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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청대 사상의 이해와 현대
  • 조병한(曺秉漢) 서강대 사학과 명예교수

청조 말기 이래 중화민국 초기 국가의 해체 단계에서 중국 지식층이 탄식한 진정한 위기의식의 근원은 국가 몰락 이상으로 서구 근대에 대한 문명 해체의 열패감이었고, 그 문화적 부흥의 과제는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세계적 강대국으로 부상한 현대 중국의 발전은 저개발국으로 제3세계의 반제국주의 혁명국가임을 자처하던 약 30년 전의 중국과는 비교가 안 되는 괄목할 세계적 지위 변동을 가져왔다. 근대 국민국가로서 중국의 통일과 재편은 1920년대 국민혁명에서 시작되어 이를 저지하려는 일본 제국주의와의 항일전쟁과 뒤이은 국공(國共) 내전을 거치며 1949년 중공에 의한 중화인 민공화국 건립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세계적 지위와 역할에 대해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인식이 획기적으로 바뀐 시기는 중공 집권 후 마오쩌둥(毛澤東) 시대(1849-1976)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 혁명운동이 아니라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전환한 후 10여 년만인 1990년대였다. 이 같은 세계사적 인식의 변동으로 중국사 전반, 특히 청대(淸代) 및 근현대 중국사에 대한 학문적 인식에는 획기적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중국에 대한 역사 인식의 근본적 변화

마오쩌둥 만년의 이른바 문화대혁명(1966~1976)의 실패와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착수에도 불구하고1980년대까지는 20세기 중국 혁명과 중국의 세계사적지위에 대한 한국 역사학계의 인식은 근본적 변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왜냐하면 중국의 국지적 변화가 갖는 세계사적 의미는 1989∼1991년 동유럽과 소련의 공산권 해체를 거쳐서야 확인될 수 있었고,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주춤거리던 중국의 개혁개방이 한중 국교 수립의 해인 1992년에야 전면적으로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국내적 요인으로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이 1987년 제도적 측면의 성과를 얻었으나 당분간 '반제(反帝)' 민족주의, '민중' 민주주의적 혁명 정서가 지속된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1978년 이래 '사회주의 초급단계' 이론을 내걸고 개혁개방 정책을 조심스럽게 실험하던 중국은 1992년 이후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편승, 협력하는 형태로 '중화 민족주의'와 '국가자본주의' 체제 아래 광대한 내륙을 국제 자본과 기술에 개방하는 더욱 급진적 개방 전략을 추진했다. 급기야 21세기 초의 중국은 아직도 개발도상국 지위를 벗어나지 못한 구조적 한계 속에서도 그 대륙적 규모의 경제를 기반으로 G2라는 세계적 영향력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한때 세계혁명의 중심으로서 관료주의적 소련을 대체하려던 고립적 혁명 국가가 혁명을 포기하고 제국적 규모를갖는 관료국가로서 현실적 세계전략을 운용하는 강대국으로 변모한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 간판에도 불구하고 유교적 중화주의와 손자병법의 문화 전통이 여전히 지속하는 현대 중국이 재발견된 것이다. 오늘의 중국을 만든 근대의 역사로서 2천여 년 중화제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조와 중화민국의 역사는 물론 그것을 극복, 계승한 현대 중국 혁명의 현대적 의미를 다시 묻는 것이 우리 역사학계의 학문적 과제를 재정립하는 출발점이될 수밖에 없다.

