈이다. 특히 외교청서는 교과서, 방위백서와 함께 일본에서 '독도 3종세트'라고 불린다. 이들은 모두 독도관련 내용을 기술함으로써 우리나라와 외교적 마찰의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외교청서에서 문제가 되는 내용은 무엇인가?
에는 "일한 간에는 다케시마의 영유권에 관한 문제가 있는데,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히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일본 정부의 입장은 일관되어 있다"라고 적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외교부는 대변인을 통해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이다"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박준용 외교부 동북아국장은 같은 날 쿠라이 타카시 주한 일본 총괄공사를 외교부로 불러 외교청서 상의 부당한 독도기술에 대해 항의하고 시정을 촉구하였다.
외교청서는 한편으로 독도문제와 관련된 일본의 대응을 기록함으로써 향후 국제사회에서의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삼고자하는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발간된 외교청서에는 일본정부의 입장을 "팜플렛 작성 등을 통해 대외적으로 주지시킴과 동시에"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2013년 외교청서에는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상륙하였다는 사실과 그에 대해 "국제법에 의거하여 평화적으로 분쟁을 해결한다는 방침에 따라, 국제사법재판소에 합의 제소하는 것과 일한 분쟁해결 교환공문에 근거한 조정을 행할 것을 제안했지만, 동월 30일 한국정부는 이 제안을 거부하였다"고 적고 있다.
일본의 외교청서는 언제부터 문제가 되기 시작했나?
외교청서는 일본 외무성이 1957년부터 매년 1회 발표해 오고있는데, 1963년판부터 독도영유권 주장을 포함시키기 시작하였다. 1971년부터 1987년까지는 독도에 대한 '불법점거'를 강조하는 표현들이 주를 이루었으나 2000년 이후에는 독도가 역사적으로, 국제법적으로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주장이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2005년부터는 독도관련 기술의 양이 현저히 늘어난 것도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1963년부터 50년 동안 단속적으로 14년에 해당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년 반복해서 독도관련 일본의 주장을 명시해 왔다.
방위백서와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
외교청서가 1957년부터 독도영유권 주장을 서술한 것에 비해 일본의 방위백서에서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이다. 방위백서는 그 때 이후 8년째 독도에 대해 '고유의 영토'로 규정하는 기술을 유지해 오고 있다. 2012년의 일본 방위백서의 본문 내용 첫 페이지에 해당하는 '우리나라 주변의 안전보장 환경'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인 북방영토(쿠릴열도의 일본명) 및 다케시마(竹島: 독도의 일본명칭)의 영토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인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고 기술하여, 독도가 자국 영토임을 분명히 했다.
일본의 방위백서는 1970년 최초로 발간되었다. 1969년 닉슨 독트린이 발표되고 미군이 동아시아에서 철수 계획을 발표한 상황에서, 나카소네 야스히로 방위청장관이 방위백서를 내놓았다. 미국의 동아시아 방위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일본 방위정책에 있어서의 변화의 필요성을 제기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후, 최소 방위력 유지를 견지해 온 요시다 독트린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정책의지를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1976년에 이르러서야 두 번째 방위백서가 발간되었고, 1978년 백서에서 처음으로 독도관련 기술이 실린 적이 있었다. 독도관련 기술은 그 후 백서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1997년 백서에서 재등장한 이후 지금까지는 매년 실리고 있다.
방위백서 중 독도 관련 기술의 분량 측면에서 보면 외교청서보다는 훨씬 짧다고 할 수 있으며, '고유의 영토'라는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한 2005년 이후에도 양적인 증가는 보이지 않고 있다. 외교청서와 비교했을 때, 일본 정부가 독도 문제를 국방의 문제로 보기 보다는 외교의 문제로 다루고 있음을 대외적으로 알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