중화제국의 전통과 공화국의 이상

20세기 중국의 근대화 운동이 반제국주의 민족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의 과정을 거치면서 독립, 통일된 국민국가 건립과 미래의 유토피아적 공화국의 이상을 지향하는 동안에는, 중국과 식민지·반(半)식민지 경험을 공유하는 우리 한국의 역사인식은 중국의 근현대사의 전개방향에 대해 동정적이거나 가치판단을 유보하기 쉬웠다. 더욱이 청조가 조선에서 물러난 청일전쟁(1894) 이후1992년 한중 국교 재개까지 1세기간 양국 관계의 사실상의 단절은 중국사와 한중관계의 역사적 지속성에 대한 건망증을 가져왔다. 이제 강대국 중국과 다시 대면한 시점에서 우선 주목되는 것은 중국의 유교적 중화주의 전통이 19세기 이래 청제국의 붕괴와 서구 제국주의 침입 과정에서 근대 중국 민족주의 발전의 사상적 토대로서 강력한 작용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전통적 중화주의 이념의 본질이 세계 중심으로서 중화제국의 국가 정통성과 국내·국외에 걸친 상하 관계의 통제 전략이었기 때문에 중화주의에 근거한 근대 주권국가의 민족주의는 '국민적 제국'의 성향을 내포하기 쉽다. 현대 중국은 국내적으로 전통시대 중화제국의 다민족 통치보다 더욱 강력한 중앙집권적 행정체계와 민족통합 정책을 추진했다. 근대 국민국가의 민족자결과 세계주의 이상이라는 20세기 이래의 국제 사조가 견제력으로 작용한다 해도 전통적 제국의 패권주의가 시대의 형식에 맞는 더욱 정교한 현대적 형태의 강대국 권력정치의 동력으로 지속할 경향성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현대 세계질서의 이상에 비춰, 현대 민족주의의 발전방향은 중국은 물론 일본과 동아시아 전반에 뿌리깊은 중화주의적 제국 이념과 자기중심의 문화 국수주의, 바꿔 말해 전통적 중화주의의 유산에 대한 충분한 비판과 극복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위험을 해결하기 위한 조건은 중국 국내의 민주화를 통한 시민적 다원 사회 와 지방적, 종족적(ethnic) 자치와 문화다원주의의 발전이라 생각된다. 청대나 20세기의 중국사 연구에서 이 같은 시각을 적용하면 명조 말 청조 초기의 중앙집권적 전제주의 비판이나 근대 5·4신문화운동의 민주적 공화국의 이상 및 전통문화 개조의 노력 등 새롭게 해석될 주제들이 적지 않다. 이 같은 비판적 주제의식에서 1920년대 이래 중국 근현대의 중앙집권적혁명사의 서술에도 획기적 변화가 요청되는 것이다.

중국 전통문화의 이해와 보편문명의 재건

중화제국의 이데올로기적 기반이 된 유교적 중화주의 문명관은 16세기 이래 서구 근대문명의 포위, 도전을 받기 시작했으나 1860년대에야 굴복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대영제국과의 두 차례 아편전쟁에 참패한 후 군함과 총포에 의한 군사적 압력을 통해서만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1890년대 말 이래 중국이 진정한 근대화 개혁을 수용한 것은 메이지유신에 기반을 둔 근대국가 일본의 제국주의적 아시아 지배와의 대결과정에서 진행되었다. 청조붕괴에 이은 전면적 서구화와 전통의 재정리, 공산화의 저항 등 문화적 격변을 거치면서도 중국은 아직 선진적 보편문명의 재구성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중공의 개혁개방이 가속화한 1990년대는 다시 근대의 진원지인 서구와의 전면적 교류에 들어서 1890년대 이후 거의 100년 간격으로 역사의 발전적 순환 패턴이 발견된다. 청조 말기 이래 중화민국 초기 국가의 해체 단계에서 중국 지식층이 탄식한 진정한 위기의식의 근원은 국가 몰락 이상으로 서구 근대에 대한 문명 해체의 열패감이었고, 그 문화적 부흥의 과제는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세계사적 문명관의 시야에서 중국 문화전통과 서구 근대의 관계를 볼 때 19세기후반 근대화 초기 단계에서 제기된 '중체서용(中體西用)'의 과제는 근대의 발전 단계에 따라 의미와 형식의 변화는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사상사의 주제로는 명조 말기와 청조 초기(17세기) 이래 근대 초기 서학(西學)의 도입과 아울러 같은 때 경세학(經世學)과 고증학(考證學) 중심으로 재편된 유교 실학의 지식체계 변천 과정, 청조 말기 이래 중화민국 초기의 근대 서학의 전면적 수용과 중국 국학(國學)의 성립에 따른 근대 지식체계의 형성문제 등이 거론될 수 있다. 이 문제는 오늘날 세계사적 문명 통합의 시각에서 중국 사회국가 체제와 세계관의 변천과 관련시켜 재검토되어야 할 주제이다. 그것은 또한 청대 이래 현재까지 중국의 독특한 형식의 보편문명 재구축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여러 영역에 걸친 역사 현상의 일부로서 사상의 연구는 이제 지식창조 시대의 시대적 요청에 따라 문명의 중요 구성 부문으로서 지식체계의 역사에 대한 더욱 전문화된 심층 연구로 확대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